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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또 자냐? 카톡 안 읽냐?” 직장 내 갑질 절반이 ‘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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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신고 44.5%

대법원, 폭언도 폭행의 일종 판단

헤럴드경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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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 2019년 한 IT회사에 입사한 자영(가명) 씨. 업무특성상 갑작스러운 장애나 기술 지원 등으로 야근, 주말 근무를 수행해야 했다. 하지만 휴일근무수당도, 대체휴무도 없었다. 팀장은 업무시간 외 밤, 주말 가리지 않고 급하지 않은 용무의 업무카톡을 보내고 바로 확인하지 않으면 “또 자냐? 또 카톡 안 읽냐?”고 했다. 그는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이 지경이냐”라며 욕을 하기도 했다.

고객사의 폭언에 따른 상담 와중에도 팀장은 “니가 못 견딘다, 그 정도로 힘들 거면 다른 사람들 다 자살했다, 니가 어려서 그렇다, 멘탈이 약하구나”라고 했다. 자영 씨는 직장갑질119와 상담한 후 팀장을 회사에 신고했지만 회사는 팀장에게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데에 그쳤다. 결국 자영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상사의 폭언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자영 씨 사건은 직장갑질 119에 접수된 신고 내용 중 하나다. 26일 해당 단체에 따르면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롬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폭언으로 대표되는 직장 내 갑질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폭언은 가장 흔한 직장갑질 유형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16일부터 올해 8월까지 고용부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유형 중 폭언이 8841건(34.2%)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갑질 119에 접수된 직장내 괴롭힘 신고 중 폭행·폭언은 512건으로, 전체 44.8%를 차지했다.

직장갑질119는 512개 폭행·폭언 사례 중 일부를 공개했다. 단체는 “그런 거로 힘들면 다른 사람들 다 자살했다” “그 정도면 개도 알아먹을 텐데” “공구로 머리 찍어 죽여버린다”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녀? 너 같은 새끼 처음 본다” “너 이 새끼야, 나에 대해 쓰레기같이 말을 해? 날 ○○, ○같이 봤고만”을 5대 폭언으로 꼽았다.

대법원은 ‘폭언’을 폭행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2003년 판시를 통해 “피해자의 신체에 공간적으로 근접하여 고성으로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동시에 손발이나 물건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행위는 직접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에 해당될 수 있다”며 폭행죄 성립의 범위를 규정한 바 있다.

폭행죄가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 앞에서 폭언을 했다면 형법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신고할 수 있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현철 직장갑질119사무국장은 “조직문화 개선을 이야기할 때 첫 번째로 거론하는 것이 바로 ‘폭언’ 문제”라며 “한국사회 특유의 권위주의 문화에서는 폭언을 거친 조언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폭언 문제에 대한 진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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