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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대우조선 매각, 산은 역할 변경 신호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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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티머시 가이트너가 당시 내렸던 결정 중 가장 후회했던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실 금융회사들을 미국 정부가 오랫동안 보유한 것입니다. 턴어라운드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세금만 더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KDB산업은행의 현 기업 구조조정 방식이 적합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오랫동안 구조조정 업무를 맡아온 A씨는 대우조선 문제를 묻자 이같이 말했다.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부실기업을 인수한 뒤 오랫동안 보유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대우조선의 경우 정치권, 정부, 산은, 노조 등 이해당사자들이 다들 숟가락을 얹고 자기 사람 앉히기에 바쁠 뿐, 제대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의 경쟁력이 계속 하락하고, 기업가치가 쪼그라들면서 점점 더 매각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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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30만톤급 초대형 원유 운반선 진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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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6일 대우조선을 한화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은이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 따른 것이다. 이어 산은은 이사회를 열고 한화를 대상으로 매각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산은은 대우조선 지분 55.7%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매각 대금은 2조원 전후로 알려졌다. 인수 예정자를 선정해 놓고 별도로 공개 경쟁입찰을 진행하며 입찰 무산 시 인수 예정자에게 매수권을 주는 스토킹호스(Stalking Horse) 방식이다. 산은은 올 상반기 진행한 쌍용자동차 매각에서도 스토킹호스 방식을 취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대우조선 매각이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 방식 변경을 시사하는 것으로 본다. 산은은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왔다.

지금과 같은 산은의 역할은 1998년 2월 비상경제대책위원회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부실기업 인수해 정리 및 매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같은 업무를 촉진하기 위해 각종 세제지원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했다. 산은이 투자은행(IB)이면서 동시에 배드뱅크(부실자산을 모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은행)와 법정관리인의 역할을 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산은 자회사에 있다 되살아나는 데 성공한 기업은 HMM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대우조선은 2001년 워크아웃(채무조정)을 끝낸 뒤 산은 자회사로 편입됐는데, 그 뒤로 계속 기업가치가 쪼그라들었다.

2008년 한화가 처음으로 대우조선 인수를 시도했을 때 기업가치는 6조3000억원이었는데, 2019년 현대중공업이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때 2조1600억원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대우건설의 경우 2021년 매수 기업인 중흥건설이 인수 대금을 깎아 달라고 요구해, 2000억원을 할인해주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난 24년간 산은이 해왔던 법정관리인의 역할을 줄이고, 특정 산업에 위기가 닥쳤을 때 문제 있는 기업을 구조조정하고 부실자산을 떼어내는 ‘배드뱅크’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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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KDB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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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강석훈 산은 회장도 보유한 기업들을 조기에 정리하고, 향후 부실기업도 오래 보유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피력했다. 강 회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이 홀딩(보유)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매각 가능할 때 바로 매각하는 게 제 원칙”이라며 대우조선해양, KDB생명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러 기업 지분을 오랫동안 보유했던 관행을 타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강 회장은 “대우조선에서 산은이 대주주를 맡는 시스템은 효용성을 다했다”며 “경영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경영주체가 나오도록 하는 게 대우조선을 구하는 방법”이라며 매각 방침을 분명히 했다. “매각 가격을 더 받는 것보다 빠른 매각이 중요하다”고 강 회장은 덧붙였다.

앞으로 산은이 보유한 기업들에 대한 정리 작업도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산은은 올해 쌍용자동차와 대한조선 등을 매각했다. 대우조선과 함께 매각될 삼우중공업을 제외하면 KDB생명보험(지분율 92.7% 2021년 기준)과 HMM(20.7%)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HMM의 경우 강 회장은 “전체 해운 산업 정책 그림에 맞춰 정부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며 단기간 정리에는 선을 그었다. 하지만 KDB생명보험에 대해서는 “금리 상승으로 매각 여건이 좋아진 것으로 안다”며 “곧 매각 작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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