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용병 러시아 참전, '빚' 갚는 수순"
알레포 무차별 포격 등 우크라이나와 유사
2018년 3월 시리아 동구타의 반군 통제 지역 자말카에서 정부군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어린이가 치료를 받고 있다. 자말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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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현지시간) 새벽,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9일로 꼭 45일째를 맞았다. 그간 1,500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4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고국을 등져야 했다. 러시아는 당초 ‘속전속결’ 점령을 꿈꿨지만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현재는 수도 키이우 등 북부 전선에서 퇴각한 상태다.
침공이 장기화하고 자국 군의 피해가 커지자 러시아는 전황 만회를 위해 외국에 ‘용병 러브콜’을 보냈다. 특히 시리아는 정부가 직접 나서 용병 모집까지 나섰다. 참전 의사를 밝힌 시리아인이 4만 명이 넘는다는 게 외신들의 설명이다. 지난달 31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가운데 전투원 300명이 러시아군에 용병으로 합류한 상태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선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는 왜 자발적으로 자국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그것도 우크라이나가 아닌 ‘침략국’ 러시아 편으로 보냈을까.
시리아 대통령, 러시아 덕에 정권 유지
러시아와 시리아 사이 관계를 이해하려면 시계를 2011년으로 돌려야 한다. 2010년 12월 튀니지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로 촉발된 ‘아랍의 봄’은 2011년 1월에는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를 포함하는 아랍 전역으로 확산됐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퇴출을 요구하는 반(反)정부 시위는 당초 산발적으로 진행됐지만 같은 해 3월 중순부터는 전국 단위로 확산됐다. 아사드 정권은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무자비한 유혈 진압에 나섰고, 이에 맞서는 반군 세력 저항도 거세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여기에 혼란상을 틈타 세력을 키운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의 많은 영토를 장악하면서 정부군과 반군, IS가 직접 충돌하는 상황으로 비화했다.
2016년 9월 11일 시리아 반군이 장악한 알레포 북부의 살리힌 지역에서 공습 소식이 전해지자 남성들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피신하고 있다. 살리힌=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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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2년 6월, 에르베 라수드 당시 유엔 사무차장은 시리아가 사실상의 전면적인 ‘내전 상태’라고 공식 인정했고, 한 달 뒤에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는 시리아 상황을 ‘내전’으로 규정했다.
국제사회는 아사드 정권에 끊임없는 경고를 날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시리아 비난 결의안(2011년 10월)을 시작으로, 아사드 하야 촉구 결의안(2012년 2월), 시리아 제재 결의안(2012년 7월) 등 숱한 제재 움직임이 이어졌지만 번번이 부결됐다. 러시아가 줄곧 거부권을 행사한 탓이다. 안보리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중국ㆍ러시아ㆍ미국ㆍ영국ㆍ프랑스)의 반대 없이 9표를 얻어야 통과된다. 러시아는 이듬해 시리아 정부군이 자국민을 향해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시리아 내 행위자들에 편향된 메시지를 보낸다"는 등의 명분을 내세워 안보리 제재 결의안 채택을 거부했다.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5년 9월부터는 아예 내전 개입을 공식화했다. 그간 아사드 정권 축출을 추구하던 서방으로부터 정치ㆍ외교적 보호막 역할을 하는 ‘소극적 지원’이었다면, 직접 군사력 제공까지 나선 셈이다. 러시아군은 시리아 정부군 편에서 친(親)서방 온건 반군과 IS를 ‘테러 단체’로 통칭하고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6개월간 하루 평균 50회, 총 9,000여 회 공습으로 아사드 정권을 철저히 보호해 줬다. 특히 러시아의 공격은 병원과 학교 등을 가리지 않았다. 통폭탄, 열압력폭탄, 소이탄, 클러스터 폭탄, 벙커 버스터 등 가공할 치명성을 가진 신무기를 사용해 알레포 등 반군 거점 도시를 공격, 철저히 파괴했다. 심지어 화학무기까지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시리아 동부 데이르에조르시 중심가에서 경비 업무를 수행 중인 러시아 군인들. 데이르에조르=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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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의 지원 사격에 정부군은 전세를 바꾸게 됐다. 자리가 위태롭던 아사드 대통령이 러시아의 도움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ㆍ러시아 담당 선임 국장을 지낸 피오나 힐은 지난 4일 영국 더타임스에 “러시아는 2015년 아사드 정권이 실각할 것으로 보일 때 시리아에 개입했고, 이 영향으로 정권은 여전히 집권 중”이라고 분석했다. 시리아 용병들의 우크라이나행은 아사드 대통령이 과거 푸틴 대통령에게 진 ‘빚’을 갚는 차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러시아의 중동 전략적 심장부 시리아
