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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수압에 뚜껑 ‘뻥’… 폭우 때마다 사람 잡는 ‘맨홀 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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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하수용 46만367개 설치

집중호우 땐 역류하는 경우 빈번

사고 방지하는 장치 마땅히 없어

강남 실종자 중 男 숨진채 발견

수색·구조조차 쉽지 않은 상황

서울시 “스스로 보행 주의해야”

“불량맨홀부터 신속 재정비해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빌딩 인근 하수구에 지난 8일 밤 성인 남녀가 빠져 실종된 뒤 40대 남성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남매 사이로 당시 함께 길을 가던 중 폭우로 맨홀뚜껑이 열리면서 이곳에 빠져 급류에 휩쓸렸다. 이 같은 모습은 인근 차량 블랙박스에 담겨 알려졌다.

세계일보

소용돌이 아찔 지난 9일 폭우로 다수의 차량이 침수된 서울 강남구 대치사거리의 배수구가 뚜껑이 없어진 채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날 침수된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하수가 역류하면서 배수구 강철 뚜껑이 유실된 곳이 다수 발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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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대치역 인근에서는 9일 0시20분쯤 인도의 맨홀이 열리자 지나가는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주변이 캄캄하고 비까지 내리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시민들이 직접 공사장 주변에서 고깔 등을 가져와 맨홀 낙상사고를 막았다. 인근 맨홀 역시 비슷한 시각에 열려 한 시민은 쓰레기통을 옮겨 사람들의 낙상사고를 막았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 설치된 맨홀은 총 62만4318개로 이중 46만367개가 상·하수용이다. 맨홀뚜껑에는 보통 잠금장치가 있지만 집중호우가 발생했을 때 맨홀이 잠겨 있으면 물이 역류해 하수관로나 도로가 터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구청 관계자들은 일부 구간의 잠금장치를 열어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집중호우로 침수가 발생한 강남구 등은 맨홀을 열어놔 물이 빠져 나가도록 했다.

맨홀뚜껑을 잠가 놓는다 하더라도 물이 역류했을 때는 뚜껑이 쉽게 이탈할 수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시간당 50㎜의 집중호우가 발생했을 때 40㎏ 맨홀뚜껑이 불과 41초 만에 이탈한다는 실험결과를 2014년 발표했다.

문제는 맨홀뚜껑이 지면을 이탈했을 때 낙상사고를 방지하는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도로가 침수된 상황에서 사람이나 차가 맨홀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빠지는 아찔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곤 한다. 자치구는 집중호우 상황에서 인력부족 등 이유로 맨홀 일대를 관리할 대안이 없다고 토로한다. 서울 자치구 관계자는 “맨홀이 이탈했을 때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력으로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맨홀 수가 너무 많고 집중호우 상황에서 그걸 다 통제할 수 없어 시민 스스로 보행에 주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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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맨홀은 낙상사고의 원인이 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맨홀은 노후화 등 이유로 주변에 1㎝ 이상 단차가 발생하는 불량이 일어날 수 있다. 시는 올해 이런 불량맨홀을 약 64% 정비했고 내년까지 정비를 마칠 계획이다. 김형재 시의원은 “국기원 인근 경사도로 맨홀에서는 7~8차례 미끄럼 사고 민원이 접수됐다고 들었다”며 “이번처럼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맨홀 일대가 위험해질 수 있는 만큼 불량맨홀을 신속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맨홀에 빠지면 실종자의 구조가 쉽지 않다. 지하관로로 휩쓸려 간 실종자의 위치파악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서초구 남매의 경우 소방당국은 인근 하천까지 떠내려갔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하수도는 반포천까지 물길이 이어져 있어 소방당국은 수색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날 오전엔 특수구조대도 투입됐다. 서초경찰서, 서초구청 등 기관의 지원도 받아 수색이 진행 중이다. 서초소방서 관계자는 “하천으로 휩쓸려 갔을 것으로 보고 동작대교 등 한강 수색에 집중하고 있다”며 “맨홀 수색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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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119 특수구조대원 등이 폭우로 휩쓸린 실종자들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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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집중호우 전에는 대대적인 배수로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학)는 “맨홀을 배수량과 안전율을 산정해서 만드는데 끝까지 이 성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장마철에는 낙엽이나 쓰레기, 토사가 배수용량을 막지 않도록 맨홀 유지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승진·장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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