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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저출산’ 280조는 증발한 걸까?[뉴스레터 점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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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점선면 3월8일자(https://stib.ee/lK97)에 게재된 글입니다. 지난 2월7일 첫선을 보인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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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통계청이 합계출산율을 발표하자 다음날 신문 1면이 그야말로 이 내용으로 도배되었어요. 인구가 줄어들어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고요.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독자님께도 분명 곧바로 떠오른 어떤 단어나 느낌이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생애 주기에 따라 관심의 포인트가 다르겠지만, 우리 중 이 문제와 아예 무관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출생과 인구를 얘기할 때 잊지 않아야 할 맥락과 관점을 살펴봤습니다. 3월8일 세계여성의날 주목할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요. 여성의 노동 그리고 사회 전반의 성평등은 인구와 아주 밀접한 문제입니다.

지난주 ‘미리보는 점선면’을 통해 많은 구독자께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셨어요. 90%의 독자님께서 아이를 낳지 않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하셨어요. 이 내용을 중간중간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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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적게 낳자고 절박하게 호소하던 과거의 정부 캠페인 포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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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떨어질 줄이야

·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2021년보다 0.03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어요.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0.78명을 낳을 것으로 예측한다는 뜻입니다. 지난달 22일 통계청이 ‘2022년 인구 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를 통해 발표한 내용입니다.

· OECD 회원국에서 합계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진 국가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38개 회원국 평균 출산율은 2020년 기준 1.59명이에요. 한국이 꼴찌이고 바로 위의 37위가 이탈리아인데 이탈리아의 2020년 합계출산율은 1.24명입니다.

· 국내 합계출산율은 지역별 차이도 컸어요. 서울은 0.59명, 부산 0.72명, 인천 0.75명. 17개 지자체 중 합계출산율이 1명을 넘긴 곳은 세종(1.12명) 뿐이었고, 전년보다 출산율이 높아진 곳은 대전이 유일했습니다.

· 지금 추세대로라면 한국은 2025년부터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뜻이에요.

·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중순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한다고 합니다.

*출산율과 출생률

출산율은 ‘가임기 여성 1000명당 낳은 출생아 수’를 의미합니다. 이 확정치를 바탕으로 합계출산율을 구합니다. 합계출산율은 가임기(15~49세)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자녀수입니다. 확정치가 아닌 전망치예요.

가임기 여성 인구를 토대로 나온 수치가 출산율이라면, 출생률은 전체 인구를 토대로 구한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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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출산율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떨어졌습니다. 0.7명대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관련해서 정부의 대책 발표도 있을 것으로 예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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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전선의 당사자, 여성들의 목소리

이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신 점선면 구독자분 대부분 ‘아이 낳지 않는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하셨어요. 이유와 해결책에 대해선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보다 성평등한 사회가 되고, 아이 낳는 사람도 일터에서 각종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는 의견들이었어요.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가 OECD 국가 중 가장 큰 나라입니다. 여성임금 꼴찌, 출생률도 꼴찌... 성별 임금격차가 정확히 왜, 어디서 발생하고 있는지를 최근 경향신문 기획팀이 면밀히 살펴봤으니, ‘20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시리즈도 꼭 살펴보시길 추천합니다.

많은 구독자님께서 ‘아이를 안 낳는 이유’를 일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써주셨어요. 하나하나 절절한데, 잠시 소개하고 넘어갈게요.

· 경력단절. 아이를 낳고 나서 펼쳐지는 상황들이 걱정돼요. (구독자 A님)

· 일단 회사에서 임신 기간 동안 재택이나 단축근무 등의 배려가 전혀 없음. 다른 직원의 눈치 봐야 하는 분위기. 출산 이후에도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맞춰 출퇴근이 불가하고 업무와 육아를 동시에 챙겨야 하기 때문에 엄마 직장인들에겐 큰 고민거리. 임신, 출산, 육아 기간동안 회사에서 커리어 쌓기가 어려움. 승진이나 업무에도 불이익과 희생이 따름 (노답 님)

· 여성의 파업이죠. 성평등 없이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헌법정신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이 실제로 보장되면 출산율은 올라갈 겁니다. (구독자 B님)

· 결국 애를 여자가 낳는다는 걸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기혼이면 면접 때 자녀계획을 물어보고, 영유아가 있는지 물어보고... 그렇게 여자들이 직장을 잃게 되죠. 사실상 여자에게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이 네 가지가 메리트가 없습니다. (구독자 C님)

지금의 합계출산율은 어쩌면 한국사회의 거울 같습니다. 현재를 사는 데 다들 너무 바빠요. 2019년 초에 합계출산율 ‘1명’이 깨졌다고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1명도 아주 커보이네요.

당시 경향신문에서 ‘다시 쓰는 인구론’ 기획을 내놓았는데, 지금 봐도 참고할 점이 많습니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인터뷰에서 ‘저출생’ 문제가 성평등의 문제이지 결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짚어냅니다. 육아를 여성에게 떠넘기지 않고 남성도 최소 절반을 담당하는 세상이 남성에게도 좋은 것이라고요.

