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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군정 종식” vs “침묵”…천연가스에 갈린 미얀마 쿠데타?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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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군정 2년 미얀마 사태에 목소리 키우면서도 주장은 분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해양부 동남아 “군정 책임자 초청 제외”

태국·베트남 등 대륙부 동남아, 군정 묵시적 인정

태국·인도·중국, 천연가스 풍부한 미얀마 무시 못해

“걱정스러운 게 많은데,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그래도 당신이 우리보다는 더 나은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한동안 말이 없음) 우리는 식구같은 사이지요. 고맙네. 친구.”(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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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왼쪽)와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9일 태국 방콕 소재 정부청사에서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다. 방콕=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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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양국 총리가 방콕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 도중 주고받은 대화내용이다. 정상 외교에서 공동 기자회견은 외교 의전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고, 공간이다.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은 통상 가장 중요한 합의 사항 혹은 과제를 언급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이 중요한 순간에 안와르 총리는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한 태국의 보다 적극적인 입장 개진을 타진했으며, 쁘라윳 총리는 즉답을 피하며 의중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두 정상이 짧게 내놓은 발언을 통해서 미얀마 군사정부 사태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각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해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적극적인 해결을, 태국은 사실상 군정을 묵인하는 모습이 이 대화에서도 확인됐다. 안와르 총리의 미얀마 사태 해결 의지는 그만큼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이 다른 두 사람의 발언은 국가 차원은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역정이 달랐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안와르 총리는 10년 투옥 기간을 거쳐 총리에 오른 민주화를 상징하는 정치인이지만, 쁘라윳 총리는 2014년 군부 쿠테타로 집권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연정의 형태이지만, 집권체제 초기인 안와르 총리와 달리 쁘라윳 총리는 5월 선거를 앞두고 있어 외교적으로 광폭 행보가 힘든 처지다.

◆미얀마 군정에 목소리 다시 높이는 아세안 주요 회원국들

쿠데타 발발 이후 군사정부 체제와 비상사태 연장으로 혼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얀마 사태에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이 다시 의견을 내고 있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미얀마 군정에 보다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정상들의 목소리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그동안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인도네시아에 이어 말레이시아도 군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판적인 목소리는 민주화체제를 구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싱가포르, 필리핀, 브루나이 등 해양부 동남아 국가의 몫이 되고 있다. 반면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을 비롯해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대륙부 동남아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이는 회원국 내정에는 간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해 온 아세안의 묵시적 관행과는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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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을 방문한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왼쪽)가 9일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함께 태국정부청사에서 국가 연주를 듣고 있다. 방콕=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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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정 사태에 대한 적극적 해결 의지는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도하는 상황이었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미얀마 사태 해결을 돕겠다”며 특사 파견 등을 제안하며 광폭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는 말레이시아도 보폭을 맞추려 하고 있다. 지난달 이웃나라를 잇따라 방문해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이번엔 태국을 방문해 미얀마 군정 사태 해결에 힘을 모으자고 제안한 것이다.

안와르 총리는 쁘라윳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미얀마 사태를 언급한 뒤, “(아세안 회원국인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최소한 문제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상대국과 협력방안 강화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미얀마 사태 해결에 아세안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안와르 총리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총리 “군정 인정 못해…태국이 역할을”

