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쌍용차와 매각 주간사 EY한영법인은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스토킹 호스는 인수 예정자를 미리 정해놓은 뒤 공개입찰을 부치는 매각 방식이다. 자금력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인수 예정자를 선정하지만, 입찰 과정에서 인수 예정자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인수자가 곧장 교체된다.
스토킹 호스는 인수 예정자를 확보한 상태에서 본입찰을 진행하는 만큼 입찰자가 없어도 매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경쟁을 통해 매각 조건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에디슨모터스 인수가 무산된 상황에서 재매각이 시급해 스토킹 호스 방식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쌍용차는 오는 10월 15일까지 법원으로부터 회생계획안 인가를 받아야 한다.
쌍용차 인수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사진은 쌍용차 평택공장 전경. (쌍용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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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스토킹 호스’ 방식 매각
▷쌍방울 vs KG vs 파빌리온PE 경쟁
쌍용차 인수 후보로는 쌍방울그룹, KG그룹, 사모펀드 파빌리온PE가 진검승부를 벌이는 중이다.
쌍방울그룹은 최근 쌍용차 매각 주간사인 EY한영회계법인에 인수 의향서를 접수했다. 특장차 전문 계열사 광림을 내세워 쌍용차 인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광림은 크레인, 소방차, 환경차, 도저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경쟁력을 갖춘 쌍용차를 인수해 완성차 사업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포부다.
변수는 자금력이다. 업계에서는 쌍용차 재매각이 성사되려면 최소 5000억원 이상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다. 앞서 에디슨모터스의 쌍용차 인수금액이 3049억원이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마련한 회생계획안이 채권자 동의를 얻지 못한 탓이다. 쌍용차는 금융권 채무인 회생담보권 2320억원, 미납 세금 등 조세채권 558억원, 회생채권 5470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쌍용차를 인수하는 업체가 회생담보권과 조세채권, 회생채권을 상환하는 데만 8000억원 이상 자금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운영자금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인수자금은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쌍방울그룹이 쌍용차 인수를 위해 자체적으로 조달 가능한 자금은 1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연결 기준 광림의 현금성 자산은 733억원이었다. 다만 지난해에만 230억원가량 순손실을 냈다는 점이 변수다. 쌍방울그룹 전체 매출도 6000억원대에 그쳐 2조원에 달하는 쌍용차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쌍방울그룹 파트너인 KB증권이 쌍용차 인수자금 조달 참여 계획을 철회하면서 쌍방울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앞서 KB증권은 인수자금 4500억원의 절반가량을 조달하겠다는 내용의 금융참여의향서(LOI)를 쌍방울 측에 전달한 바 있다. 당초 예상과 달리 딜 리스크가 커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결국 인수전 참여 계획을 철회했다.
이에 비해 KG그룹은 자금력에서 한 수 위라는 평가다.
KG그룹은 국내 최초 비료 회사인 경기화학(현 KG케미칼)을 모태로 사업을 키워나갔다. 이니시스(현 KG이니시스), KFC코리아, 동부제철(현 KG스틸) 등을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넓혔다. 철강업과 완성차 제조업이 전후방 산업 관계에 있는 만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속내다.
KG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업체는 KG케미칼. KG케미칼의 현금,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3636억원 수준이다. 유동자산은 1조8855억원에 달한다. 실적도 나쁘지 않다. KG케미칼은 지난해 매출 4조9315억원, 영업이익 4617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률만 10%에 달한다. 또 다른 핵심 계열사 KG스틸은 매출 3조3547억원, 영업이익 2969억원을 기록했다. 주요 계열사 성장세 덕분에 지난해 KG그룹 연매출은 4조9315억원으로 5조원에 육박한다.
