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제4 이동통신 사업자인 디시네트워크(DISH Network)에 대규모 5세대(5G) 통신 장비를 공급한다. 이번 수주는 2020년 9월 버라이즌과의 7조9000억원 장비 납품 계약에 이은 미국 내 두 번째 규모다.
삼성전자는 3일 디시네트워크에 1조원 이상의 5G 이동통신 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디시네트워크의 미국 5G 전국망 구축을 위한 5G 가상화 기지국, 다중 입출력 기지국을 포함한 라디오 제품 등 다양한 통신 장비를 공급할 예정이다.
1980년 위성TV 서비스 회사로 설립된 디시네트워크는 2020년 무선통신 서비스를 위한 주파수 라이선스를 확보해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는 3위 사업자인 T-모바일의 통신망을 이용해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가입자는 870만명에 달한다.
디시네트워크는 삼성전자의 차세대 통신 장비를 도입해 이른 시일 내에 전국에 독자적인 5G 통신망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가입자 확보 경쟁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디시네트워크는 내년 중반까지 미국 인구의 70%를 커버하는 5G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약속하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디시네트워크에 공급하는 5G 가상화 기지국은 고가의 전용 하드웨어에서만 구현되는 네트워크 기능을 범용 서버를 이용해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유연하고 효율적인 통신망 구축과 운영을 지원하는 차세대 기술로 통한다. 이 기지국은 지난 3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의 대상 격인 'CTO초이스'와 '최고의 모바일 혁신 기술상' 2관왕을 수상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현재 미국 내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버라이즌이 삼성전자의 5G 가상화 기지국을 활용한 대규모 네트워크를 구축해 수백만 명의 가입자에게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보다폰UK도 지난 1월 삼성전자 5G 가상화 기지국을 활용해 상용망 구축을 시작했다.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디시네트워크 본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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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주의 배경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협상 노력이 중요했다는 평가다. 통신 장비 사업은 계약 규모가 크고 장기간 계약이 대부분이다. 또 주요 기간망으로 사회 인프라스트럭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약속이 사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한 디시네트워크 창업자 찰리 어건 회장을 직접 만나 5G 통신 장비 세일즈에 나섰다. 특히 이 부회장과 어건 회장은 당초 월요일에 짧은 비즈니스 미팅을 하기로 약속했으나, 하루 전인 일요일에 이 부회장이 어건 회장에게 북한산 동반 산행을 제안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건 회장은 본사가 위치한 콜로라도주의 해발 1만4000피트(약 4300m) 이상의 모든 봉우리를 올랐고, 킬리만자로산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 세계의 고산 지역을 등반할 정도로 전문가급 실력을 갖춘 등산 애호가다. 이 점에 착안해 이 부회장이 북한산 산행을 제안한 것이다.
일요일 오전 이 부회장은 직접 차량을 운전해 어건 회장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가 그를 태우고 북한산까지 단둘이 이동했다. 이날 등산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약 5시간가량 수행원 없이 진행됐다. 두 사람은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부터 삼성과 디시네트워크의 향후 협력 강화 방안까지 폭넓은 분야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산행을 계기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신뢰 관계를 구축했고, 그 결과 어건 회장이 이번 수주를 확정 짓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전자 통신 장비 사업에서 핵심 경쟁력이 되어 왔다. 2020년 버라이즌과의 7조9000억원 규모 5G 장기 계약과 지난해 NTT도코모와의 통신 장비 계약 때에도 이 부회장이 직접 통신사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협상을 진척시켰다. 또 이 부회장은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그룹 회장 자녀들의 결혼식에 국내 기업인 중 유일하게 초청받아 인도를 방문해 친분을 쌓기도 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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