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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한국 신혼부부 매주 찾아” 발리 미식계 뒤흔든 미쉐린 사냥꾼 [호텔 체크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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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우붓 계곡에서 피어난 유러피안 파인다이닝을 서울에서 만났다. 벨기에 출신 닉 밴더비켄(Nic Vanderbeeken) 바이스로이 발리 아페레티프(Apéritif) 총괄셰프가 지난달 서울 소피텔 앰배서더 ‘페메종(Fait Maison)’에서 와인 갈라 디너를 열었다. 발리 아페리티프 요리를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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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밴더비켄 셰프 / 사진=바이스로이 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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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 계곡에 자리한 리조트 바이스로이 발리가 운영하는 아페리티프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천연 퇴비로 재배한 30여 가지 채소와 꽃으로 팜투테이블을 실현하는 아페리티프는 바이스로이 발리에서 200만 달러(약 29억 1840만 원)를 투자해 18개월 공사 끝에 탄생했다. 20년 경력의 닉 셰프는 인도네시아 향신료와 유럽 요리법을 믹스매치해 글로벌 미식 여행을 선사한다.

여행플러스는 페메종에서 닉 밴더비켄 셰프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Q. 방한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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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페리티프 내부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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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메종 레스토랑과 함께하는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올해 가장 기대했던 프로젝트다. 아페리티프를 꾸준히 찾는 한국인들 사랑에 보답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매주 두세 번씩 방문하는 커플과 신혼여행객들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페메종과 만남은 운명 같았다. 혁신적인 접근과 요리에 대한 열정이 아페리티프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일치한다. 인도네시아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게 목표다. 요리를 통해 국경의 벽을 허물고자 한다. 음식으로 하나되는 순간이 ‘국경 없는 미식’의 진정한 가치다.

Q. 벨기에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아시아로 진출한 계기와 특히 발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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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밴더비켄 셰프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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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첫 경력은 업장 소유주이자 주방장인 셰프와 나란히 일하는 작은 주방이었다. 둘이서만 일하며 유럽 북해(North Sea)에서 갓 잡아 올린 해산물을 다루는 매 순간이 설렘이었다. 북해 새우 껍질을 까던 손놀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칼질, 화구 다루기, 품질 관리까지 작은 주방에서 배운 모든 순간이 지금의 밑바탕이 됐다.

이후 셰프 3명이 운영하는 파인다이닝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는 수셰프로 생선과 고기를 전문적으로 다뤘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기술을 연마했고 주방을 이끄는 셰프 철학을 구현해 일관된 맛을 유지했다.

유럽 마지막 발자취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베르토(Berto)’였다. 당시 분자요리가 트렌드였다. 분자요리는 물리화학적 원리로 식재료의 분자 구조와 조리법을 분석한 요리 기법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장시간 근무와 낮은 급여 문제로 파인다이닝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개인 레스토랑 ‘더 비글스(The Biggles)’를 열어 비스트로노미를 실현했다. 비스트로노미(Bistronomy)는 비스트로(Bistro)와 가스트로노미(Gastronomy)의 합성어로 고급 레스토랑의 수준 높은 맛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기는 다이닝 콘셉트다. 매일 시장에서 고른 신선한 재료로 요리를 선보이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성공을 거뒀다. 파트너에게 지분을 매각한 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시아행을 택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가 막 출범했을 때였고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셰프들의 흐름을 보며 도전을 결심했다.

베트남에서 현지 식재료를 익히다 바이스로이 발리 올데이 다이닝 ‘캐스케이드’로 자리를 옮겼다. 현지 풍미를 유럽식 조리법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발리만의 재료와 요리 전통은 실험정신을 자극했다. 지금은 독자적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최상의 재료로 정갈한 요리를 선보인다.

Q. 자체 온실에서 재배하는 식재료 중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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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농장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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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황을 가장 좋아한다. 인도네시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다루기도 쉬워 애착이 간다. 노란빛을 내는 강황은 카레와 수프에 들어가며 발리와 수마트라의 전통 양념장인 붐부 발리(bumbu bali), 붐부 렌당(bumbu rendang)에도 빠지지 않는다.

강황은 요리에 황금빛깔을 더하고 흙냄새가 나면서도 쓴맛을 지녔다. 자칫 과할 수 있는 음식 맛을 잡아주고 몸에도 좋다. 마늘, 생강, 레몬그라스와 잘 어울려 신선하거나 말린 상태로도 요리에 쓰인다.

