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침공 가능성이 커지면서 가장 답답한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일 것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출신으로 한국에서 22년째 살고 있는 올레나 쉐겔(41)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역시 두려움 반, 희망 반이다. 2001년 유학 차 한국에 온 그는 수차례 한국-우크라이나 간 정부 회담을 통역하고 우크라이나 정치 현황에 관해 여러 논문을 썼다. 25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가 2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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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현재 우크라이나 분위기는 어떤가.
"2014년 4월부터 동부 지역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친러 분리주의 반군의 무력 분쟁이 진행 중이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걱정이 컸는데 돈바스에서 키예프까지 700㎞ 거리인데다 8년 동안 이어지면서 둔감해졌다. 어제부터 미국, 영국 등 대사관 일부 인력이 철수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는데 아직도 '설마 전면전이 일어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북한이 동해 상에 미사일을 쏜다고 한국인들이 사재기하거나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일상을 보내는 것과 같다. 러시아와 가까운 동부 지역엔 러시아 교포들이 많고 국제결혼도 활발해서 더 그렇다. 나는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영어, 한국어 4개 국어가 가능해 여러 외신을 읽고 상황을 판단하고 있다. 부모님과 여동생 가족이 키예프 중심가에 사는데, 지난달 한국에 오길 권유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러시아가 위협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면서 오지 않으셨다."
Q : 2014년 2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때는 반격이 없었다.
"2013년말부터 2014년 3월까지 학회 참석으로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굉장히 위태로웠다. 당시 유로마이단 시위(친러 정부 축출)로 정권 공백기였다. 친러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재위 2010~2014) 전 대통령이 군대도 줄인 상태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부다페스트 협정(1994년 핵무기 포기 대신 크림반도 포함 안전 보장 체결)이란 안전장치가 있어서 러시아가 침공할 리 없다고 생각했고, 허를 찔렸다.
현재는 정부가 있고, 군대도 강해졌다.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 도움으로 우크라이나 군사력이 발전했다. 서방 세계가 무기와 재정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전면전이 되면 러시아도 잃을 게 많다. 논리적으로 전쟁은 일어날 리 없다. 하지만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전면전 여부는 푸틴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Q :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영토 확장 정책 ▶러시아 내부단속이다. 푸틴은 "소련 붕괴는 재앙"이라고 말하면서, 소련 시절 영토를 되찾으려고 한다. 내부적으로 흔들리는 정치 세력을 다잡기 위해서다. 빈부 격차, 부정부패, 인권침해 등 사회적 문제가 많아 푸틴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 푸틴은 정권이 흔들리는 게 보이면, 국민에게 러시아가 힘이 세다는 걸 보여줬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전에 푸틴 대통령 지지율이 60%대였는데, 합병 직후에는 80%대로 올랐다."
표적 연습으로 사용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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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우크라이나에 나토, 유럽연합(EU) 가입은 어떤 의미인가.
"크림 사태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은 나토와 EU에 가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아졌다. 이는 러시아와 완전히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은 '러시아와 서방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로 여론조사를 많이 하는데, 서방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러시아엔 지배를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 소련 시절과 현재 러시아를 바라보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시각이 달라졌나.
"나도 소련시절을 경험했다. 1991년에 독립했을 때 10세였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러시아어를 배웠다. 부모 세대는 소련 시절 교육을 받아서 '러시아는 우리 형제, 미국은 악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는 바로 옆에서 위협하는 나라라서 대항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다. 68세인 아버지도 러시아가 공격하면 나가서 싸우겠다고 하신다."
Q : 러시아가 친러 세력을 심어 우크라이나 쿠데타를 꾀한다는 영국 발표도 나왔다.
"러시아 입장에선 전면전보다 정권교체를 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친러 정부를 경험한 국민이 깨어나서 쉽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 전쟁을 일으킬 때도 "현지 러시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즉 침략군이 아니고 보호군이라는 명목이었다. 이번엔 전면전을 일으키고 키예프에 입성할 때 친러 세력이 환호하는 장면을 연출해 전쟁 정당성을 찾으려 할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군 교관이 22일(현지시간) 자발적으로 입대한 이들 앞에서 시범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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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대로 지휘하고 있는가.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치 세력의 부정부패에 질린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의해 뽑혔다. 제대로 된 정치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현 상황에서 역부족인 모습이다. 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우크라이나를 빼고 서방과 러시아 간 회담이 열렸지만,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은 어쩔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번 긴장이 누그러져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볼모로 삼고 미국과 이야기하는 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농담으로 푸틴 대통령이 사라져야 끝날 것 같다고 한다."
Q : 한국인들도 이번 사태에 관심이 많다.
"우크라이나와 한국 모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전쟁의 위험을 안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친러 세력을 제대로 축출하지 못해 러시아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었고 돈바스에서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국도 독립 이후 남북한이 나뉘고 여전히 전쟁 위험이 있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강대국 사이에서도 주도권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도 한국처럼 경제적으로 부강해진다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쉐겔 교수는 키예프 국립대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에서 우크라이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로 임용됐다. 2006년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등 수차례의 정부간 회담을 통역했다.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후 '2013~2014년 마이단 시위와 크림 사태 동안 러시아의 프로파간다(2014)',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공생과 이별의 갈림길: 총알이 없는 전쟁(2014)', '2차 대전과 전승 기념일에 관한 우크라이나의 재탐색(2015)' 등 논문을 썼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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