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이슈 통화·외환시장 이모저모

원低 부추긴 '달러 블랙홀' 국민연금 … 외환시장 구원투수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올 들어 전 세계적으로 강달러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원화값 하락폭은 주요 통화보다 더 가팔랐다.

킹달러라는 외부 변수 외에 연기금의 해외 투자 증가 등 국내 변수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선 원화값 급락 이후 지속적으로 연기금에 대한 환헤지를 요청해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 해외투자 기관의 기존 해외 자산에 대한 환헤지 비율을 확대하도록 각 주무부처가 기관에 요청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이처럼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을 향해 환헤지 비율을 높이라고 요청한 것은 연기금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이미 외환시장에서 '연못 속 고래'로 자리 잡았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전체 외환 순매수액은 2019년 18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31조6000억원까지 늘었다. 2년 새 70%가량 급증한 것이다.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21조550억원(약 170억3500만달러)에 달했다.

외환 순매수액이 늘어나는 것은 국민연금 규모가 커지다 보니 국내 투자로는 한계가 있어 그만큼 해외 투자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주식·채권·대체투자를 포함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는 올 9월 말 기준으로 약 3356억달러(약 443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적립금(896조6000억원)의 49.6%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이번 요청을 받아들이면 최소 6개월간 환헤지 비율을 10%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이후 4년 만이다. 그간 국민연금은 필요시 예외적으로 자산의 ±5%에서 환헤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환노출은 해외에 투자할 때 원화값 변동이 투자 수익률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해외투자 상품의 수익률이 원화값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환헤지다. 10% 환헤지란 전체 달러 투자자금의 10%에 대해 환헤지를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은 2007년 이전엔 모든 자산군에 대해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100% 유지했으나 이후 이 비율을 점차적으로 줄여왔다. 2018년부터는 모든 해외 투자자산군에 대해 100% 환노출을 실시했다. 환노출로 방향을 바꾼 것은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국내 외환시장에서 연금의 환헤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연금의 환헤지가 오히려 환율 쏠림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올해엔 상황이 급변하면서 전략 수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 셈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요청받은 이후 내부적으로 환헤지 비율 상향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며 "정리돼야 하는 쟁점이 많고 내년 환율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만큼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 요청에 따라 연기금이 환헤지 비율을 확대했다가 향후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경우 환헤지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국내 증권업계 고위 관계자는 "환전략은 노출이 적절한지, 헤지가 좋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올해와 같은 급격한 변동 상황에서는 국민연금 등에서 환헤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국민연금이 자산별 투자비중 등을 단기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폭을 확대시켜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환헤지와 함께 한국은행과 올해 말까지 1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실시하기로 한 통화스왑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9월 외환 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해 한국은행과 14년 만에 통화스왑을 체결하고 달러를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외화단기자금 한도 역시 분기별 일평균 잔액 기준 6억달러에서 30억달러로 대폭 높인 바 있다.

국민연금이 환율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국민연금연구원 등은 이미 수년 전부터 경고해 왔다. 해외 연기금처럼 특정 통화 쏠림을 막기 위한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보고서 등을 통해 지적했지만 이후에도 국민연금의 외환정책은 뚜렷하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지적돼온 문제에 대해서 급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황준호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에 대해 환노출을 실시한 상태에서 특정 통화에 대한 쏠림을 방지할 수 있는 위험관리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연금의 적정 환헤지 정책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주요 연기금별로 환헤지 전략은 갈린다.

네덜란드 공적연금 ABP는 헤지 비용 등을 줄이기 위해 달러화, 파운드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서만 환헤지를 시행하고 헤지가 쉽지 않은 통화에 대해서는 거의 시행하지 않고 있다. 미국 최대 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도 환헤지 전략을 택하고 있다. 캘퍼스는 선진국 통화에 대한 환헤지 비율이 25%를 넘을 수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캘퍼스는 기축통화인 달러로 부채가 표시된 미국 투자자 관점에서 외환 정책이 수립된 만큼 국민연금기금과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CPPIB(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는 별도의 환헤지 전략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CPPIB는 기금 전체의 자산 규모를 고려할 때 자연 헤지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고 헤지 비용 등을 감안해 환헤지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기관투자자 사이에서는 투자 안정성 확보를 위해 해외 채권투자에 대해서는 환헤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

[김정범 기자 / 이희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