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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윤 대통령이 ‘콕 찍은’ 지배주주 없는 기업, 낙하산 본격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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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금융위 발언 논란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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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을 콕 찍어 지배구조 투명화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강화를 주문해 논란이 예상된다. 일부 옳은 말이지만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재벌그룹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데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 자리를 두고 ‘관치’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언급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벌에 대해 ‘주인’이 있는 회사나 ‘연금 사회주의’를 언급한 대목은 이에스지(ESG) 경영을 강조하는 국제 흐름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업보다 정부의 투명성 확보가 먼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신한금융·우리금융·엔에이치(NH)농협금융지주 수장들이 임기만료로 물러났거나, 물러날 예정이다. 엔에이치농협금융 후임 회장으로는 ‘윤석열 캠프 총책’을 맡았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취임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후임에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 4명이 후보로 선정돼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금융지주사와 케이티(KT)·포스코 등 이른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내부통제 실패 원인으로 거론되는 ‘거버넌스’ 문제에 대해 금융당국이 수개월째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과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임기 만료에 맞춰 ‘개선작업’이 있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지난 연말엔 국민연금이 구현모 케이티 대표이사(사장) 연임을 반대하고 나섰다. 케이티 이사회가 구 대표를 최종 후보로 확정해 발표하자, 국민연금은 ‘기금이사’ 명의로 입장문을 내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러한 사항을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같은 상황은 해당 사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던 시민단체한테도 혼란을 주고 있다. 일부 최고경영자는 연임에 부적격이지만, 정부가 나서는 의도 역시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손태승 회장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고, 구현모 대표 역시 ‘상품권 깡·쪼개기 후원’으로 적격자는 아니다”면서도 “정부가 이들을 교체하려는 의도가 지배구조 개선이 아닌 자기 사람을 앉히기 위해서라는 의혹을 떨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기업보다 먼저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정부가 ‘낙하산’을 앉히려고 투명성 제고 주장을 하는 것 같다”며 “정부가 먼저 소유분산기업의 주요 자리가 ‘전리품’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이사회 권한 강화 등 지배구조 개선 방안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벌기업에도 같은 기준을”

윤 대통령은 지난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주인이 없는, 소유가 완전히 분산된 기업”과 관련해 “스튜어드십은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 구성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선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관투자자들이 소유분산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한 경영 참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반면 ‘주인이 있는’ 재벌 기업에 대해선 “스튜어드십이 과도하게 작동되면 연금 사회주의화시키는 부분이 있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지배구조와 내부 통제의 후진성은 지배주주 존재 여부가 별 관련이 없다. 당장 부당한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보유한 옛 삼성물산 지분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발생한 손실만도 수천억원이다. 또 대한항공 ‘땅콩회항’ 경우처럼 지배주주의 불법행위로 기업이 피해를 입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까지 손실을 입은 경우도 많다. 이때문에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비롯한 기관투자자들한테 재산을 위탁한 연금 가입자와 투자자를 대신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여전히 삼성물산 부당 합병과 관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조차 제기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지배구조나 내부 통제는 재벌기업에서 더 후진적인 경우도 많다”며 “스튜어드십이나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는 상법을 개정해 재벌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지배주주를 두고 ‘주인’이라고 칭한 것도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총수일가의 지분율은 전체 그룹의 1.15%에 불과하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윤 대통령이 지배주주가 주인이라고 언급한 것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으로 미국은 기업의 소유주라고 하려면 기업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며 “이에스지 경영이 확산되면서 국내외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계속 강화됐는데, 재벌에겐 하면 안되고 할 경우엔 ‘연금 사회주의’라고 발언한 것은 세계적 흐름과도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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