그렇다면 7년 전 러시아가 파병까지 결정하면서 아사드 정권을 지키려 했던 까닭은 뭘까. 이는 중동의 전략적 심장부에 위치한 시리아가 지닌 지정학적 중요성과 양국 간 오랜 우호 관계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시리아는 194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직후 소련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소련으로부터 정치ㆍ경제ㆍ군사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1971년에는 현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가 집권하면서 전략적 동맹관계로 발전했다. 하페즈는 반 서방 친 소련 정책을 펴며 이스라엘과의 대치 국면에서 소련에 크게 의존했고, 동시에 중동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소련의 우방이 됐다. 시리아에 소련제 무기가 대규모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도 하페즈 집권 이후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러시아는 거대 무기 수출 시장 가운데 하나를 잃게 된다는 얘기다.
2017년 11월 러시아 소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세 번째) 러시아 대통령이 바샤르 알아 사드(왼쪽 두번째) 시리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치=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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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러시아 ‘남하정책’의 중동 핵심지역인 시리아 서부 지중해에는 러시아의 유일한 해외 해군기지인 타르투스 기지가 있다. 러시아는 이 기지를 소련 시절(1977년)부터 40년 넘게 사용해 오고 있다. 시리아는 2017년 12월, 내전 참전 보답 차원에서 기지 사용권을 러시아에 49년간 무상으로 내주기도 했다.
이 같은 정치ㆍ군사적 중요성 외에 또 다른 이유는 리비아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다. 리비아 내전 중이던 2011년 3월,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 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을 설치하는 결의안 표결에 나섰다. 당시 러시아는 반대가 아닌 기권을 선택했다.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 공격을 묵인한 셈이다. 그 결과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은 붕괴했고, 중동에서의 러시아 영향력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러시아에선 이후 한동안 중동 우방국 가운데 하나를 너무 쉽게 내줬다는 비판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아사드 정권을 지켜야 했다는 의미다.
대량살상무기, 서방 소극적 개입 등 유사
푸틴 대통령 개인의 욕망으로 유린되는 우크라이나와 아사드 대통령이 통치권을 잃지 않으려 내전을 불사한 시리아를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러 측면에서 시리아 ‘데자뷔’를 불러일으킨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행한 무차별 공습 방식을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대로 자행하고 있다. 군사시설뿐 아니라 병원과 유치원, 학교에 집속탄, 진공폭탄 등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와 보로디안카 등에서는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정황도 나타났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푸틴의 전쟁범죄와 반인류 범죄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1일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주 비니시 마을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민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을 한 문어가 조지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을 움켜쥐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비니시=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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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먼저 공격할 것처럼 꾸며 공격 빌미를 조작하는 수법도 비슷하다. 앞서 NYT는 “과거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을 테러조직 알카에다 조직원으로 낙인 찍는 허위정보를 퍼뜨리고, 반군이 시리아 정부를 비난하려고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가짜 깃발’ 작전을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모두 러시아군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구사하는 전략이다.
‘석유지대 국가’인 러시아는 지속적인 고유가 상황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전쟁은 고유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자양분이다. 권위주의 지도자인 푸틴 대통령의 개인적 리더십, 그의 질병으로 인한 판단 오류 등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개인적 욕망을 국가 이익과 동일시하면서 전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의 시리아 공습과 우크라이나 침략은 민주국가에서는 전쟁이 없다는 ‘민주평화론’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권위주의자는 ‘국제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무시하고 언제든 독단적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그리고 여전히 국제사회는 무정부적이며, 정글의 법칙이 통용된다는 사실을 세계는 목도하고 있다.
정상률 전 명지대 교수/ 전 한국중동학회 회장 |
정상률 전 명지대 교수/전 한국중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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