안와르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면서 쁘라윳 총리에게 역할 강화를 요청했다. 그는 미얀마 사태에 대한 아세안 등의 여러 우려를 생각할 때 지역에 영향이나 반향을 일으키기엔 쁘라윳 총리가 좀더 나은 위치에 있다며 내놓은 요청이었다. 쁘라윳 총리는 안와르 총리의 발언에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시간이 좀 흐른 뒤, 안와르 총리를 향해 “우리는 가족”이라며 “고맙네. 친구”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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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 인접한 태국 남부의 나라티왓 지역의 한 모스크에서 무슬림 아동이 지난 5일 관광객의 방문을 환영하면서 양국의 국기를 흔들고 있다. 나라티왓=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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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정은 2021년 2월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서 비롯됐다. 앞서 2020년 11월 총선이 아웅산 수치 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압승으로 끝나자, 군부가 총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며 군사행동을 한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은 그해 4월에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특별정상회의에서 군정의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초청했다. 회원국 정상들은 흘라잉 사령관을 초청할 때 그를 정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흘라잉 사령관의 동의를 얻어 회원국 정상들은 즉각적인 폭력 중단 등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5개 사항에 합의했다. 아세안 정상의 합의 사항은 이후 유엔(UN)과 국제사회에서 적극 지지했지만, 미얀마 군정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군정의 합의 불이행엔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못지 않게 미얀마의 이웃나라인 인도와 태국의 묵시적 지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분석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달 미얀마 독립기념절에서는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중국, 인도와 함께 태국을 자국이 감사를 표해야 하는 나라로 거론했다.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들 나라는 천연가스 등 자원의 미얀마 의존도가 높다.

◆쿠데타 경험 태국, 물밑에는 천연가스 풍부한 미얀마 군정 지원?

최근 들어서는 아세안 정상들이 주요 모임에서 미얀마의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아예 모든 모임에서 미얀마 군정 지도자의 참가를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의 제안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대륙부 동남아 국가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해양부 동남아와 다른 움직임 중에는 태국 정부의 행보가 눈에 띈다. 태국은 천연가스 의존량이 많은 데다가, 비교적 큰 나라인 입장에서 미얀마와 국경을 마주한 지역도 광범위한 점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만 하더라도 미얀마 군정의 외교관들을 초청해 회담 일정을 소화했다. 이 일정엔 캄보디아·라오스에서는 외교장관이, 베트남에서는 외교차관이 참석해 미얀마 사태 정사화를 위한 방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해양부 아세안 회원국들은 죄다 불참했다.

태국의 행보엔 쿠데타 발발 이전부터 이어져온 양측의 긴밀한 관계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태국의 에너지 안보 측면만 보더라도, 미얀마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태국 국영석유공사(PTT)는 미얀마에서 원유와 가스 개발 운영으로 자국 내 수요의 16%를 확보하고 있다는 게 대략적인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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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던 2021년 9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인근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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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와 태국 정상은 미얀마 문제 등과는 별개로 에너지·경제 분야 등을 중심으로 양국 관계 증진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 이와함께 회담을 앞두고 예고됐던 것처럼 태국 남부 지방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무장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다시 확인했다. 태국 남부인 빠따니, 나라티왓, 얄라, 사툰 등 4개 주의 주민들은 대다수가 말레이계이다. 이들 지역은 근현대사를 거치는 동안 서구 영국, 태국, 말레이시아의 입장이 교차하면서 전통적으로 부여되던 자치권이 축소됐다. 큰 변화가 발생했던 때를 시기별로 대별해 보면 1902년 태국 중앙정부의 남부 지역에 대한 자치권 축소, 1909년 영국과 태국의 조약으로 이들 지역의 태국 영토 할량, 1930년 이후 태국의 남부 지역에 대한 태국화 정책 등이다.

인구 5400만 명의 미얀마는 소수 민족만 100개가 넘는다. 2017년 군부의 학살 등 박해을 피해 미얀마를 등진 로힝야족만 90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 태국으로 둘러싸이고, 인도양으로 가는 요충지에 자리한 나라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마약 거래의 온상이기도 하다. 그만큼 복잡다기하면서도 긍·부정이 교차하는 땅이다.

국제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유혈진압으로 지난 2년 동안 3000명 가까운 주민들이 숨졌다. 주변국으로 피한 난민은 7만2000명에 달했다. 이들 난민은 대부분 인접국인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공식적으로 20만 명의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난민의 대부분은 2017년 미얀마 군대의 탄압을 피해 3국을 거쳐 입국한 로힝야족이다. 그런 점 때문인지 더 많은 난민이 유입되면 인도적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봉착한다는 게 안와르 총리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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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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