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의사에 의한 ‘진료의 보조’라고 명확하게 정의된 ‘간호 업무’를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애매한 용어로 확장해 간호사에게만 단독으로 허용하면, 간호사의 업무 범위만이 포괄적으로 확장돼 타 직역들의 역할마저도 간호사가 흡수·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 의료 생태계 내 많은 이들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되는 기형적 구조로 변형될 것이다.
의료계의 모든 직종은 간호사라는 특정 직역만을 위한 단독법하에 직역 간 업무 갈등이 심화해 사회의 공정성을 해하는 동시에 신속하고 풍부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게 될 것이다.
간호협회는 전 세계 90개국 이상에서 독자적인 간호법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 결과 OECD 38개 국가 중 간호법을 보유한 나라는 11개국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법이 없는 27개 국가 중 우리나라를 비롯한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13개국은 의료법에서 보건의료 인력에 관한 사항을 통합 규정하고 있고, 호주·미국·스페인을 포함한 나머지 14개국은 별도의 보건전문직업법에서 보건의료 인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호주와 덴마크의 경우 과거 간호법이 존재했으나, 보건전문직업법이 제정됨에 따라 폐지된 바 있는데 이는 국가 면허를 기반으로 하는 보건의료 인력의 자격·면허·규제에 관한 사항을 하나의 법에 통합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법 적용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보건의료 인력 간의 협업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만 명이 협업하고 있는 의료시스템을 무시하는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의료계에는 대혼란이 국민에게는 의료대란이 발생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코로나19 시국 3년째를 지나는 의료 현장에서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스스로를 산화해가며 사투해 왔다. 환자를 살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감당해 온 모든 의료 직역을 진정성 있게 위로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국가 차원의 확실한 처우 개선책이 필요하다. ‘의료진’이 아닌 ‘간호사’만을 위한 단독법은 절대 그 답이 될 수 없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