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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생사 모르던 4남매, DNA 대조로 58년 만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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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여동생 2명, 공개방송에서도 못 찾아
등록된 DNA 대조 결과 일치... 극적 상봉
한국일보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경찰서에서 58년 만에 다시 만난 4남매 중 첫째 장희재씨와 셋째 희란씨가 서로를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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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전 헤어진 4남매가 극적으로 상봉했다. 두 번의 공개방송으로도 서로를 찾지 못했지만, 유전자(DNA) 대조 기술에 힘입어 환갑을 훌쩍 넘어서야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었다.

31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동작경찰서에서는 ‘장기 실종자 4남매 상봉식’이라는 이름의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1965년 남매는 원치 않은 이별을 해야 했다. 일찍 숨진 막내를 빼고 장희재(69), 택훈(67), 희란(65), 경인(63)씨 4남매가 모여 살았지만 셋째, 넷째인 희란ㆍ경인씨가 사라졌다. 당시 경찰에 처음 신고한 첫째 희재씨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어머니 혼자 5남매를 기르기가 힘에 부쳐 셋째, 넷째 딸을 태릉에 있는 보육원에 맡겼다”고 기억했다. 이후로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두 동생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렇게 서로의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았다.

성인이 된 희재씨는 1983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2005년 ‘아침마당’ 방송에 출연할 만큼 재회의 꿈을 놓지 않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2021년 11월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곳이 경찰서였다.

동작서는 서울시내 보육원과 노숙인 쉼터 등에 협조를 요청하고, 법무부 및 건강보험 자료까지 조회했지만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헤어진 형제가 보호시설에서 임의로 만든 이름과 생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꼬인 실타래를 푼 건 DNA 검사였다. 경찰은 같은 달 희재씨의 DNA를 채취해 아동권리보장원(보장원)에 보냈다. 보장원은 2004년부터 실종아동과 실종자를 찾는 보호자의 유전자 정보를 등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1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마침내 희망이 보였다. 보장원 측이 희재씨와 DNA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한 것. 이후 추가 DNA 채취와 대조를 거친 끝에 이달 26일 상대가 경인씨로 확인됐다. 두 여동생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 희란씨도 곧 찾았다.

가족을 그리워한 건 경인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를 군인으로 기억해 30대부터 국방부에 민원을 많이 넣었다”고 했다. 그러다 2021년 충북 청주에서 유전자 분석 덕에 34년 만에 해후한 모자의 기사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이듬해 12월 DNA를 등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낭보가 전해졌다.

4남매는 이날 상봉 행사 내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희란씨는 “너무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기쁘다”고 했다. 최근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때문인지 연신 “엄마”를 부르기도 했다. 희재씨는 “동생들에게 늘 죄지은 마음으로 살아왔다”며 도움을 준 분들께 감사를 표했다.

권혁준 동작서장은 “앞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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