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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뒤로 걷는 사람들_ 채정완 전시 <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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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뒤로 걷는 사람들_채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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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봐야겠어 작정한 작가였다. 채정완 작가는. 몇년전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충격적이었다. 민머리 사람이 손가락으로 보는 우릴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는데 제목이 '응, 니 얘기야!'. 괜히 가슴이 뜨끔해지는 흑백 그림. 다른 작품들도 모두 비판의 시각을 담은 강렬한 것이어서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았다. 그 후로 계속 채정완 작가를 지켜봤다. 작가가 문제 의식을 갖고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화두란 각자의 삶에서 길어올려진 성찰이어서 점 하나에도 생이 들어있고 선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 여겼다. 그리고 예술하는 모든 방식은 온전히 작가의 자유이자 권리고.

우리의 취향을 잠깐 언급해보자면, 밝고 환한 그림을 유독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가 급속도로 성장과 혁신을 거듭해오며 우린 속도전으로 살아왔다. '빨리빨리'와 'IT'가 우리의 삶과 나라의 위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느새 우리는 빠른 생의 속도에 중독됐고, 우리 발목을 잡는 것들을 뿌리치는데 익숙해졌다. 남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교육에서 제일 먼저 폐단이 드러났다. 학군이 생겼고 그 안에서도 소리없는 전쟁이 일어났다. 교육 뿐 아니지. 모두가 경주마처럼 피니쉬라인을 향해 달리듯 살게 됐다. 달리는 우리의 눈은 옆을 돌아볼 수 없었다.

머뭇거리면 뒤쳐지는거야 불안이 스며들었다. 마음이 피폐해지는 걸 알아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예술의 깊이와 느림이 불편할 수 밖에. 자꾸 옷자락을 잡아당겨 느리게 걷게 하니 답답할 수 밖에. 게다가 예쁘고 귀여운 그림이 아니라 채정완 작가처럼 우리 삶의 불편한 지점을 콕 짚어 건드린다면. '응, 니 얘기야!' 내 심장을 정조준 한다면. 아마 외면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자꾸 서걱거리니까 싫을지도 몰라. 그런데 진실은 때로 불편하다. 그걸 마주보는 데서 우리의 삶은 다시 건강하게 시작한다고 믿는다.

언제까지 맑고 밝은 게 우리들 세상이라고 말해줄건가. 사랑은 아름답고 우정은 영원하다고 주장할거야. 채정완 작가는 정면 돌파한다. 은유하지 않고 상징으로 에두르지 않고 그림으로 직설 화법. 그의 그림은 언어다. 모든 그림이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 궁금했었다. 젊은 작가가 이런 문제 의식을 투척하듯 그리는 게 실은 너무 고마웠고. 마침 에코락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시작됐다. 직접 만난 작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증이 풀렸다. 그림 속 사람은 성별도 나이도 없다. 민머리와 공허한 눈구멍만으로 나, 너, 우리를 말한다. 그리고 그림 속에선 우리 사회의, 사람의 허약한 데가 여실히 드러난다.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돼,  제발 그만, 너도 싫고 너도 싫고 너도 싫고 그리고 너도 싫어... 모두 이번 전시 작품의 제목이다. 그렇다고 심각하고 진지한 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블랙 코미디를 얘기했는데, 딱 그런 느낌. 마음을 툭 건드리는데 웃음이 후훗 터지기도 한다.

그의 유년기를 물었다. 젊은 예술가의 이런 용기와 배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리 없으니까. 역시나 작가의 가족은 늘 사회나 정치에 대해 대화를 많이 했다고 한다. 가족끼리 처음 본 영화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다니 아하!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경청하는 분위기였고, 사람들과 일상을 자세히 관찰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손뼉을 쳤다. 바로 그거다. 느리고 깊이 있는 삶. 그리 살아 온 환경이 지금의 채정완 작가를 만든거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 그림을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 이토록 강력한 메시지를 담아 우리의 사유와 통찰을 이끌어내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마음이 불편해지는, 우리의 그늘을 보여주는 그림을 사람들은 오래 보지 않기 때문이다. 빠르게 달려나가는 삶에 예술은 발목을 휘감는 웃자란 풀 같을지도. 나는 늘 소리 높여 말하곤 했다.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고. 뱅크시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기 위해선 작가가 계속 작업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격려해줘야 한다고. 이름을 기억해주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자고. 그리고 얼마전 희망을 봤다. 문래아트페어에 나온 채정완 작가의 작품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그림은 남성 권력을 비판하는, 표현도 생각도 굉장히 충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양성과 문제 의식이 수용되기 시작하는구나. 수준 높은 사회, 근사한 우리가 되어가는구나. 몹시 기뻤다.

예술은 무용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속도 강박에 빠진 우리를 멈춰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삶에는 피니쉬라인이 없다. 우리는 조금 더 곁을 둘러보고 눈도 마주치고 길도 함께 가야 한다. 채정완 작가가 지금 '준비'라고 외친다. 우리 모두 다시 스타트 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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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_채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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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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