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러, 우크라 침공 후 1년…보이지 않는 전쟁의 ‘출구’ [이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양국 군 사망자 20만명에 달해…“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전쟁”

“평화 가능성 계속 줄어들고, 추가적 긴장 고조와 유혈 사태 확률 커져“

전쟁 충격에 에너지·식량가격 폭등…수십년만 최악 인플레 사태 초래

신냉전 신호탄된 우크라 전쟁…세계 안보 지형 재편 속 대립 구도 심화

‘지정학적 단층선’ 놓인 한국,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에 외교부담 급증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1년이 다 되가지만, 전쟁의 ‘출구’는 여전히 보이질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악의 전쟁으로 매일 같이 피해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해 11월 “양국 군인의 합계 사망자는 2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미군 사상자(약 2만5000명 추산)의 4~8배 수준이다.

민간 피해 역시 연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지난달 초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개전 후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6919명이 숨지고 1만107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 4100만명 중 약 3분의 1인 130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고, 이 가운데 800만여명은 해외로 떠났다.

세계일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도심 추모의 벽에 전쟁 희생자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다. 2014년 크름반도 침공 때부터 이번 전쟁까지 러시아군에 의해 숨진 이들이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2014년 전쟁의 연장선이라고 여기는 우크라이나인의 적개심과 항전 의지가 가득한 공간이라고 현지인들이 설명했다. 이병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기반시설과 경제도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키이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재건 사업 비용은 1조달러(약 12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30.4% 감소했다.

◆전쟁 2년 이상 더 계속될 수도

세계 군사력 순위 2위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해방을 명분으로 20만 병력을 동원, 전면 침공할 당시만 해도 전쟁은 쉽게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결사 항전에 나서 수도 키이우를 지켜내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진두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군의 기세에 러시아의 패전 소식이 들려왔고, 서방 지원까지 이어지며 현재 전황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이다.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키이우를 지켜낸 지난해 2~3월, 러시아가 점령지를 꾸준히 확대한 4~7월,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반격에 나선 9~11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계일보

2022년 5월30일(현지시간)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간 격렬한 교전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도시 세베로도네츠크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전열을 재정비해 다가오는 봄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러시아는 최근 동부와 남부 각지 전선에서 파상 공세를 펴면서 우크라이나의 방어 태세를 시험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까지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라는 지시를 군에 내렸다고 밝혔다.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가 위협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갈수록 거세지는 러시아의 공세에 따라 서방의 주력전차와 장거리 미사일 지원 결정을 끌어낸 데 이어 전투기까지 요청하고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30개국도 이번 봄이 전쟁의 향방을 가를 결정적 분수령이라고 보고 무기 전달에 속도를 내기로 뜻을 모았다.

이처럼 양측이 결전을 준비하면서 전쟁 1주년이 확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7일 유엔총회에서 “평화의 가능성이 계속 줄어드는 반면, 추가적 긴장 고조와 유혈 사태의 확률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 AP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쟁이 끝 모를 장기전의 수렁으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는 잿빛 전망도 제기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공개된 AFP와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인접국을 좌우할 수 있는 ‘다른 유럽’을 원한다”며 전쟁이 수년간 계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용병 기업 와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전쟁이 향후 2년 이상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에너지난·고물가…세계 경제 충격

우크라이나 전쟁은 시작과 동시에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막대한 유동성에 취해있던 세계 경제는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충격과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이에 따른 각국 중앙은행들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특히 밀과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가 ‘유럽의 빵 바구니’라 불리는 세계 3∼5위권 밀 수출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세계 에너지·식량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밀 선물 가격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지수는 지난해 3월 159.7포인트로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다. 전쟁 위기 이전인 2021년 12월에 배럴당 60달러대였던 국제 유가는 전쟁 이후 2주만에 130달러를 돌파, 13년여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개전 이전 ㎿h(메가와트시)당 60∼70유로대에서 개전 이후 역대 최고가인 345유로까지 5배 가량 뛰어올랐다.

세계일보

우크라이나를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게 만든 비옥한 곡창지대 풍경. 포노마렌코 대사 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확대 기조를 펼쳐온 각국의 물가는 이런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에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때 9%를 넘겨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물가 상승률도 10%대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 기록을 매달 갈아치웠다.

