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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하루 멀다하고 미사일 쏴놓고 "文노고 평가"…김정은 친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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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온 친서의 모습.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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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22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친서 교환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친서는 내용은 물론, 교환 사실도 기밀에 부치는 게 통상적인데, 북한이 먼저 공개하고 청와대가 화답하는 식으로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에 친서를 보냈고, 김 위원장은 21일 답장을 보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6시쯤 보도에서 김 위원장이 "임기 마지막까지 민족의 대의를 위해 마음 써온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와 노고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며 "북남 수뇌분(남북 정상)들께서는 서로가 희망을 안고 진함 없는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북남 관계가 민족의 염원과 기대에 맞게 개선되고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데 대해 견해를 같이 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도 오전 9시 20분쯤 교환한 친서 내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아쉬운 순간들이 벅찬 기억과 함께 교차하지만, 그래도 김 위원장과 손잡고 한반도 운명을 바꿀 확실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며 “대화로 대결의 시대를 넘어야 하고, 북ㆍ미간 대화도 조속히 재개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양측이 두 정상 간 교환한 친서 내용을 공개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홍수·태풍과 관련해 친서를 주고받은 2020년 9월 이후 1년 7개월 여만이다. 특히 이번 친서 교환은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은 가운데 이뤄져 북한의 의도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보수정부' 목전, 남남갈등 조장



전문가들은 북한의 '갈라치기' 의도에 주목했다.

3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국민의 힘 소속 윤석열 후보가 승리하면서 보수 진영이 5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은 가운데 역대 최소 표차(24만7000여표)인 초박빙 결과의 여파는 신구 권력 간 충돌로 이어졌다. 윤 당선인의 공약인 대통령 집무실 이전부터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에 이르기까지 각종 현안을 두고 대립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대북 접근법도 대화와 협상 등 관여를 우선시해온 문 정부와 달리 윤 당선인은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행동 변화를 앞에 놓는 등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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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자 시절인 지난해 11월 광주 북구 5.18 민주묘역을 찾은 모습. 윤 당선인은 당시 그의 방문을 반대하는 시민들에 막혀 묘역 근처에서 묵념을 했다. 공동취재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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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틈새를 노린 김 위원장이 남남갈등을 유도하기 위해 '친서정치'를 들고 나왔다는 분석이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대남 심리전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특히 대북 정책을 두고 이견을 보이는 한국 내 보수와 진보 세력을 갈라치기하려는 전술"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최근 한국을 향해 전술핵 등 핵 위협을 노골화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뿐 아니라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소유 시설을 철거하는 등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에도 여념이 없다.

또 북한은 금강산 시설 철거로 인한 한국 기업의 피해 등에 대해 협의하자는 남측의 공식 요청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친서에는 김 위원장이 직접 하루 만에 답장을 보낸 것은 물론, 자신들이 먼저 내용까지 공개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선택적 응답'을 통한 노림수가 명확히 보이는 대목이다.



새 정부 대북접근 떠보기



이를 두고 새로 들어서는 한국 정부에 모종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친서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등 문 정부에서 이뤄진 남북 정상 간 기존 합의가 남북관계 개선의 토대라는 점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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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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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친서에서 "판문점 선언, 평양 공동 선언 등이 통일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며 "평화의 동력이 되살아날 것을 믿고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북남수뇌(남북정상)가 역사적인 공동선언들을 발표하고 온 민족에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줬다"며 "아쉬운 점이 많지만 이제껏 기울여온 노력을 바탕으로 남과 북이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남북 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변함없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달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도 "남북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어둘 것"이란 입장이지만,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목표가 명확하다.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된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관계만 정상화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 초기 비대칭적인 남북관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며 "북한은 이를 최대한 활용해 한반도 긴장 조성의 책임을 윤 정부에 돌리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정부에서 이뤄진 기존 남북 간 합의를 윤 정부가 파기했다며 도발 등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도 농후한 셈이다.



'文의 공간' 열어두기?



이번 친서 교환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똑같은 표현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깊은 신뢰의 표시"라면서다. 불과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이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나서 "우몽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이 기자들따위나 함부로 쓰는 도발이라는 말을 망탕 따라한다" 등 막말을 쏟아낸 것과는 비교된다.





문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기 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친서에서는 남북 관계에 한해선 퇴임 이후에도 문 대통령이 움직일 '정치적 공간'을 남겨두려는 양측 모두의 속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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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판문점=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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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친서에서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은 함께 하겠다"고 적었다. 김 위원장이 불편해할 만 한 최근의 도발에 대한 우려나 유감 표시 등은 전혀 없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반도 평화, 통일,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 국민의 한 사람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으로서 어떤 역할이 있다면 하실 수 있지 않겠나"라는 설명을 내놨다.

김 위원장 역시 남북 정상 간 합의물 등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이 자신과 직접 만나고 친서 교환으로 소통한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향후 중요 국면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론을 부각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남북 관계에서 문 대통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운신의 폭을 넓혀준 셈이다. 일각에선 북한 문제가 요동칠 때마다 '등판' 기회를 노리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관계 경색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 사이의 개인적인 신뢰관계를 재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며 "문 대통령은 퇴임 직전에 김 위원장과의 친서 교환을 통해 마지막까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로 기록되기를 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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