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뉴욕타임스가 지난 2일 "중국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로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이 러시아의 침공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침공을 말리거나 중재에 나서지 않고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취지입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중국도 러시아와 함께 비난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보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 러시아에 '올림픽 끝날 때까지 침공 미뤄 달라'"
뉴욕타임스는 보도의 근거로 서방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들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 2월 초 러시아 고위 관계자에게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나기 전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또,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기 전 중국 고위 관계자들은 러시아의 침공 계획에 대해 어느 정도 직접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2월 4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했는데, 두 정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과 관련해 대화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두 나라의 고위 관계자가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정보는 상당히 신뢰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중국 고위 관계자가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을 전후로 두 나라 간 의견 교환 내용을 시 주석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2월 4일 시진핑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 장면 (출처=중국 외교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보도가 사실일 개연성은 높아 보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 등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입니다. 러시아는 중국과의 국경지대를 포함해 동부 지역에 있던 병력을 대거 우크라이나 접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병력 이동을 중국이 몰랐을 리 없습니다. 올해 초부터는 러시아의 실제 침공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이었습니다. 올해 하반기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앞두고 이번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사활을 걸어 온 중국으로서는 어떻게든 올림픽 기간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막고 싶었을 것입니다. 앞서 2008년에 열린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도 러시아가 올림픽 기간 조지아를 침공해 올림픽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베이징 올림픽 끝나자마자 '일사천리' 침공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던 2월 11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일을 2월 16일로 지목했습니다. 2월 16일은 올림픽이 끝나지 않은 날입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국민들에게 대피까지 권고하고 나섰지만 중국은 태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이 전략적·경제적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까지 나서 "미국이 전쟁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당시 러시아가 침공 계획을 부인했던 까닭도 있지만, 중국이 적어도 올림픽 기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16일 침공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에 있던 병력을 일부 철수시키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태도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나기 무섭게 돌변했습니다. 올림픽 폐막식 다음 날인 2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분리주의 진영의 독립을 승인하더니, 또 이튿날 평화유지군의 우크라이나 파견을 지시했습니다. 러시아는 23일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국 대사관 직원을 대피시켰고, 24일 곧바로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이 모든 게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나흘 안에 이뤄졌습니다. 중국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올림픽 이후로 미뤄 달라'고 요청했을 개연성이 높은 대목입니다. 2008년 조지아 침공 전례로 볼 때, 러시아가 자발적으로 중국을 위해 올림픽 기간을 피했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입니다.
"중국, 러시아 실제 침공일은 몰랐을 수도"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가짜뉴스"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서방이 중국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매우 비열한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국이 러시아의 침공 계획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도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자국민에 대해 제대로 조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중국인 6천여 명이 체류하고 있었는데, 중국은 사전에 이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때서야 전세기로 대피시키려다 그것마저 하늘길이 막히면서 버스와 열차로 대피시키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사이 중국인 한 명이 총상을 입었고, 급기야 3월 4일에는 중국인 유학생 4명이 러시아의 폭격으로 숨졌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사실 확인 중이라고 밝혔는데, 보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중국 정부의 늑장 대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월 19일 화상으로 열린 뮌헨 안보회의에서 "중국은 신민스크 협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진영의 자치권을 인정하되, 러시아가 군사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왕이 부장은 2~3일 만에 무안하게 됐습니다. 러시아가 곧장 군사 행동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중국이 러시아의 침공일을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왕이 부장이 신민스크 협정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월 23일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사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 관영 매체들 역시 러시아가 군사 행동을 하기 직전까지 전쟁 가능성은 낮다고 했습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러시아의 침공일 바로 전날인 2월 23일자 사설에서 "모든 당사자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문제를 해결할 여지를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설이 무색하게 러시아는 다음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중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뉴욕타임스 보도대로 중국이 먼저 요청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침공일은, 그것도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러시아가 침공할 것이란 계획은 중국도 몰랐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이어 3월 4일부터 베이징 패럴림픽이 열리는데, 러시아의 침공으로 패럴림픽은 중국에서조차 큰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심경이 궁금합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 2022 대선, 국민의 선택!
▶ 네이버에서 S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