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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경찰이 흑인 청년 또 죽였다”...미국 전역 시위·경찰 해산 등 파장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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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비디오 공개되자 전국적 시위...해당 경찰팀 해체
3년 전 '플로이드 사태' 재연 조짐...정치권도 경찰 때리기
유색인종에 대한 뿌리 깊은 경찰 편견이 원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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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흑인 운전자 구타 사망사건이 발생한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주민들이 행진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멤피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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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들이 흑인 운전자를 집단 구타해 숨지게 한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주말 내내 주요 도시 10여 곳에서 대규모 규탄 시위가 있었고, 해당 경찰관들이 소속됐던 팀은 28일(현지시간) 해체됐다. 3년 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와 같은 전국적 시위가 재현될 조짐이 보이자, 미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경찰권 남용'을 비판하며 여론 달래기에 나선 모습이다.

제2의 '조지 플로이드' 사태?... 다시 분노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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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공개된 타이어 니컬스(27) 체포 당시 영상 캡처. 발과 진압봉에 구타당해 쓰러진 니컬스에게 제압용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자 니컬스는 비명을 질렀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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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경찰이 27일(현지시간) 공개한 67분 분량의 ‘보디캠’ 영상이 분노의 도화선이 됐다. 영상에는 지난 7일 정차 지시를 받고 멈춰선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29)가 한 경관에게 멱살을 잡힌 뒤 항변하자 경찰 여럿이 그에게 달려들어 때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충격을 줬다. 제압용 ‘후추 스프레이’를 맞은 니컬스가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모습도 담겼다. 그는 당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흘 뒤 신부전과 심장마비로 숨졌다.

영상이 공개된 당일 격분한 미국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뉴욕, 애틀랜타, 샌프란시스코 등 여러 주요 도시에서 ‘니컬스를 위한 정의’를 외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었다. 특히 테네시주에서는 200여 명이 행진해 멤피스 시내 부근 55번 고속도로 다리가 폐쇄되기도 했다.

미국 방송매체 NBC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처럼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예상된다” 보도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3년 전 비무장 상태의 흑인 청년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며 애원했음에도 목을 찍어 누른 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영상이 퍼지며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일었다. 평화 행진으로 시작됐던 시위가 유혈 충돌로 번지기도 했다.

여론 악화에 멤피스 경찰국은 니컬스를 집단 구타한 경찰관 5명을 모두 해고 조치했고, 이들이 속한 멤피스 경찰국의 특수부대 ‘스콜피온’팀도 해체했다. 스콜피온의 이름은 ‘우리 이웃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거리 범죄 작전(Street Crimes Operation to Restore Peace in Our Neighborhoods Unit)’의 앞 글자를 따 만들었다고 한다. 대배심은 이들을 2급 살인과 가중 폭행 등 혐의로 기소할 것을 결정했다.

유색인종 일단 잡고 보자..."경찰 내부 편견이 부른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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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한 시위자가 '(해고된 5명 외) 다른 경찰관들은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멤피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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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과잉진압으로 유색인종의 죽음이 반복되는 것은 경찰 내 뿌리 깊은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건을 두고 “경미한 위반 딱지로 유색인종을 붙잡아두고 더 큰 범죄 혐의를 차차 찾아내 실적을 올리는 전통적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멤피스는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흑인으로, 미국에서 흑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유족과 멤피스 주민들도 “(경찰) 조직의 고질적인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주민들은 이번 사건 전부터 스콜피온의 폭력적인 검문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이들은 경찰차 대신 일반 차량에 탑승해 순찰하고, 수상하다 싶으면 누구든 잡아서 검문을 실시했다. 주민들 증언에 따르면 며칠 전 스콜피온 부대원이 피자를 먹으러 가던 남자를 총으로 위협했고, 한 60대 남성이 스콜피온에 집단 구타를 당한 적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정치권도 여론 동향을 살피며 경찰 때리기에 나섰다. 특히 2024년 차기 대선 재도전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AP 인터뷰에서 니컬스 구타 영상에 대해 "끔찍하다"며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3년 전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 당시에는 경찰권 집행을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하는 등 현재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후 성명을 내고 "니컬스의 죽음을 불러온 구타가 담긴 끔찍한 영상을 보고 격분했으며, 깊은 고통을 느꼈다"고 밝혔다. 다만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폭력이나 파괴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평화적인 시위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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