아버지들이 아이들 어린이집·학교 보내고 브런치를 하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회사의 절반이 여성으로 채워지면 자신의 아내도 일자리를 얻게 되는 것인데 남성들이 회사 임원이 되면서 자리를 막지 않고 여성을 협력자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2. 돈, 많이 썼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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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문제에 대한 청년 세대의 생각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해버린 경향신문 최민지 기자. <PD 수첩>에 출연한 최 기자의 ‘촌철살인’은 온라인상에서 크게 공감을 사며 화제가 됐습니다. <PD 수첩>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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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먹여 살리는 것도 너무나 고된 현실이라서요.” (구독자 D님)

한 구독자님께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간명한 한 줄을 보내주셨어요. 양육을 고려 않는 청년 세대의 마음을 대표하는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합계출산율이 공개되자 정부가 지난 15년간 ‘저출산’ 대책에 280조원이나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비판적 보도도 함께 쏟아져나왔습니다. ‘백약이 무효’ ‘헛수고’... 이런 표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어요.

정부도 일부 인정하는 바입니다. “28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그간 인구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저출산위는 지난해 12월 나경원 전 부위원장이 주재한 ‘인구구조 변화와 대응방안’ 회의에서 이런 평가를 내놓았어요.

저출산 대응과 관련 없는 사업들이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되어 있어, 저출산 예산 규모가 부정확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대체 어떤 사업이 들어 있었는고 하니... ‘신기술 기반 게임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만화유통 및 산업기반 조성사업’ 등도 ‘저출산’ 항목에 들어 있었다고 하네요.

‘280조원’은 정부가 5년 단위로 세우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행 명목으로 투입한 예산을 말해요.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다만 규모 자체를 놓고 너무 많이 썼다고 탄식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15년간 280조원. 언뜻 커 보이지만 과연 충분히 쓴 걸까요.

인구정책은 필연적으로 사회보장정책과 겹쳐 있습니다. 지금의 삶이 살기 좋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적어야 다음 세대를 만들 생각을 하니까요. 결국 복지정책과 같이 가는 문제인데요.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기획단장은 올 1월 <보건복지포럼>에 게재한 ‘2023년 인구정책의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서 더 적극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분석합니다.

“정부는 인구변화에 대응하여 2006~2021년 280조원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저출산 추세를 반전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2019년 기준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은 12.2%로 출산율 반등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프랑스(31.0%)와 독일(25.9%)의 절반 이하이고 가족 관련 지출(family benefits public spending)은 2018년 기준 1.2%로 프랑스(2.9%)의 절반 이하이며 독일(2.3%. 2017년)의 약 절반 수준이다. 인구정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9년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은 OECD 최하위권입니다. 38개 회원국 중 우리보다 복지지출 비중이 낮은 나라는 튀르키예(12%), 칠레(11.4%), 멕시코(7.5%) 셋뿐이에요. 정부지출 대비 공공사회복지비 비중도 34.5%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낮습니다.

3. 아이가 싫은 건 아닌지도 몰라

비혼과 비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선호가 하나의 큰 트렌드로 주목받는 사이에, 결혼과 상관없이 아이는 갖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2세를 만드는 데 정말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기존 사회 제도의 불합리함과 양육의 부담이 너무 큰 것이지, 아이를 낳거나 키우는 일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한 사람 비율은 지난해 34.7%까지 높아졌어요. 2012년엔 불과 22.4%였습니다. 반면 임신과 출산을 지원하는 제도는 모두 ‘혼인’을 기준으로 짜여 있습니다.

점선면 Lite <우리 이제 파트너예요> 편에서 얘기 나눈 것처럼, 혈연과 혼인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가족 단위를 넘어 가족을 재정의하는 일은, 보다 자유롭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아이 생각이 없다’ 답하는 청년 세대의 마음도 다 같지는 않을 거예요. 최슬기 KDI 교수가 지난 2월 22일 ‘제2차 미래와 인구전략포럼’에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청년들은 더 이상 결혼과 출산을 꼭 해야 하는 일로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비혼 상태의 청년들에게 ‘이상적인 자녀 수’를 물었을 때는 ‘1.96명’이라는 수치가 나왔다고 해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해석이 필요하겠지만, ‘가임여성 한 명 당 0.78명’이라는 예측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비혼으로 두 딸을 입양해 키운 백지선씨 이야기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은 방송인 사유리씨 이야기는 다음 세대와 가족을 이루는 일이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를 잘 보여줘요.

아이를 안 낳기로 결심한 딩크 부부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국가에서 양육비를 얼마 지급한다거나 하는 ‘출산’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이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아이를 이미 낳은 사람도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19대 국회의원 임기 중 출산했던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주간경향>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국공립 유치원이나 육아휴가는 저출산 대책이 아니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유인 효과가 전혀 없다. 이런 건 그냥 아동에 대한 정책이다. 그리고 육아휴직만 해도 실제로 이 제도를 누리는 사람은 공무원, 교사 그리고 안정적인 기업의 직장인 정도로 한정적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다 같이 노동시간을 줄이자. 나도 한때 비혼이었고 지금은 아이를 키우지만, 그게 따로 분리된 삶이 아니더라.