물론 현금성 자산만 놓고 보면 쌍용차 인수가 녹록지 않지만 국내 한 사모펀드에 팔기로 한 KG ETS의 폐기물사업부 매각대금 5000억원이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2019년 당시 동부제철을 인수할 때 협력한 재무적투자자(FI) 캑터스PE와도 컨소시엄을 꾸리기로 해 자금력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KG그룹에 비해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논란이 커지자 쌍방울그룹은 부랴부랴 KH그룹과 손을 잡았다. 광림은 최근 성석경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KH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KH그룹은 전자부품 소재·조명 회사인 KH필룩스를 주축으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IHQ, 음향 기업 KH일렉트론 등을 계열사로 뒀다. 서울 남산그랜드하얏트호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를 인수해 호텔, 레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사모펀드 파빌리온PE도 뒤늦게 쌍용차 인수사전의향서를 제출했다. 파빌리온PE는 지난해 전기차 업체 이엘비앤티(EL B&T)와 컨소시엄을 꾸려 쌍용차 인수에 뛰어들었지만 자금 조달 근거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에 밀렸다. 이번에는 안정적 자금 조달을 위해 국내 대형 금융기관과 손잡고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이라는 후문이다.
쌍용차 인수전이 쌍방울, KG그룹, 파빌리온PE의 3파전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외국계 기업이 다크호스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미국 자동차 유통 업체 HAAH오토모티브홀딩스가 세운 ‘카디널원모터스’,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인디EV’, 쌍용차와 전기차 배터리 개발·생산 기술 협약을 맺은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 ‘비야디(BYD)’ 등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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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인수전 시나리오는
▷부활·먹튀·청산 기로에 서
쌍용차 향방은 ‘인수에 성공할 것인가’, 또 ‘인수된다면 어떤 기업이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인수 후 부활’이다. 경영이 안정화되고 전기차 등 신차 개발에 자금을 투입받으면서 판매 대수를 늘려가는 전개다.
2011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된 직후 상황을 떠올리면 좋다. 지금이야 먹튀 논란·경영난 악화에 재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인수 초반에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당시 마힌드라는 쌍용차 지분 약 72%를 5225억원에 사들였는데, 부품 수급과 생산이 안정되면서 판매 실적이 부활했다. 2010년 8만1747대였던 쌍용차 판매 대수는 인수 직후인 2011년 11만3000대까지 급증, 2013년에는 14만5649대까지 늘었다. 2013년 매출은 3조4849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후 신차 개발에도 부쩍 힘을 냈다. 2015년 선보인 소형 SUV ‘티볼리’가 대표적이다. 연구개발 기간 42개월, 총 3500억원이 넘는 개발비가 투입해 내놓은 신차다. 티볼리는 출시 직후부터 쌍용차 ‘주역’ 노릇을 톡톡히 했다. 2015년 내수 시장에서만 4만5000대, 2016년에는 5만7000대를 판매하며 쌍용차 국내 판매 대수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다. 이에 힘입어 2016년에는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우량 기업 인수 후 신차 개발’은 위기를 맞은 현재 쌍용차에도 여전히 유효한 성공 방정식이다.
반대로 이른바 ‘먹튀’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제대로 된 경영 없이 기업을 재매각한다든지, 핵심 기술이나 자산 가치 상승분만 ‘쏙’ 빼먹고 철수해버리는 상황이다.
쌍용차의 첫 번째 외국인 주인이었던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대표적인 ‘먹튀’ 사례로 꼽힌다. 1999년 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돌입한 쌍용차는 5년 뒤인 2004년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됐다. 상하이자동차는 인수 당시 1조2000억원을 쌍용차에 투입해 연간 차량 생산을 30만대로 늘릴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투자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차량 생산은 기존 15만대에서 9만대 수준으로 후퇴했다. 인수 후 신차 개발도 일절 없었다.
‘기술 유출’ 논란도 불거졌다. 디젤 하이브리드 중앙통제장치, 디젤 엔진, 리튬 전지 등 쌍용차 최첨단 기술을 중국으로 빼 갔다는 의혹이다. 중국 자동차 산업은 공교롭게도 상하이자동차가 철수한 2009년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09년 33만대에 불과했던 중국 자동차 수출은 2012년 100만대를 넘어서더니 지난해에는 201만대를 돌파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 인수 이후 중국 자동차가 기술 자립에 성공했고 지금은 중국 자동차 생산이 한국을 앞질렀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라고 한숨 쉬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인도 마힌드라그룹도 종국에는 먹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국금속노조 관계자는 “마힌드라가 티볼리 판매로 올린 매출이 1조원 규모이지만 기술 이전료로 고작 550억원만 지불했다. 2300억원 규모의 직접 투자 약속을 어기고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술만 ‘먹튀’ 대상이 아니다. 인수 기업이 쌍용차가 보유한 ‘자산 가치 상승분’만 취하고 향후 재매각할 수도 있다는 논란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쌍용차 경영 정상화보다 ‘잿밥’에 더 관심을 둔다는 얘기다.
