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일사일언] 병에 담은 눈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성경 시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눈물을 병에 담았다. 장례를 치를 때 눈물병을 시신 옆에 두었다. 눈물이 그를 살린다는 풍습이었다고 한다. 아프고 서러웠던 순간에 흘렸던 눈물 방울. 긴 한숨과 탄식이 담긴 눈물을 주님이 아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믿음이었다.

모든 인간은 눈물로 인생의 시작을 알린다. 내 손녀 은유도 울음과 눈물로 태어났다. 언젠가 나는 내 가족과 이웃들의 눈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은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남는 것이 ‘눈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눈물로 시작해 눈물 한 방울로 마치는 삶이다.

나는 어려서 눈물이 많았다. 그때마다 사내자식은 울면 안 된다는 꾸지람과 함께 눈물을 거세당했다. 나는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강한 척했다. 슬픔보다 기쁨에 더 많이 삶의 무게 추를 실었다. 농담을 좋아했고 유머를 사랑했다. 그런 내가 나이 60을 넘어서면서부터 눈물의 의미를 알기 시작했다. 슬픔을 배웠다. 숱한 죽음을 가까이 하면서 터득한 생의 진리였다.

천양희 시인은 하루 70만번씩 철썩이는 파도, 3000번씩 우짖는 종달새,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용설란을 이야기하며 운명을 말한다. 이어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 번 우는 새,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를 이야기하고 묻는다. ‘운명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시인의 물음에 철학자 니체가 답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라틴어 3대 명언 중 하나다.

‘거절할 수 없는 것’에 머물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라는 거다. 눈물과 슬픔이 그렇다. 그래서 난, 슬픔에 겨워 가슴을 치는 이들에게 참지 말고 울라 한다. 슬픔은 한번 더 사랑하라는 두 번째 기회가 아니던가. 말해준 나도 따라 운다. 울면서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제발 좀 참지 말고 울어보라’고. ‘울어야 그놈의 성질도 죽일 수 있는 거’라고. 아내 말이 맞았다. 악마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우는 법, 밤을 지새우는 법, 새벽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나는 이제야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다.

조선일보

송길원 목사가 ‘죽기 전에 나는 ~하고 싶다’는 내용을 적어 넣을 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