발리에서 발견한 또 다른 재료는 인도네시아 바질로 불리는 허브 ‘케망기(Kemangi)’다. 향이 강한 소스나 기름, 카레 소스를 만들 때 다양하게 쓴다. 서양 바질보다 달콤하면서도 자극이 덜하다.

Q. 다양한 미쉐린 스타 셰프들과 협업 중 인상 깊었던 순간과 요리 세계의 변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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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페리티프 내부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2013년부터 협업을 시작했는데 모든 순간이 값졌다. 젊은 시절 나만의 길을 걷던 때 미쉐린 3스타 셰프들을 동경했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잊지 못한다. 주방 안팎에서 셰프들은 독특한 매력을 보여줬다. 태국 방콕, 싱가포르, 한국, 미국 마이애미와 워싱턴 D.C., 멕시코까지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다.

열린 마음으로 여러 문화의 요리를 배우며 성장했다. 각국 요리법을 배우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었다. 멕시코 몰레 소스를 현지 재료와 향신료로 재해석해 메뉴로 선보인 적도 있다. 국제 셰프들과 협업은 요리 지식을 크게 넓혀줬다. 특정 요리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여행과 미식 경험을 통해 얻은 영감을 요리에 담아냈다.

Q. 요리 여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나 순간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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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페리티프 외관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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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는 요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케스케이드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안정된 토대를 쌓은 후 아페리티프에서 도전을 시작했다. 아페리티프 철학은 단순하다. ‘적을수록 더 많다(Less is more)’라는 원칙으로 최상급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좋은 재료를 다룰 때는 재료가 가진 맛을 가장 잘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는 인도네시아 고유의 맛과 향신료를 새롭게 해석한 요리를 세계 각국 방문객과 나누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직원들 급여를 모두 보장하며 팀을 지켜낸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디며 팀은 끈끈해졌다.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시도할 수 있는 문화가 아페리티프 강점이다. 모두 아이디어를 마음껏 제안하고 실험할 수 있다.

Q. 서울 갈라 디너에서 선보였던 메뉴 중 본인 요리 철학을 가장 잘 담은 메뉴는.
몇 가지 절임 요리를 담았다. 한국 고객이 강렬한 맛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인도네시아 대표 요리인 렌당이나 굴라이를 그대로 내기보다 아페리티프만의 색다른 맛을 준비했다. 메인 요리로 내놓은 고추 오일을 두른 구운 양배추는 김치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전혀 다른 맛으로 완성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과일 샐러드인 루작을 곁들였다. 애피타이저로는 절인 무를 곁들인 가리비, 콤부차 토마토와 레드 래디시를 더한 토마토 요리를 선보였다.

Q. 한국 식재료 중 주목하는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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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로빈(Mikael Robin)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총괄 셰프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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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한국 요리 핵심 요소라 깊이 있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미카엘 로빈(Mikael Robin)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총괄 셰프와 밍글스에서 한우를 맛보며 뛰어난 품질에 감동했고 메뉴 구상에도 도움이 됐다. 시간이 짧아 아쉽게도 다른 한국 식재료를 자세히 알아보진 못했지만 앞으로 한국의 다양한 맛을 배우고 싶다.

Q.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나만의 색깔을 담은 요리를 만드는 게 늘 꿈이었고 아페리티프에서 그 꿈을 실현하고 있다. 국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음식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유행을 좇기보단 현재 사는 곳에서 영감을 얻는다. 발리가 요리 중심지가 되길 바란다. 재능 있는 셰프들이 많다.

처음에는 현지 음식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매력을 느꼈다. 아직 겉만 살펴본 것 같아서 전통 요리를 잘 아는 현지 요리사들에게 계속 배운다. 현지 농부들과 함께 일하며 고유 향신료로 맛을 내는 데 집중한다.

언젠가 미쉐린 가이드가 인도네시아로 진출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항상 미쉐린 수준의 요리를 목표로 노력한다. 미쉐린 가이드 등재로 많은 미식가들이 인도네시아를 찾길 바란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좋은 것이 많아서 세계가 그 가치를 이제야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작은 레스토랑을 열어 시장 투어와 요리 클래스를 병행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다음 세대와 요리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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