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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국내 플랫폼기업 규제 강화 나섰던 정부, '자율규제'로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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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플랫폼 산업에 대해 '자율규제' 방침을 세웠다. 국내 플랫폼 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이 거세게 일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강화에 나섰던 분위기가 180도 바뀐 것이다. 정부는 플랫폼 업계 자율규제기구를 구성하기 위한 범부처 디지털 플랫폼 정책협의체를 꾸리기로 했다. 이 협의체에서 플랫폼 산업의 자율규제기구 설립과 관련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자율규제 논의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자율규제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준수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내 플랫폼 업계의 자율규제는 첫 단추가 되는 출발점에 섰다. 민관이 플랫폼 자율규제를 어떻게 만들어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봤다.

국민이 자율규제 신뢰할 수 있게 기업 스스로 강력한 자정 노력을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기업신뢰 없으면 법제화 요구 커
플랫폼 업계 내 자율규제 지켜야

해외기업 시장 지배력 압도적
국내기업 규제 역차별 없어야

매일경제

"국내 플랫폼 기업은 자율 규제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자정 노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플랫폼 산업 수준을 볼 때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과 같은 사전 규제는 시기상조이며 자율 규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유 교수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공정, 혁신, 상생 등 방향성에 맞춰 자율규제를 만들고 지키며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율규제를 둘러싸고 논란에 휘말리고 신뢰가 무너지면 법제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자율규제를 지키지 않은 플랫폼에 업계 기업들도 쓴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며 "플랫폼 기업은 국민이 '자율규제를 믿을 만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에 대해선 최소한의 역할을 주문했다. 정부는 플랫폼 기업들이 스스로 실효성 있는 규제를 만들고 지킬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뤄진 규제 논의가 국내 플랫폼 기업의 성장 속도 대비 지나치게 앞서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랫폼 규제의 핵심은 시장지배력인데 현실은 구글 등 해외 플랫폼이 국내 사업자보다 훨씬 크다"며 "미국과 유럽도 시가총액 수백~수천조 원 규모의 글로벌 빅테크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를 사전 규제하겠다 것인데, 많아야 수십조 원 규모의 국내 플랫폼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해외 플랫폼에는 국내 법과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역차별받는 상황이다. 망 사용료가 대표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매년 수백억 원의 망 사용료를 통신사에 내고 있지만 구글과 넷플릭스는 부담하지 않고 있다.

최근까지 논란이 된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 공개 여부에 대해서도 유 교수는 "실제 문제가 발생할 때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후 규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수시로 알고리즘을 바꾸기 때문에 검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간 자율규제 시스템 이미 작동…스타트업·中企와도 소통 늘려야

황성기 게임정책자율기구 의장

규제 안지킨 기업에 공표 조치
시장평판 타격 줘 충분한 구속력

기존 규제, 대형사 위주로 설계
신규사업자엔 진입장벽 될 수도

매일경제

"자율규제도 엄연히 '규제'입니다. 무규제가 아닙니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랫폼 기업들이 기존 법 틀 안에서 어떻게 규제를 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실효성이 높은 자율규제안이 나올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 교수는 민간 기업의 자율규제가 작동하는 사례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를 소개했다.

GSOK는 확률형 아이템 등 게임 관련 논란이 일면서 2018년 말 게임산업의 진흥과 사회적 책임을 추구하기 위한 자율규제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출범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국내 주요 게임사와 학계 등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황 교수는 GSOK 의장을 맡고 있다.

자율규제는 게임사가 만들지만, 이를 지키고 있는지를 '독립기구'인 GSOK가 꼼꼼히 체크한다. 자율규제를 어긴 게임사와 게임은 3개월 연속 개선이 없는 경우 홈페이지에 공표하고 있다. 확실한 페널티를 주는 것이다.

황 교수는 "자율규제는 강제력이 없고 기업이 따르지 않아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면서도 "다만 미준수 결과 공표는 게임사의 시장 평판에 상당한 타격을 주기 때문에 큰 게임사일수록 자율규제를 지키려는 유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기업의 자율규제도 관련 기관·단체들과 함께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구속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의미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브랜드와 평판에 민감한 대형 플랫폼 기업일수록 자율규제를 잘 따를 가능성이 크다.

황 교수는 기업 주도로 정하는 자율규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율규제가 스타트업 등 신규 중소 사업자에게 높은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의료 광고 분야에선 의료계가 정한 기준이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것보다 더 엄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한다. 자율규제가 기존 플랫폼 기업들 위주로 만들어질 경우 신생 스타트업에 '모래주머니'가 될 우려가 있는 만큼 업계 소통폭을 넓혀야 한다는 조언이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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