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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기형적, 변태적 갑질"… 국립광주과학관 공무직 면담 일지 공개에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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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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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국립광주과학관 감사 A변호사는 직원들에게 서한문을 띄웠다. 당시 관장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복무 감사에서 갑질 등이 적발돼 직무에서 배제된 직후였다. 그는 편지에서 "상당 기간 기관장 공석이 예상된다. 직무대행자(전태호 경영본부장) 중심으로 흔들림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이후 관장은 해임됐다.

관장 공석 50일째인 이달 12일. 국립광주과학관 내부 통신망에 관장 직무대리 명의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직무대리는 사과문을 통해 "직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국립광주과학관은 2월 22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전시기획운영실과 고객서비스팀 과학해설사(공무직) 32명을 대상으로 1대 1 면담을 실시했다. 과학해설사들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게 면담 이유였다. 면담은 전시기획운영실 행정직과 연구직 직원 6명이 면담관으로 나서 공통 질문(12개)에 대한 과학해설사들의 답변과 고충 사항을 면담 일지에 적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공통 질문 중엔 근무 태도나 직무 역량 등 단순 면담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항목도 포함돼 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부서장이 아닌 평직원 등이 면담관으로 나서 동료 직원의 근무 태도와 역량을 평가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묵살됐다. 이에 일부 면담관은 근무 태도와 직무 역량에 대한 면담 평가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립광주과학관은 이달 1일 실명이 담긴 개별 면담 일지를 내부 통신망에 공개해 직원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직원들의 근무 태도와 직무 역량은 물론 민감한 고충 내용까지 고스란히 까발려진 탓이었다. 과학해설사들 사이에선 "기관(광주과학관)이 특정 팀을 상대로 가하는 기형적이고 변태적인 갑질", "인권 침해", "무책임한 조직 운영"이라는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특히 면담 일지엔 행정직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공무직에게 떠넘긴다는 취지의 불만들도 담겨 있어 직원들 간 갈등 조짐까지 일었다.

공무직 노동조합도 발끈했다. 노조는 5일 "이 정도가 공무직을 대하는 광주과학관의 수준"이라며 최고 책임자 공개 사과와 함께 관련자 인사 조치(직무배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후 일주일 만에 직무대리인 경영지원본부장은 고개를 떨궜다. 그는 사과문에서 "사안 처리 과정에서 신중한 처리를 위해 노력했지만 미진한 부분으로 인해 직원 여러분들이 받은 상처를 즉시 치유해 드리지 못해 송구하다"며 "유사 사례가 발생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확한 사실 관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적정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광주과학관이 감사팀을 통한 자체 조사에 나서고도 20일 현재까지 누가 면담 일지 공개를 지시했는지 등에 대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당초 광주과학관 측이 약속했던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치 및 징계, 재발 방지 대책을 이행하지 않으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감사를 요청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는 등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

광주과학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면담 일지 공개와 관련한 감사팀의 사실 관계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그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을 인사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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