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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너네 집 전세야?” 월급으론 따라갈 수 없는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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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와 함께하는 대선 정책 ‘나의 선거, 나의 공약’

②집을 포기했다: 23명의 이야기 下편

“저렴한 공공주택 대폭 늘리고 임대 분양전환가 낮춰야”


한겨레

8일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의 한 아파트에 붙어 있는 행복주택 공고예정 현수막.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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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만난 무주택자 23명은 유례없는 집값 폭등이 이어진 문재인 정부를 지나며 후회와 배신감, 좌절과 낙담과 같은 감정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다만 소득과 자산 수준에 따라 마음가짐은 달랐다. 애초 실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일부는 전세보증금과 월세, 소득과 자산, 부채 등 경제적 프라이버시를 털어놓은 뒤 익명 요구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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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 “재개발은 집주인들만 좋은 것”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는 장중근(35)씨는 홍씨 모녀와 같은 “로또”가 가닿지 않은 경우다. 그는 2020년 1월부터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 지역’으로 불리는 용산구 보광동 한남3구역에서 월세 30만원 방에 산다. 오는 3월 퇴거를 앞두고 공공임대 주택 신청을 해놨지만, 보증금 1200만원이 부담스럽다. 장씨 역시 월 소득 150만원의 절반을 부채 상환에 쓰고 있다.

게다가 그는 이주비 지급 대상도 아니다. 현행 도시정비법은 재개발 때 주거이전비와 공공임대 우선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를 ‘구역 지정일 이전’부터 거주한 이들로 한정한다. 한남3구역의 구역 지정일은 2006년이다. “에스에이치(SH·서울주택도시공사)나 엘에이치는 보증금 더 내면 월세 깎아주거든요. 그건 돈 있는 사람들 얘기예요. 저는 보증금을 내려서 월세를 올려야 돼요. 여기 집주인도 투기꾼이거든요. 분당에 살고 여기 안 살아요. 재개발은 집주인들만 좋은 것 같아요.”

2020년 5·6 대책에서 도입한 공공 재개발과 지난해 2·4 대책에서 도입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세입자 대책 대상자 지정 기준을 구역 지정일에서 ‘엘에이치의 공공사업 시행자 지정일’ 등으로 늦췄다.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들은 대체로 주거이전비와 공공임대 우선입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도하는 ‘신속통합기획’과 같은 민간 재개발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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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집값 폭등에 내집 포기한 의사 손재영(36)씨, 내집 마련과 함께 출산도 포기했다는 김수영(36)씨, 보증금·월세도 힘든 서울 1인가구 정하윤(가명·26)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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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 “너네 집 전세야?”


집값 폭등은 중산층 무주택자에게도 박탈감을 안긴다. 국세통계연보와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3519만원이던 근로자 1인당 평균급여가 2021년 3828만원으로 300여만원 늘어날 때, 전국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2억8천만원에서 5억1천만원으로 2억3천만원 급등했다. 자산 가치 상승폭이 소득의 76.7배에 이른다.

임동명(가명·43)씨는 아파트값이 급격히 오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아파트에 전세 7억원을 주고 살고 있다. 최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친구에게 “너네 집 매매야, 전세야?”라는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그 얘길 듣고 자가와 임차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맞벌이하는 저희 집 (가구) 소득이 많다고 부러워하던 외벌이 엄마들이 어느 순간 수입차로 바꾸고 ‘플렉스’(재력 과시)하는 걸 봅니다.”

부산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수습 과정을 밟고 있는 손재영(36)씨도 지난해 6월 입주한 지 4~5년 된 준신축 92㎡ 아파트를 6억6천만원에 사려다 모아둔 돈이 없어 포기했다. 그는 “앞으로 소득이 올라갈 테니 계층이 하락할 것 같지는 않지만, 집은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매맷값과 더불어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세 난민’이 ‘월세 난민’이 되기도 한다. 이동석(49)씨가 그런 경우다. 2016년 2억8천만원이던 전세보증금은 2018년 3억8천만원이 되더니, 2021년에는 더욱 올랐다. 결국 보증금 1억원에 월세 90만원 반전세를 구해야 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이씨와 병원 코디네이터인 아내의 월 소득은 합쳐서 600만원 정도지만,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쌍둥이를 양육하고 월세 등을 내다 보면 저축할 여력은 없다고 했다. “2011년 결혼하고 그동안 7천만원 정도 모았거든요. 전세 대출 상환하고 아이들 키우다 보면, 모을 수 있는 돈이 월 100만원 안팎이에요. 그마저 월세를 내면서 자산 축적의 기회가 사라진 것 같아요.”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주거안정연구센터장은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중산층 기준(중위소득 75~200%)에 따라 한국 중산층을 분석했다. 2015년 46.8%였던 한국의 중산층 비중은 2018년 43.9%까지 떨어졌다가 2020년에는 44.2%가 됐다. 집값 폭등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특히 2020년 중산층의 전월세 대출 점유율은 60.0%로, 주택담보대출 점유율 52.6%보다 높았다. ‘내 집 마련’에서보다 ‘세입자’로 부담하는 부채 부담이 더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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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탈서울해 강원 원주에 정착한 권혜주(가명·35)씨, 남편이 공인중개사에 도전했다는 김규영(가명·43)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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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공공 물량 늘려야”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니가 가라 공공임대’와 같은 비하가 판을 치지만, 공공임대 입주로 비로소 ‘중산층’이 됐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에서 교사인 아내와 맞벌이로 월 500만원 정도 버는 직장인 최현수(가명·34)씨 부부는 신혼부부 대상 공공임대인 행복주택 입주에 성공했다. “그 전에는 렌트푸어였죠. 그런데 이제 내가 살 집이 있고 차가 있고, 여유롭지는 않아도 문화생활과 외식이 가능해졌으니 중산층 턱걸이를 한 것 같아요.”

