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朝鮮칼럼 The Column] 정치가 사라졌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치가 사라진 것 같다. 사회적 이견을 좁히고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면 요즘 정치권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는 사라지고 배제와 독단, 증오와 독설만이 남았다. 대통령이나 야당 모두 제각기 각자의 길만을 가는 정치를 하고 있는 탓이다.

조선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여당 대표들만 만났다. 취임 후 6개월이 지났지만 야당 대표들은 만난 적이 없다. 불편한 언론사를 출장길에 배제하고 도어스테핑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외부의 비판과 반대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차피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비판을 할 야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야당과 반대자의 비판에 맞서겠다는 식의 대응으로는 독단적이고 편협한 리더라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통령이 이렇다면 여당이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여당은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그저 끌려 다니는 듯이 보인다.

한편, 야당은 자기편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고 있다. 특히 강성 지지층을 향한 정치를 하고 있다. 최근 야당의 비판과 공세는 본질적인 것이라기보다 주변적이고 자극적인 이슈에 집중되고 있다. 결국 거짓말로 드러난 법무장관의 술자리에 대한 야당 의원의 의혹 제기나 과도할 정도의 대통령 부인에 대한 공세가 그런 것이다. 품위를 잃은 막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심지어 취임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도 참석했다. ‘신임’ 대통령의 퇴진 집회에 야당 의원들이 참석한 것은 불과 6개월 전에 내려진 국민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그런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과 주변 인물에 대해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각종 의혹 제기에 집착하는 것 역시 ‘새로운 최순실’을 만들어내고 ‘태블릿 PC’를 찾아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야당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이 스스로의 고립을 초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인기가 낮다고 해도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의 지지율 역시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제 갈 길만 가는 정치,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로 인해 정파적 지지자들 간 대립과 갈등은 고조되었고 중도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과 혐오는 가중되었다. 국가적 과제는 산적해 있고 경제, 안보상의 위기는 몰려오는데 딱히 뭐 하나 제대로 해결되는 게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꽉 막힌 정치를 풀어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결국 대통령의 몫이다.

경색된 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국정 운영의 동력은 국민의 공감 속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야당의 반대에 맞서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국민 모두가 가슴 아파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 여부와 무관하게, 국정을 이끄는 입장에서 도의적으로라도 누군가 사임함으로써 그에 대한 송구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게 공감의 정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야당의 압력과 비판에 밀리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또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 모두의 관심사인 만큼 가끔 실수가 생기면 큰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더욱이 그걸 보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원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전달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관련 언론사를 아예 배제하게 되면 그 정도의 비판조차 감내하지 못하는 독단적인 스타일이라는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야당이나 반대자의 비판을 의식하는 정치, 그에 맞서려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향한 정공법의 정치를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임기 초부터 윤 대통령은 정치적 밀월(蜜月)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지금도 대통령의 지지도는 여전히 30% 미만에 머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예외적인 현상이 생겨난 것이 야당과 비판적인 언론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는 설득과 타협을 통해 심지어 반대 세력까지 포함해서 지지 기반을 확대해 나가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모든 것이 윤 대통령에게 달려 있는 문제이고 본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취임 후 6개월이 흘렀다. 시행착오가 용인될 수 있는 수습 기간이 끝난 셈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가혹해질 수도 있다. 포용과 공감 없이 난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식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고 국정 운영의 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리더십의 변화가 필요하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