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계의 가장 큰 이슈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이 법은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인뿐 아니라 사업주에 대한 처벌 규정을 별로도 둬 기존의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보다 처벌이 강화됐다. 이에 위험한 근무 환경으로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건설, 기계, 철강 등 중장비 업계에선 비상이 걸렸었다. |
사실 식품·유통업계는 그간 중처법에 대한 경각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업무 환경이 비교적 안전해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타 업종에 비해 적다 보니 중처법 시행이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 여겼었다. 일부 업체는 안전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전담 조직을 만들기는 했지만, 롯데쇼핑이나 이마트, 쿠팡 등 일부 대형 유통업체의 일일 뿐 이런 움직임이 전 업계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식품·유통업계에도 최근 대형 화재사고, 기기 오작 등으로 인한 근로자 사망 사고가 잇따르면서 중처법이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달 대전 현대아울렛에서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 직원이 7명이나 사망하는 사고를 경험했다. 이번 달에는 SPC그룹이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직원이 소스 혼합기에 끼어서 숨지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식품·유통업계에서는 ‘중처법 처벌 1호’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피하고자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SPC그룹이다. SPC그룹은 지난 21일 허영인 회장이 직접 나서 1000억원 규모의 안전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산업재해가 주요 이슈가 아니었던 식품회사로서는 나름 통큰 결정이었다.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이 대책이 선행됐더라면 좋았겠지만, 뒤늦게라도 회사 오너가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단순히 경각심만 갖고 있다고 해서 현장 근로자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근로자 안전에 대한 회사의 방침이 있고, 그 방침에 따라 구체적인 대책이 실행되며, ‘근로자 안전 최우선’이 사내 문화 및 작업 프로세스에 녹아 들어가야 산업재해를 방지할 수 있다. 오너가 나서 안전사고 재발방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해도 실행이 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SPC그룹에서는 허 회장이 대책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주력 계열사인 샤니 제빵 공장에서 40대 근로자가 손가락이 끼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중처법은 법 제정 이전부터 논란이 컸던 탓에 재계는 법 제정 전후로 다양한 산업재해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중처법이 시행된 지 10여개월이 지난 지금도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근로자 수는 하루 평균 1.8명이나 된다. 말뿐인 대책으로는 안전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식품·유통업계도 더이상 중처법의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현장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근로자 안전대책을 마련해 이른 시일 내에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업체라도 ‘중처법 처벌 1호’ 기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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