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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취재파일] 청와대 이전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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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의 논리에 설득됐기 때문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후보는 속전속결로 진행할 것이다."


지난 1월, 윤석열 당시 후보자가 청와대 이전 공약을 발표한 후, 역대 대통령이 같은 공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사례를 예로 들며 공약 이행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자에게 국민의힘 선대본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영국이나 일본처럼 기자들이 관저 앞에서 총리에게 현안에 대해 질문하는 광경이 펼쳐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책에 경호가 맞춰야지, 경호의 논리에 정책이 복속되어서는 안 된다"며 윤석열 후보의 공약 이행 의지를 강조했다. 청와대로 일단 들어가면 청와대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 표현이었다. 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을 수 있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을 수 있는, 대통령 입장에선 완벽한 환경인 청와대에 익숙해지면 청와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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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이전'을 위해 적절한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는 발표한 전후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을 이유로 청와대 이전을 추진하면서 그 과정에 '소통'은 없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며 이전을 추진하면서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비판도 궤를 같이 한다. 국방부 청사로 이전해도 청사의 환경상 '불통의 청와대'가 '불통의 대통령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따라 붙는다. 모두 당선인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다만, 청와대 이전을 위한 소통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소통의 시간은 얼마나 필요할까, 그 기간 동안 경호의 논리에 지배 당하지는 않을까, 그러다 보면 역대 다른 대통령과 같이 청와대 이전은 결국 빈말이 되지는 않을까. 이런 의문도 함께 제기된다. 청와대 이전 공약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주된 근거다.

알려져 있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청와대 이전을 반복적으로 공약했다. 수년간의 청와대 근무 경험으로 청와대라는 공간이 의사 결정이나 국정 운영에 미치는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문 대통령인 만큼, 공약 추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 넓은 청와대 거의 대부분이 대통령을 위한 공간이고, 극히 적은 일부를 수백 명의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의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는 이상한 곳이었다"며, "대통령은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과도 철저히 격리되어 있는 실정이다"(문재인, 2012년 12월 12일)는 이야기는 청와대에 대한 정확한 진단으로 회자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반복된 공약과 실패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경호 문제에 대해선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영국의 총리 집무실은 길거리 건물 속에 있다. 그렇게 해도 경호상의 문제가 없다. 그동안 남북 관계 때문에 경호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는데,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경호도 탈권위주의에 맞게 변해야 한다"(문재인, 2012년 12월 12일). 문 대통령은 "근접 경호를 최소화해 국민들과 편하게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2017년 4월)며, 청와대 이전 공약 실현을 위한 대통령 경호의 변화를 공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약 이행은 실패했다. 핵심적인 이유는 경호 문제였다. 탈권위주의 시대, 탈제왕적 대통령 시대에 맞는 경호의 변화를 공약했지만, "대통령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보니까 이에 따르는 경호와 의전이라고 하는 게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했다"(유홍준, 2019년 1월 4일)는 이유에서였다. 다년간 청와대를 경험했던 문 대통령의 이런 변화는 현실적 어려움을 비로소 인지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경호의 논리에 설득되고 청와대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이었을까.

임기 시작 전이나 임기 초반이 아닌 임기 중반에 청와대 이전을 실행하려고 했을 때 부딪치는 문제도 있다. 대통령 스스로가 청와대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과 함께 "왜 지금 굳이 청와대 이전을 추진하느냐. 더 많은 기간 생활할 다음 대통령에게 결정권을 넘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부딪칠 수도 있는 것이다. "현 대통령이 다 만들어 놓고 자신은 살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여기 살아라하고 넘겨주는 건 논리에 맞지 않다"(유홍준, 2019년 1월 4일)는 이야기는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소통은 장소 이전으로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청와대 이전은 임기 시작 전 또는 임기 초반에 추진하는 것이 공약의 실현 가능성 측면에선 더 효율적일 순 있다. 다만, 이런 논의는 청와대를 외부로 이전한다면 당연히 소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전제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이전이 소통의 증진을 담보할 때나 가능한 논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장소를 옮긴다고, 그리고 구조를 바꾼다고 소통이 저절로 원활해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이번 청와대 이전 논의 과정에서 주목되는 건, 이전 지역이 어디냐보다 오히려 이전지를 발표한 형식이었다. 당선인이 직접 나서 이전지를 결정한 이유를 설명하고, 질의 응답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그 형식에 있었다. 지금껏 대통령의 불통은 청와대 구조에 따른 수동적 결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소통에서 중요한 건 결국 대통령의 의지다. 귀찮을 수 있는 것, 때론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직접 나서서 이야기하고, 평가를 받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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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위해 청와대를 이전하겠다고 연이어 공약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 공약 철회를 직접 발표하지 않았다. 비단, 청와대 이전 공약 철회 발표 때 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 전례 없는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국민들이 아우성치고 있을 때, 서해 해수부 공무원 피살사건 처럼 국민의 생명이 직결된 자리에서도 국민들은 대통령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앞으로도 현안에 대해 본인이 직접 설명한다면, 그리고 홍보가 아닌 설득의 자리에 나와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굳이 청와대를 이전하지 않더라도 대통령과 국민들의 소통은 원활해질 것이다.

'출·퇴근하는 대통령'이길 바란다



당선인 측은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면 한동안 서울 한남동 공관 중 한 곳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청사 내에 관저를 신축하는 방안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에 따른 경호 문제와 시민들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출·퇴근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경호 문제가 일부 발생하더라도, 이동 중 시민들의 불편이 발생하더라도 대통령이 출·퇴근하면서 시민들의 생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상점들이 장사는 잘 되는지, 상가는 얼마나 비어 있는지, 집값은 얼마나 변했는지, 코로나 검사소의 대기 줄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대통령이 직접 볼 수 있긴 바란다. 그렇다면 최소한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르던 때에 "전국적으로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부동산이 오히려 안정화하고 있다"(문재인, '2019 국민과의 대화')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 않을까. 대통령의 사소한 현실 인식이 국민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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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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