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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사색]치매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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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몇 달 전 어느 집에선가 날카롭게 싸우는 목소리에 조마조마한 적이 있었다. 아래 집에서 올라오는 소리로 짐작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무언가로 다투는가 싶었다. 서로 악을 쓰는 소리가 한동안 거의 매일 이어지자 바짝 곤두섰던 신경도 어느새 무뎌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부간의 다툼 정도로 여겼는데 ‘젊은 목소리 쪽이 기가 세서 시어머니가 몰리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그 집 아들은 뭐 하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조용해졌다는 걸 몰랐다. 얼마 전 두 목소리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퍼뜩 알게 됐다. 그동안은 괜찮았던 걸까?

그때 번개처럼 무언가가 스쳤다.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안다는 사실이었다. 소리의 출처는 아래 집이 아니라 옆집이었다. 아파트 입주 때부터 20여년을 알고 지내는 할머니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할머니는 아파트 짓기 전 동네 토박이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귀여워해주신 분이다. 아파트 반상회도 그 집에서 요구르트를 먹으며 둘러앉아 했던 기억이 있다. 아파트 돌아가는 사정에도 밝으셔서 일이 있으면 알려주시고, 명절이나 휴가 때 집을 비울 때면 신문이 쌓일까 봐 따로 챙겼다가 주신 분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시고 활동적이셨던 그분은 10여년 전 갑자기 쓰러지셔서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몸도 성치 않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특유의 열심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시더니 완전히 몸을 회복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런 모습에서 배운 게 많았다.

딸과 둘만 사시니, 그렇다면 젊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딸이라는 얘기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의문이 며칠 전 풀렸다. 남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경찰을 만났다며, 옆집 벨을 누르더라는 거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봤더니 할머니가 나오시더라고 했다. 남편이 아는 체를 했지만 할머니는 “누구요?”를 반복하며 알아보지 못하더란 얘기였다. 경찰이 “왜 신고를 했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누가 신고했냐”며 그런 일 없다고 연신 부정하더라고 했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코로나 유행 2~3년 동안 할머니를 뵌 적이 없는데 그동안 치매가 진행된 듯했다. 그리고 다툼의 상황이 모두 이해가 갔다.

주변에서 치매 환자 얘기를 듣는 건 이젠 흔하다. ‘실종 노인’ 문자를 매일 받는 요즈음이다. 국내 치매 환자는 2018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75만명 가까이 된다. 평균 10명 중 1명꼴이다. 2024년에는 1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치매는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지만 ‘구경해야 하는 사람들의 질병’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환자 돌보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친 가족을 위해 환자를 하루 몇 시간 돌봐주거나 주중 2~3일 혹은 주말 등 시설에서 온전히 돌봐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치매는 아직은 치료방법이 없다.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따라서 치매에 대해 아는 게 중요하다. 전문가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기억은 사라져도 잃지 않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감정의 영역으로,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적 욕구가 끝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체면을 살려줘야 하는 이유다.

병을 잘 이해하면 환자의 행동에 화내지 않을 수 있고 대처가 수월하다. 치매 역시 아는 게 힘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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