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8일 국회 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당 중앙윤리위원회의에 출석해 '성 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대해 소명한 뒤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주형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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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111]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모두 윤석열정부를 만든 공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대 대통령선거 운동 과정에서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막판에는 대선 승리를 위해 열심히 뛰었습니다. 안 의원은 윤 대통령과 단일화하며 1등 공신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와 안 의원은 여전히 묵은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 의원은 한 방송에서 "이 대표와 왜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첫 인연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 때 서로 경쟁할 때였다. 나는 3번을, 이 대표는 1번을 달고 경쟁했는데 내가 20%포인트 이상 이겼다. 그게 악감정의 시작이다." 이에 이 대표는 즉시 반박했습니다. "안 의원은 2016년을 사시나 보다. 그런 거 평생 즐기시라."
한 지붕 아래서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면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인 인상여와 염파가 떠오릅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인상여의 통 큰 양보로 화해하는 드라마를 씁니다. '관포지교'와 함께 절친 관계를 뜻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고사가 이들로 인해 만들어졌습니다. 사마천에 따르면 인상여는 출신이 미천했지만 지혜와 용기를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조나라 스타로 만든 것은 '화씨벽'입니다. 화씨 성을 가진 사람이 발견한 옥돌이라 '화씨벽'으로 불립니다. 화씨는 옥돌의 진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두 다리가 잘리는 형벌까지 받았습니다. 그런 귀중한 물건이 돌고 돌아 인상여가 보좌하던 조나라 내시 무현의 손에 들어왔고 그것을 조나라 왕이 빼앗았습니다.
이 소문은 당시 가장 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진(秦)나라 왕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진왕은 화씨벽을 갖고 싶은 마음이 동했습니다. 그래서 꼼수를 씁니다. 조나라에 이런 서찰을 보낸 겁니다. "진나라의 열다섯 성을 줄 테니 화씨벽을 한번만 보여주시오." 표현은 정중했지만 화씨벽을 강탈하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을 조나라가 모를 리 없었습니다. 조왕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진왕의 요청을 묵살할 수도 없고 화씨벽을 보내면 빼앗길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무현이 인상여를 천거합니다.
조왕의 명을 받은 인상여는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로 갑니다. 진왕은 화씨벽을 보며 감탄만 쏟아내고 열다섯 성을 주겠다는 약속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인상여는 진왕의 음흉한 의도를 확인하고 진왕에게 말합니다. "이 화씨벽에는 희미한 흠결이 있습니다. 신이 대왕마마께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화씨벽을 다시 받아든 인상여는 안색을 바꾸고 결연하게 말합니다. "화씨벽을 보여주면 조나라에 열다섯 성을 주기로 했으면서도 이에 대해선 말씀이 없으십니다. 분명 강제로 빼앗으려고 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신의 머리와 화씨벽은 지금 함께 기둥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인상여의 위협에 진왕은 깜짝 놀라 약속한 성을 주겠다고 합니다. 이에 인상여는 진왕에게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닷새 동안 목욕재계를 하고 화씨벽을 다시 받으라고 한 겁니다. 이렇게 시간을 번 인상여는 몰래 사람을 시켜 화씨벽을 조나라로 보냅니다. 진왕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지만 인상여를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화씨벽을 얻지도 못하고 조나라 사신을 죽이는 것은 실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상여는 '민지'라는 곳에서 진왕과 조왕이 회맹할 때 또 한번 활약상을 보여줍니다. 진왕의 오만한 행동을 멋지게 되받아친 것이죠. 진왕은 조왕과 술을 마시다가 엉뚱한 제안을 합니다. 조왕에게 악기를 연주해달라고 한 것이죠. 다른 나라 왕에게 연주를 시키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조왕은 수치심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연주했습니다. 화를 냈다가 진왕과 사이가 나빠지면 나라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왕이 연주를 끝내자 진왕은 한술 더 떴습니다. 사관을 불러 진왕을 위해 조왕이 악기를 연주한 일을 기록하라고 한 것이죠.
이때 인상여가 나서 진왕에게 말합니다. "신은 진나라 음악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제가 질장구를 바치겠으니 진왕께서 두드리며 우리 대왕마마와 함께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진왕은 화가 나 안색이 변했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인상여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습니다. "진왕께서는 진나라의 강한 힘만 믿고 계십니까? 하지만 지금 신과 왕과의 거리는 다섯 걸음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은 제 목을 칼로 찔러 그 피로 대왕의 몸을 물들일 수 있습니다." 인상여의 서슬 퍼런 협박에 진왕은 어쩔 수 없이 노래 한 곡을 불렀습니다. 인상여는 사관을 시켜 이렇게 쓰도록 했습니다. "모년 모월 모일 조왕이 민지에서 진왕에게 명령을 내려 질장구를 두드리게 했다."
회맹이 끝날 무렵 진나라는 조나라에 성 열다섯 곳을 바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자 인상여는 즉각 진왕에게 청했습니다. "예절이란 오고 감이 있는 법이니 조나라가 열다섯 성을 드리면 진나라는 도읍인 함양을 조나라에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나라 대신들이 신경전을 벌이며 옥신각신 하려 하자 진왕은 좋은 말로 회맹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두 나라는 우호를 맺으러 온 것이니 분란을 일으키지 마시오." 민지의 회맹으로 인상여의 명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조왕은 인상여를 최고 관직에 임명했습니다. 염파 장군보다 윗자리였습니다. 이에 염파는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인상여를 죽이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습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못마땅했습니다. 비굴하게 처신하는 인상여를 보고 떠나겠다고 하는 이들도 이었습니다. 이에 인상여는 염파를 피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강한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하지 못하는 이유는 염파 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오. 두 사람이 서로 싸우면 한 사람은 죽게 돼 있소. 그렇게 되면 진나라가 침략할 게 뻔합니다. 내가 염 장군을 피해 다니는 것은 나랏일을 막중하게 생각하고 사사로운 복수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자신의 옹졸함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인상여에게 사죄했습니다. 그런 그를 인상여는 끌어안았고 둘은 화해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이 잘려도 마음이 변치 않는 우정을 맺자며 손을 잡았습니다. '문경지교'가 된 것이죠.
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인상여나 염파 같은 도량이 큰 인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상여처럼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사람이 한 수 위라는 사실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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