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입고 열병식 참석… 전 인민에 "전쟁양상 급속히 변화"
'평화 협상'했던 문재인 정부의 '국방력 강화'도 영향 준 듯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에 참석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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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작년 9월29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보여줬다.
당시 그는 "미국의 일방적이며 불공정한 편가르기식 대외정책으로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구도로 변화되면서 한층 복잡다단해졌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론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심화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에 따른 새로운 동북아시아 정세 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7개월이 지나 김 총비서는 국제정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 25일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다.
군복(원수복)까지 입고 열병식에 참석한 그는 연설에서 "세계 군사력의 발전 추세와 현 시기 급속하게 변화되는 전쟁 양상은 우리 군대를 군사 기술적으로 더 빠르게 현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김 총비서의 이번 열병식 연설은 이어진 '핵무력 사명의 결행' 언급 때문에 군사력의 '현대화(강화)' 방침 수립에 초점을 맞춰 해석됐다.
그러나 이번 열병식 연설 중 외교적 관점에서 주목할 발언은 '세계 군사력의 발전 추세와 급속하게 변화되는 전쟁 양상'이다. 이는 작년 9월 이후 국제정세에 변화를 가져온 '우크라이나 사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김정은, 그리고 북한의 정세 판단과 외교전략 수립에 있어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선명하지 않다. 다만 북한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미국을 지목하면서 북·중·러 3각 밀착의 강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또 러시아의 빠른 승리가 예상됐던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는 상황을 북한에서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이 그 이유 중 하나란 점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김 총비서에게 2가지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다. 하나는 '강력한 군사력과 의지'가 '강력한 국력'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동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밀착' 상대인 러시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입장에 이입된 판단일 수 있단 점에서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북한 입장을 '해설'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이번 열병식을 소개하면서 "대국들의 대립 격화로 유라시아의 한복판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국제적 안보환경이 복잡하게 요동치는 격변기에 조선(북한)의 불가항력을 과시했다"고 언급한 건 북한의 현재 인식을 어느 정도 솔직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가 그간 '역대급 국방비'를 투입해 군의 전반적인 미사일 조직과 운영시스템을 개편하고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한 것도 북한에 시사하는 점이 컸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신형 미사일을 공개할 때마다 이에 대응하거나 사실상 같은 무기체계를 마치 '답장' 달듯 공개해왔다. 국제적으로 개발이 제한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력 과시는 '한국형 우주발사체' 발사로 상쇄됐다.
지난 2018년 '9·19군사합의'로 남북한 접경지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은 현저히 줄었으나, 이처럼 남북은 이미 '비대면' 전투를 위한 국방력 강화를 각기 꾸준히 추진해왔다. '정치적 협상이 국방력 강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란 일각의 분석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이런 이유로 김 총비서의 작년 9월, 그리고 이번 연설의 함의를 단순히 대미·대남전략 변화 여부나 '위협'의 강도 변화 여부 등 단편적 측면으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김 총비서는 작년 10월 사상 처음으로 개최한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일단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언급은 올 3월 ICBM 시험발사 때도 반복됐다.
그리고 경제 발전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북한이 지난 2년간 이어오고 있는 국정 기조다.
이 2가지를 종합하면 북한은 '강해지고, 잘 살겠다'는 어쩌면 양가적 판단을 내렸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북한이 강해지기 위해 선택한 건 핵무력 강화다. 김 총비서는 열병식 연설에서 "격변하는 정치군사 정세와 앞으로의 온갖 위기에 대비해 우리가 억척같이 걸어온 자위적이며 현대적인 무력건설의 길로 더 빨리, 더 줄기차게 나갈 것"이라며 "특히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앞서 천명한 '제국주의'와의 장기적 대결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여기에 더하면, 북한은 '신냉전' 구도 속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의 가치를 최대치로 높이는 방향으로 외교에 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추정일 뿐이지만, 이는 반드시 중국·러시아의 '승인'이 필요한 방식이 될 것 같진 않다는 전망도 있다. 오히려 중국·러시아가 북한의 역할을 제고하고 북한의 의지를 자신들의 외교에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핵개발 또는 핵실험이 중국의 '승인' 하에 이뤄질 것이란 판단을 우리 스스로도 흔들 필요가 있단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달 16일 북한이 시험 발사한 '신형전술유도무기', 즉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의 함의는 더 커진다. 김 총비서는 올해 극초음속미사일을 제외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땐 참관하지 않았지만, 올해 발사한 미사일 중 가장 사거리가 짧은 축에 드는 이 미사일(110여㎞) 시험발사엔 참관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이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을 강화했다고 의미를 부여한 이 미사일을 김 총비서가 직접 봤다는 건 그들이 그간 주력한 '전략핵' 개발 역량을 '전술핵'에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전반적인 '정세'(전시엔 '전세') 변화를 노리는 전략핵과 달리 국지적 핵공격 능력을 높이는 전술핵 개발은 북한이 한반도 정세 장악력을 높이겠단 계획을 수립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냉전 구도에서 북한이 원하는 '역할' 또한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췄을 수 있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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