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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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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0㎞ 거리 넘은 마법의 샴쌍둥이 분리…"화성 착륙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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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현실에서 수술하는 건 인간이 화성에 착륙하는 것과 같았다.”

영국 런던 그레이트 오르몬드 스트리트 병원의 신경외과의 노울루 오와세 질라니 박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머리와 뇌를 공유하는 세 살배기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한 후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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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쌍둥이였던 베르나르두(왼쪽에서 세번째) 리마와 아서 리마 형제가 지난 7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울로 니에메예르 국립뇌연구소 부속병원에서 분리 수술에 성공한 뒤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병실에 누워있다. 가장 왼쪽은 분리 수술을 집도한 해당 병원의 신경외과의 가브리엘 무파레 박사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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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서 머리 붙은 ‘샴쌍둥이’ 분리 수술 성공



약 9300㎞ 떨어진 런던과 리우데자네이루 의료진이 ‘가상 수술실’에 모여 함께 협력해서 이룬 성과라고 영국 BBC·더타임스 등이 1일(현지시간) 전했다. 질라니 박사는 지난 7월 리우데자네이루의 파울로 니에메예르 국립뇌연구소 부속병원에서 해당 병원 신경외과의 가브리엘 무파레 박사와 함께 두개골과 혈관을 공유하는 '두개 유합 샴쌍둥이(craniopagus twins)'인 베르나르두 리마와 아서 리마 쌍둥이 형제를 분리했다. 쌍둥이는 회복 중이지만 수술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고 의료진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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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병원에서 분리수술을 마치고 휴식 중인 샴쌍둥이 베르나르두(왼쪽)와 아서.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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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브라질 북부 호라이마주에서 태어난 리마 쌍둥이 형제는 머리가 서로 붙은 채로 태어나 지난 2020년부터 파울로 니에메예르 국립뇌연구소 부속병원에서 지냈다. 샴쌍둥이는 6만번의 출산 중 1번꼴로 나오는데, 그중 5%만이 두개 유합으로 태어난다. 매년 50쌍 정도가 태어나는데, 이 중 30일 이상 생존하는 건 15쌍 정도라고 한다.

뇌에서 중요한 정맥을 공유하고 있는 리마 쌍둥이 형제의 분리 수술은 불가능해 보였다. 만 4세를 앞둔 둘은 분리 수술을 하는 샴쌍둥이 중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다. 이럴 경우 수술 이후에도 여러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거기다 앞서 분리 수술 실패로 조직이 손상돼 더욱 어려운 수술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무파레 박사가 이끄는 리우데자네이루 의료진은 샴쌍둥이 수술에 몇 차례 성공한 런던의 질라니 박사에게 올 초 도움을 요청했다.



9300㎞ 거리 잇는 ‘가상 수술실’서 수개월 리허설



질라니 박사에게도 어려운 수술이었다. 만약 기존 수술처럼 하다가 혈관, 조직 등을 잘못 건드리면 리마 쌍둥이 형제에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다. 그는 고심 끝에 가상현실(VR)을 이용하기로 했다. 두 병원의 의료진들이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쌍둥이의 뇌를 스캔해 만든 두개골 전자지도 등을 이용해 VR 공간에서 수개월간 수술 리허설을 했다. VR 수술실에서 실패하면 다른 방식을 시도하는 식으로 수술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VR에선 런던과 리우데자네이루의 먼 거리(9300㎞)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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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태어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형제 모습. 가장 오른쪽이 VR 수술 리허설 방식을 시도한 영국 런던 그레이트 오르몬드 스트리트 병원의 신경외과의 노울루 오와세 질라니 박사다. 영국 의료 자선단체인 제미니 언트윈드 홈페이지


그 결과 리마 형제는 33시간이 걸린 마지막 두 차례 수술을 포함해 총 7번에 걸친 수술을 받는 동안 큰 위험 없이 분리될 수 있었다. 두 도시에서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만 100명에 달했다. 모두 VR 리허설이 큰 도움이 됐다. 다른 나라의 외과 의사들이 가상 수술실에서 함께 준비해 수술에 성공한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질라니 박사는 "아이들을 실제 위험에 놓기 전에 해부 구조를 보고 수술을 준비해 외과 의사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줘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VR에서 수술하는 건 마치 인간이 화성에 착륙하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초현대적인 작업'이었다"고 토로했다. 인간이 화성에 간 적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 무파레 박사는 "처음엔 아무도 이런 수술 작업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는데, 둘 다 살린 것은 역사적인 성과"라고 했다.



올해 8200억원 규모, VR 의료산업 가파른 성장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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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강관리협회 직원들이 지난 7월 VR(가상현실) 장비를 이용해 건강관리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 한국건강관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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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을 이용한 의료산업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시장조사업체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산업에서 VR 규모는 지난해 4억5900만 달러(약 6006억원), 올해는 6억2800만 달러(약 8200억원)를 기록했다. 2029년까지 62억8700만 달러(약 8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업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의료계에서 VR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대생 교육이 주로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임상 교육을 VR 활용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또 VR은 정신 건강 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공포증,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경우 VR에서 특정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외과 진료에서는 샴쌍둥이 분리 수술처럼 어려운 외과 수술 리허설로 VR을 사용해 성공률을 높이고, 수술 과정과 예후를 VR로 생생하게 제시해 환자와 보호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쓰이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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