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8월에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공개 연설을 하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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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일 사실상 미국 본토 쪽을 직접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만간 발사하겠다고 위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0일 공개한 본인 명의의 담화에서 '북한의 ICBM 기술과 관련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곧 해보면 될 일이고, 곧 보면 알게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곧 ICBM을 정상 각도(30~45도)로 발사할 수 있다는 협박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사일 도발을 하면서도 타국의 영공 침해 등을 고려해 수직에 가까운 고각 발사를 해왔다. 김여정의 주장처럼 발사 각도를 정상각으로 낮추면 태평양 전체는 물론 미국 전역까지 '화성-17형'의 사정권에 들어온다.

북한이 지난달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을 발사하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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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에 '막말'로 발끈한 김여정

사실상 미국을 미사일로 직접 겨냥하겠다는 김여정의 이날 담화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기술에 대한 한계를 지적해온 한·미 정보당국의 분석을 반박하는 형태로 나왔다. 특히 김 부부장은 기존의 발언 수위를 넘는 막말에 가까운 표현을 써가며 한·미 당국은 물론 국내 안보 전문가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먼저 "고각 발사로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입증하지 못한다"는 한·미 당국과 전문가들을 "괴뢰군 깡패들이나 괴뢰 전문가 나부랭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대기권 재돌입에 대해 인정받지 못했다느니, 검증되지 않았다느니 늘상 그런 것들을 물고 늘어져 왔는데, 살다살다 별걱정을 다 해주는 꼴"이라고 했다. 이어 "개나발들을 작작하고 자중숙고하는것이 좋을듯싶다"고도 말했다.

김 부부장은 또 최근 강릉에서 발생한 '현무-2' 낙탄 사고를 겨냥한 듯 "남의 기술력을 헐뜯을 시간이 있으면 하루빨리 사거리 몇십 미터짜리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조글조글 구겨진 체면이나 빡빡 다리미질해놓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좀 스스로 해보기를 권고한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노동신문이 지난 19일 "국가우주개발국에서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중요시험을 진행했다"면서 "정찰위성 발사의 최종관문 공정을 거쳤다"라고 밝히면서 공개한 위성 사진의 모습. 사진에는 서울과 인천 일대의 모습이 담겼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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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위성 평가에도 정면 응수

김 부부장은 북한의 정찰위성 기술에 대한 남측 전문가들의 혹평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부부장은 전날 공개한 위성사진에 대해 남측 전문가들이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모른다', '조작 가능성이 있다', '조악한 수준'이라는 등의 평가를 한 것에 대해 직접 언급하며 "(북한은)남김 없이 숨김없이 발표했는데, 남을 폄훼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우리 군 당국이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이라고 밝혔던 지난 18일 발사체에 대해 "두발의 (위성) 운반체를 쏜 것"이라며 "첫 번째는 송신기로 신호만 송출하여 지상관제소가 추적·수신하는가를 시험했고, 두 번째로 발사한 발사체로 이미 공개한 해당 시험(위성사진 촬영)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발사체가 송출했다는 서울·인천 일대의 사진의 해상도가 낮은 것에 대해선 "누가 830초에 지나지 않는 일회성 시험에 값비싼 고분해능 촬영기를 설치하고 시험을 하겠는가"라며 의도적으로 저해상도의 장비를 썼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TV는 2019년10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모습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김 위원장이 김여정(왼쪽)·조용원(오른쪽) 당 비서와 함께 말을 타고 있는데, 백두혈통인 김 위원장과 김여정이 탄 말에만 별장식이 달려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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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함 반영됐지만…확인된 김여정 입지

김 부부장이 공개 입장 표명에 나선 건 지난달 24일 한·미의 대북 독자 제재 움직임에 반발한 담화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전문가들은 이날 북한이 논리적 문장으로 취지와 주장을 문장 마지막에 배치했 것과 달리, 김 부부장이 이날 실제 막말하는 내용을 받아친 듯 구어체 성명으로 낸 것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내놨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의 초조함이 엿보인다"며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인해 농업·경제 성과가 저조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군사 분야 성과에 대한 한·미의 정곡을 찌르는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한 사진 등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등 최근 군사적 성과를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날 노동신문 1면에도 올해를 "세계적 군사 강국으로서의 위용과 절대적 힘이 만천하에 과시된 위대한 승리의 해"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동시에 이날 성명이 김여정의 입지를 명확히 규정한 것이란 평가도 있다. 익명을 원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화성-17형 발사 때도 김여정은 김정은과 동석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편안하게 드러냈다"며 "이런 자유로운 담화 형식이 역설적으로 백두혈통인 그의 입지를 도드라지게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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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과 분리한 '대남 도발' 성명

특이한 점은 이날 김여정의 대남 메시지가 그간 한·미·일 공조 강화를 경계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철저히 한국만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날 일본의 재무장 가능성과 관련해선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별도 성명을 통해 미·일을 한꺼번에 비난하면서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다.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군정위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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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이날 김여정의 담화에 대해 "자신들의 군사 기술을 폄훼한 남측을 직접 압박하는 한편, 한국 내 여론을 자극해 '남남갈등'을 증폭시키려는 다목적 포석이 반영됐다"는 해석을 내놨다.

특히 김여정은 지난달 24일 담화에서 "(한국)국민들은 윤석열 저 천치바보들이 들어앉아 자꾸만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어가는 정권을 왜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모를 일"이라면서 '서울 과녁'을 언급한 데 이어 이날 사실상 한국을 특정한 담화를 내면서 스스로 대남 비방전의 최전선에 섰다는 평가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신들의 국방력 강화에 대해 왜곡 해석과 비하에 대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정찰위성 시험발사에 대한 분석, 평가뿐 아니라 상당 기간 남측의 반응을 지켜봐 오면서 가졌던 불신과 불만들을 한꺼번에 쏟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김여정은 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해 "처음도 아니고 여태껏 지긋지긋 맛본 제재 따위가 뭐가 두려워 갈 길을 멈추겠냐. 목숨까지 내서라도 우리의 응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되찾을 것"이라며 내부 결속을 강조했다.

통일부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형편없는 '담대한 계획'인지 뭔지 하는 것을 붙들고 앉아 황당한 망상만 하고 있을 대신 작금의 사태를 안정시킬 생각에 전념하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라며 "아무리 짖어도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님을 모르고 왜 계속 개 짖는 소리만 내며 우리의 분노만 키우는지 알 수 없다"고 비난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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