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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이슈 넷플릭스 세상 속으로

'우영우' 제작사,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제안 거절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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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토리 이상백 대표 "IP는 제작사 생존 기반... 없으면 외주의 악순환"
글로벌 OTT 한류 문 연 '킹덤' 시리즈 흥행 때 IP 확보 못한 데 따른 교훈
2,200억 투입된 영어권 드라마 '샌드맨' 제치고 통합 시청시간 1위
"인간의 선함에 대한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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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론을 위해 손을 들고 있다. EN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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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한류를 이끄는 드라마들이 가장 먼저 몰리는 플랫폼은 어디일까. 드라마 제작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다. 지상파, 종합편성 및 케이블 채널과 비교해 제작비를 가장 많이 지원해주는 데다 해외에서도 매체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 협업한 드라마 제작사 고위 관계자는 "제작비 확보뿐 아니라 출연 배우들도 넷플릭스를 선호해 수많은 대본이 넷플릭스 앞에 줄을 서고 간택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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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가 3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행사 특별 세션에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 과정을 말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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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거절한 '다윗'의 용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사도 대본을 들고 넷플릭스에 가장 먼저 찾아갔다. 하지만 제작사 측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작업 제안은 거절했다. '우영우'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유통하면 제작비를 100% 지원받을 수 있지만 작품의 지적재산권(IP)을 고스란히 플랫폼에 넘겨줘야 하는 탓이다.

'우영우' 제작사 에이스토리의 이상백 대표는 3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행사 특별 세션에서 "중소 드라마 제작사 재무제표를 뒤져보면 자산이 없다. IP가 없기 때문"이라며 "'우영우'로 넷플릭스를 제일 먼저 만났지만 IP 확보를 위해 오리지널 제안을 거절하고 방영권 계약만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넷플릭스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IP 확보에 애를 쓴 데는 '킹덤' 시리즈 흥행 뒤 속앓이가 각성의 계기로 작용했다. 이 대표는 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킹덤'을 제작하고 글로벌 OTT를 통한 새 드라마의 한류를 이끌었지만, 그 흥행과 비례한 수익을 얻지 못했다. 넷플릭스와 오리지널 작품 계약을 해 '킹덤' IP를 플랫폼에 넘겨줘 웹툰 등 2~3차 제작물을 만들 수 없었다. 당시 제작사가 확보한 건 '킹덤' 관련 게임 제작 IP뿐이다. IP 확보 보유 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위풍당당 콘텐츠 코리아 편드' 등을 마련해 2,200억 원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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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사극 '킹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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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킹덤' 때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방송했는데 IP가 없어서 안타까웠다"며 "IP는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돼 제작사가 성장할 기반을 마련해 주는데 그게 없으면 제작사는 외주를 맡아 그 수익으로 생존하고 다시 외주를 맡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킹덤' 시리즈의 학습효과로 '우영우' IP를 손에 쥔 이 대표는 드라마를 웹툰과 뮤지컬로 제작하고 있다. 그는 "'우영우' 웹툰을 5개국에 수출했고 미국 쪽도 (계약을) 타진 중"이라며 "뮤지컬에선 캐릭터만 살려 세 가지 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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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어 더빙판을 제작한 성우와 제작진. 버뱅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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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제작비의 10분의 1.... 영어·비영어권 통합 1위 '우영우'가 친 홈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지 않으면 플랫폼에서 대대적인 마케팅 지원을 받지 못하지만, '우영우'는 '착한 콘텐츠'란 입소문을 타 해외에서 열풍을 잇고 있다. '우영우'는 15일~21일 일주일 동안 넷플릭스에서 7,743만 시간이 재생돼 영어권 1위 드라마인 '더 샌드맨'(7,7240만 시간)을 제쳤다. 영어권과 비영어권 드라마를 통틀어 '우영우'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제작비만 무려 2,000여억 원이 투입된 대작인 '더 샌드맨'에 비해 '우영우'는 10분의 1이 채 안 되는 제작비(150억~200억)로 '홈런'을 친 셈이다.

'우영우'를 연출한 유인식 PD는 "한국어로 된 언어유희가 많은 데다 법 체계가 다른 나라에서 한국 법률을 언급하는 드라마가 인기 있을까 싶었다"며 "인간의 선함을 이야기하는 드라마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소수자의 얘기를 받아줄 수 있는 시장이 생각보다 폭넓게 마련돼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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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28일 기준 넷플릭스 비영어권 드라마 시청시간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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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는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우영우(박은빈)처럼 무해하고 천재인 자폐인은 현실에선 찾기 어렵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유 PD는 "우영우 같은 자폐인이 흔치 않다는 걸 물론 안다"며 "하지만 '내 아이 곁에 봄날의 햇살, 동그라미, 정명석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한다'는 자폐인 가족의 글이 힘이 됐고, 그 희망이 판타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춘기 자녀가 있는데 아이들이 TV를 안 본다"며 "가족이 서로 콘텐츠를 공유하기 어려워진 시대에 '우영우'가 부모와 자식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줬다고 한 지인들의 얘기에 보람을 느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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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사 에이스토리의 이상백(왼쪽) 대표와 드라마를 연출한 유인식 PD가 3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행사 특별 세션에서 드라마 제작 과정을 말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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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킹덤' 미국 출장... '우영우' 어떻게 기획됐나 들어보니

이 자리에선 '우영우' 제작 뒷얘기도 나왔다. 이 대표는 "2019년 초 미국에서 '킹덤' 시즌 2를 하자고 해 출장을 갔는데 그곳에서 지인이 영화 '증인'을 봤냐고 물어보더라"며 "그 얘기를 듣고 비행기 안에서 '증인'을 봤는데 감동을 받아 한국에 오자마자 프로듀서들과 회의해 '증인' 문지원 각본가 섭외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극중 우영우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의 머릿속엔 고래가 헤엄친다. 누리꾼 사이에서 '고래카'라 불리는 이 장면은 1980년대 방송된 일본 애니메이션 '요술공주 밍키' 등에서 제작진이 영감을 받았다. 유 PD는 "영우가 무엇인가를 깨달을 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는데 문 작가님이 대본에 '고래가 펄쩍 뛰어오른다'는 지문을 써 줬다"며 "'요술공주 밍키'에서 밍키가 어른으로 변신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시청자들이 TV 앞에 몰려들었던 것처럼 그런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영우가 무엇인가를 알아냈을 때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다에서 고래가 펄쩍 뛰며 그 바닷바람에 영우의 머리카락이 날리는 콘셉트로 촬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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