쌍용차가 보유한 경기도 평택공장 부지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쌍용차는 평택공장을 매각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지난해 평택시와 ‘쌍용차 평택공장 이전·개발사업’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평택공장은 부지 가치가 9000억원가량으로 평가됐는데, 용도가 주거 용지로 변경되면 1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에디슨모터스가 채권단으로부터 제시받은 인수대금 3048억원의 3배가 넘는 액수다.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사실만으로 떨어지는 부수입(?)도 만만찮다. 쌍방울그룹이 쌍용차 인수전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쌍방울 주가는 지난 3월 31일부터 3거래일 동안 108.3% 치솟았다. 계열사 그룹 주가도 널뛰었다. 일부 계열사들은 이때를 틈타 보유 주식을 매도하기도 했다. 쌍방울그룹 계열사인 미래산업은 마찬가지로 쌍방울 계열사인 아이오케이 주식 647만6842주를 124억1479만원에 처분했다. 주당 평균 매각가는 1917원 수준으로 쌍용차 인수전 참여 이슈로 주가가 급등하기 전날 종가(1235원)와 비교하면 55%가량 높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청산’이다. 법원에서 제시한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인 10월까지 인수 주인공을 찾지 못할 경우 쌍용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과거 법정관리 과정에서 법원 조사위원이 ‘쌍용차를 존속하는 것보다 청산하는 것이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점도 청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당시 쌍용차 청산 가치는 9820억원, 계속기업 가치는 6200억원으로 조사됐다.
쌍용차 청산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예정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쌍용차 청산 시 수백 개 부품사 부도와 함께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넓게 보면 쌍용차 차주도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인수자 찾기가 불발될 경우 국유화나 산업은행이 우선 인수해 점차적으로 민영화해나가는 방법도 거론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쌍용차 향후 과제는
▷전기차 등 신차 라인업 늘려야
인수 주인공만 찾는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후 경영이다. 쌍용차가 당면한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급한 것은 역시 ‘신차 개발’이다. 쌍용차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단조로운 라인업’이다. 현재 판매 중인 차는 SUV 모델, 한 가지뿐이다. 주력인 코란도·티볼리·렉스턴스포츠 등은 모두 SUV다. 세단은 2017년 체어맨 단종 이후 맥이 끊겼다. 야심 차게 내놨던 다목적차량(MPV) ‘코란도 투리스모’ 역시 2019년부터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SUV로 판매 모델이 한정되면서 쌍용차 판매 실적도 내리막을 탔다. 2016년 15만대에 달했던 쌍용차 판매 대수는 지난해 8만5000대에 그쳤다. 티볼리 이후 이렇다 할 신차 모델도 없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향후 수년간 4~5종의 신규 모델을 선보이고, 그중 5만대 이상 판매를 기록하는 ‘히트작’이 나와야 쌍용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신차 개발에 들어갈 천문학적인 비용 조달이 관건”이라고 답했다.
미래차 라인업 강화도 필수다. 쌍용차는 지난해 첫 전기차 ‘코란도 이모션’을 내놓기는 했지만 신통치 않다. 사전 예약으로 3500대 물량을 확보했지만 생산 자체가 원활하지 않다. 배터리 공급에 차질을 빚는 등 문제로 지난 3월 생산량은 78대에 그쳤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등 자체 전기차 기술 확보가 급하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현재 코란도 이모션은 기존 모델인 코란도 내연기관 플랫폼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현재 외부에 의존하는 전기차 기술을 내재화하고 전기차 플랫폼을 만드는 등 미래차 경쟁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최근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에 내연차 관련 잉여 시설, 잉여 인력이 넘쳐난다. 당장 인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미래차 기술 개발에 대한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필수 교수의 제언이다.
[김경민 기자, 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5호 (2022.04.20~2022.04.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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