수십 년 만에 최악의 물가 급등 사태에다 이에 대응한 각국 중앙은행의 급속한 금리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세계 서민들은 극심한 민생고를 겪었다. 선진국 영국에서마저 성인 6명 중 1명이 물가 부담에 정기적으로 끼니를 건너뛴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중동·아프리카·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고통은 한계 수준으로 치달았다. 최고 70%대의 인플레이션이 덮친 스리랑카는 외화마저 바닥나 석유·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경제 붕괴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에 빠졌다. 밀 수입의 80%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하던 레바논에서는 빵값이 2배 이상으로 폭등하면서 사람들이 상점마다 몰려들어 닥치는 대로 빵을 사재기하는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메릴랜드대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쟁 이후 전 세계 가정용 에너지비가 최고 113% 상승하고 이로 인해 최대 1억4000만명이 ‘극도의 빈곤’에 내몰린 것으로 추산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쟁에 따른 부담과 인플레이션과의 싸움 등으로 인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2.9%로 지난해 성장률 추정치(3.4%)보다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일보

2022년 3월3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있는 리히터펠트 가스 화력발전소의 냉각탑에서 증기가 나오고 있다. 베를린=AP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 냉전 시대…지유민주주의 vs 권위주의

이번 전쟁은 ‘신(新)냉전 시대’의 본격적인 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특히 ‘서방 대 친러’로 대변되는 반(反)서방,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세력의 지정학적 대결구도가 이번 전쟁을 계기로 한층 선명해졌다.

미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대(對)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주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냉전 시대 종식 이후 역할론에 회의감마저 제기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전선을 확장하며 모처럼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반대편에선 상대적으로 서방 동맹에 비해 ‘동상이몽’ 관계로까지 평가절하되던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이 관계 재정립에 나서며 밀착하고 있다.

특히 자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EU는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을 지켜보며 더욱 미국과 나토에 의지하는 모습이다.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에 따라 70년 넘게 지킨 중립 노선을 포기한 스웨덴과 핀란드도 이번 전쟁을 계기로 나토 가입을 신청했고, 30개국 가운데 28개국이 가입 비준안을 가결했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미중 패권 경쟁에도 중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썼지만, 안보 불안감에 대중 관계도 ‘유턴’하고 있다.

세계일보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예고 없이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키이우=AP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다소 느슨해졌던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연대를 한층 공고히 하는 분위기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연합군사훈련을 확대하는 등 협력을 강화해온 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작년 2월 ‘무제한 협력’(no-limits partnership) 관계를 대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중국은 서방의 대중국 제재를 유발하지 않도록 러시아에 무기 지원 등 직접 개입은 자제하고 있지만, 동시에 서방의 제재 동참을 거부하며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합병을 규탄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당시에도 기권하는 등 ‘서방 일변도’ 흐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간 ‘밀월’도 눈에 띄게 강화됐다. 미국은 작년 1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돕고 있는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와그너 그룹에 북한이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 등 무기와 탄약을 판매했다고 공개했다. 혼돈의 국제 정세를 틈타 북한은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으로 전례 없는 무력 시위를 잇달아 벌였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듭된 반대로 안보리 규탄 성명조차 번번이 무산되기도 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모두 미국과 서방의 포괄적 고강도 제재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향후에도 이를 회피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와 밀착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복잡해진 한반도…美 동맹국으로서 요구 부담

이같은 신냉전구도는 우리 외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지정학적 단층선’에 놓인 한반도에서도 이른바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가 뚜렷해지는 흐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에 밀착하며 국제정세 변화를 핵 고도화의 기회로 활용하고 나섰고, 한국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과의 연대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핵 문제는 한미일과 중국·러시아가 대립하는 속에서 외교적 협력을 통해 풀어내기가 더욱 어려워진 형국이다. 지난해 북한이 8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해 역대 최다 횟수의 미사일 도발을 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새로운 제재 결의는 물론 성명조차 전혀 내지 못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일이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추진한 제재 결의나 성명에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세계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학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만난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국제 환경 변화를 노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통일연구원은 이달 발간한 ‘한반도 외교안보 환경 변화와 평화·비핵 체제 모색’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형성되는 지정학적 진영 구도를 활용해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제재에 따른 정치·경제적 곤경 등을 헤쳐나갈 수 있는 전략적 틈새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짚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동맹이자 인권·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서방과 연대를 가속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세계 동맹·파트너 국가들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총력 ‘스크럼’을 짰다. 한국도 전략물자 수출 차단과 금융제재 등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 러시아로부터는 ‘비우호국가’ 중 하나로 지정되는 등 수교 이래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인도태평양과 유럽·대서양 국가들의 안보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커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말 방한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북한이 러시아에 로켓과 미사일 등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어떻게 상호 연결돼 있는지를 강조해 보여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세계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마드리드=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방은 한국 역시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해 우크라이나에 경제·인도적 지원만 하고 살상 무기의 직접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방한 중 특별강연에서 일부 국가가 교전 국가에 무기 수출을 금지한 정책을 선회한 전례가 있다면서 “한국이 군사적 지원이라는 특정한 문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공개 요청하기도 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