최씨는 서민과 중산층의 차이는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했다. 그런 최씨의 다음 스텝은 신혼부부 대상 공공분양 주택인 신혼희망타운이다. 그는 대선 후보들에게 “민간 드립 치지 말라”고 일침을 놨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못했지만 공급은 충분했다고 봐요. 타이밍 문제가 좀 있었던 거죠. 그런데 민간공급을 푼다? 공급을 아무리 많이 해도 투기 수요에 다 잡아먹혔잖아요. 공공 물량을 늘려서 서민을 위한 주거 플랜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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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상위권에 들지만 집이 없어 박탈감을 느낀다는 임소연(가명·43)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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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소득 되지만 영끌 안 해”


고소득 무주택자들은 집값 폭등 상황 대처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마포구 아파트에 월세로 사는 직장인 김규영(가명·43)씨와 대학 교직원인 남편은 한달에 1500만원을 번다. 김씨 부부가 월세를 택했을 때 대출을 3억원 정도 끼고 6억원에 같은 아파트를 산 이들은 이번에 17억원에 아파트를 팔아 시세 차익을 남겼다. 내 집 마련에 실패한 김씨 부부는 부동산 공부로 활로를 찾고 있다. 남편이 지난해 공인중개사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우리가 집이 없는 게 부동산에 무지해서 그런 게 아닌가 했거든요.”

다만 ‘영끌’로 집을 살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자산 1억원이 있다는 부부는 부담 가능한 대출 규모를 5억원이라고 못박았다. “월 500만원 저축을 기준으로 8년 저축해서 모을 수 있는” 수준이다. “30~40대에 애들한테 투자를 많이 하고 싶어요. 와인도 좋은 거 마시고 싶고, 차도 좋은 차 타고 싶고요.”

청약을 넣어 놓고 여유 있게 민간분양을 기다린다는 고소득층 무주택자도 있었다. 김유철(47)씨는 월 소득이 1천만원이 넘고, 전세보증금 4억8천만원에 금융 자산까지 순자산이 5억원이 넘지만, 역시 김규영씨 부부처럼 ‘영끌’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우스푸어’가 되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7년 성남 위례의 3억5천만원 전셋집은 4억8천만원까지 올랐고, 매매 시세는 7억원에서 14억원이 됐다. “와이프랑 다투기도 했어요. 하지만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오른 집값을 대출해서 내 소득으로 메꾸느라 10년 동안 돈을 못 쓰는 것보다 청약이 낫다고 와이프를 설득했죠.”

<한겨레>가 만난 고소득 무주택자들도 공공분양뿐만 아니라 기본주택과 같은 임대형 분양주택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특히 분양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되 시세 차익을 공공과 공유하는 환매조건부 주택(공공기관에 되파는 조건으로 분양받는 주택)이나 지분적립형 주택(입주 때 집값 일부만 납부하고 잔여지분은 20~30년 동안 나눠서 취득하는 주택) 등 공공자가 주택(소유권은 민간에게 주되 처분할 때 생기는 차익 일부를 공공이 환수할 수 있는 주택)에 대한 선호를 물어보자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3기 새도시에 공급할 공공자가 물량은 5~10%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계층을 막론하고 유권자들은 대선 후보들에게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 확대를 입 모아 요구했다. “공공주택 공급을 대규모로 확대해서 공공주택 비율이 30%는 되어야 해요. 저렴한 분양가로 무주택자들을 위한 특별공급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위해서는 소득 기준이 아니라 자산 기준으로 세금 내야 해요.”(이동석씨)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게 민간분양 말고 국가 주도의 주거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김수영씨) “집이라는 건 공공재니까 분양원가 공개하고 검증하는 등의 집값 하락 정책을 펼쳐야 해요. 그리고 저렴한 분양전환 정책이 나와야 합니다.”(이문수(가명·45)씨)

[유권자와 함께하는 대선 정책 ‘나의 선거, 나의 공약’]

②집을 포기했다: 23명의 이야기 上편

재개발로 쫓겨난 세입자 “임대아파트도 보증금 없어 포기”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26628.html

진명선 노지원 김용희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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