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카드사, 보험사, 캐피탈, 저축은행 등 금융권의 금리인하요구권 실적이 회사별로 비교공시되자 금융권은 불만을 표출했다. 지금과 같은 금리 상승기에는 소비자의 금리인하요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지만 '수용률'에 맹점이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사들은 금리인하요구권을 성실하게 안내했더니 수용률만 낮게 나타났다고 토로했다.
각 금융업권 협회들은 30일 개별 회원사의 금리인하요구권 실적을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각 회사의 신청 건수, 수용 건수, 수용률, 이자 감면액 등 4개 항목이 공개됐다. 업권별 수용률, 이자 감면액은 △은행 24.85%, 728억2900만원△카드사 40.3%, 30억5500만원 △보험사 37.9%, 6억2700만원 △캐피탈 29.6%, 10억500만원 △저축은행 34.8%, 31억7000만원 등이다.
공시 직후 개별 업계는 한 목소리로 수용률 공시 문제점을 제기했다. 고객에게 금리인하요구권을 적극 홍보한 회사나 금리인하요구 절차를 간편하게 구성한 회사에 신청이 몰릴 수 있고, 조건이 되지 않는데도 일단 신청을 하는 '허수'도 많다는 주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면으로만 신청받는 회사는 수용률이 높다"며 "실제론 선한 은행이 나쁜 은행으로 낙인 찍히는 모순"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은행 중 가계대출 기준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낮은 편에 속하는 카카오뱅크(19%)는 신청 건수가 다른 모든 은행을 합친 건수보다 많았는데, 이는 비대면으로 손쉽게 금리인하요구를 할 수 있게 한 영향이 크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중 수용률이 가장 낮게 나타난 신한은행(29%)도 금리인하요구권을 적극 안내한 결과, 신청 건수가 다른 4개 은행 합산치보다 많았다.
금융사별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드사 중 가장 낮은 수용률은 보인 BC카드(11.92%)는 올해부터 가계대출을 본격화했기 때문에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한 고객 자체가 적었고, 금리 인하 요인이 발생할 가능성도 적었다. 가계대출 기준 수용률이 인터넷은행 중 가장 낮은 토스뱅크(17.8%)도 대출 영업 기간이 1년 미만이다.
금리인하 요구 신청건수와 수용하는 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0.01%포인트만 낮춰줘도 수용률이 오르는 구조"라며 "어떤 금융사가 이런 꼼수를 통해 수용률을 높였다면 소비자는 속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고객 1명이 100번 금리인하요구를 하면 신청건수에 100건이 잡힌다"고 말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리인하 신청요건 안내 표준안을 보면, 신용도 상승 시 고객은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신용도의 기준은 신용평가회사(CB)의 개인신용평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CB사 자료는 참고자료일 뿐"라며 "금융사는 각자 내부 신용평가 기준에 따라 신용등급을 산출하는데, CB사 점수가 오른다고 신용등급이 똑같이 오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사들이 금리인하요구 과정을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리인하요구 진행 절차, 특히 심사 절차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며 "요구를 거절한다면 그 이유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사는 현재 소비자들에게 따로 금리인하요구 요건 등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진 않다. 거절 사유도 표준화된 문장으로 제시한다.
금융사들의 자성도 나왔다. 형식적인 안내가 아닌 제대로 된 홍보와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금리를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예컨대 전북은행은 중·저신용 고객을 대상으로 내부 신용평가 결과 금리 인하가 가능한 경우 금리인하요구권 행사를 권유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인하요구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며 "금리인하요구권은 차주의 연체, 부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사에게도 장기적으로 이득인 셈"이라고 했다.
김상준 기자 awardkim@mt.co.kr, 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김세관 기자 sone@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