4. 평범이 왜 이리 어려운가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 삶도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니 엄두를 못내는 것 아닐까요.”(구독자 E님)

“높은 양육비와 교육비, 과도한 주거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큰 요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양육비와 교육비가 높다고 하는데,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 부담을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독자 F님)

“교육의 불평등, 기회의 불평등, 임금의 불평등. 저출산은 이 모든 것이 모여 만든 현상이고, 이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 불공정입니다.” (라파엘 님)

최재천 교수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개인들의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생물종을 보더라도 환경이 살기 좋으면 개체수를 늘리고, 환경이 척박하면 생존을 위해 개체수를 줄이는데 인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한때 ‘집안의 노동력’ 또는 ‘기쁨의 대명사’이던 ‘아이’는 언제부터 ‘짐’이 되어버렸을까요.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아이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공포가 출산 거부의 기저에 있다고 임아영 기자는 썼습니다.

출산과 양육이 두려운 이유로 많은 분들이 ‘교육비’를 꼽아요. 사회학자 오찬호는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 ”사교육의 효과는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라고 분석합니다.

”헬조선에서 ‘평균치’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니 사교육을 멈출 수 없다. 모두가 멈추지 않으니 모두가 시작점을 앞당긴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아이를 낳는 건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상대적 빈곤과 격차, 차별 그리고 혐오가 제일 두려운 게 아닐까요. ‘아이에게 충분히 좋은 삶을 줄 자신이 없다’라는 흔한 넋두리에 엄청난 고단함과 삶의 무게가 담겨있습니다.

보다 평등한 사회. 각자도생의 시대에 너무나 생소해져 버린 개념이지만, 저출생의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결국 ‘평등’이라는 단어로 모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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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출생율은 청년 세대의 ‘출산 파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존도 지키기 어려운데,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겠냐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어요.

청년들이 출산과 양육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저출생의 이면에는 어쩌면 아이를 원할 수도 있지만 대놓고 원하기도 어려운 청년 세대의 복잡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저출산’ 명목에 15년간 280조원을 쓴 게 효과가 없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청년 세대의 어려움을 해결해 출생율을 높이고자 한다면 공공부문 사회복지 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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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시대, 누구랑 사세요?> 기획팀이 주목한 새로운 형태의 반려관계들. 김창길·이준헌·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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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구감소 ‘묵시록’을 넘어서

“미등록이주민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혼외자들도 평등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했으면 좋겠어요.” (엘피 님)

의견을 보내주신 구독자님 가운데 엘피 님께서는 저출생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하셨어요. 대신 위와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더 나은 사회가 될 테니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셨습니다.

확실히 지금의 인구 논의에는 미래를 너무 암울하게 그리는 시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인구는 소멸하고, 노인만 넘쳐나 생기가 없어져 버린 미래를 자동으로 상상하고 계신다면, 조금 생각을 바꿔봐도 좋을 것 같아요.

<총, 균, 쇠>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난해 경향포럼에서 한국의 낮은 출생률을 “위기가 아닌 ‘행운’이자 ‘기회’”라고 언급한 적 있어요. 그는 통념과 반대로 “인구 증가는 세계를 위협하고 개별 국가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라는 관점을 제시했는데요.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인구 증가율을 멈추거나 줄이는 데 성공하면 한국은 동일한 자원을 더 적은 사람들에게 분배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은 더 부유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 조건이 있어요. “한국의 미래는 한국인의 ‘수’가 아닌 ‘자질’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제적,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해야 할 중요한 위협 요소로 짚었습니다.

1970년에 미국에선 <인구폭탄>이라는 책이 크게 인기를 끕니다. 유명 토크쇼에 소개되면서 저자는 단숨에 스타가 됐고, TV를 통해 이야기를 접한 시청자들은 지구에 사람이 넘치는 미래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널리스트 조이슨 메이나드는 그 책을 읽고 자신을 덮쳤던 두려움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가 부모 나이쯤 되면 인구가 정어리처럼 빼곡하게 많아지고 하늘을 가려버린 스모그 구름 속에서 가스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리라는 종말론적인 두려움.’ (소니아 샤, <인류, 이주, 생존> 205~206쪽에서 인용)

지금은 어떤가요. 인구가 줄어들어 경제 성장이 멈추고 고령층 부양이 어려울 거라는, 완전히 반대의 공포에 모두가 사로잡혀있습니다.

일본 경제학자 요시카와 히로시는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에서 ‘인구 감소 비관주의’가 너무 지나치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선진국의 경제 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인구가 아닌 이노베이션(혁신)이라는 주장입니다.

요시카와 교수는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에서, 노동력 말고 ‘노동생산성’에 주목하자고 합니다. “노동력 인구가 변함없더라도 (혹은 조금 감소하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증가하면 (즉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을 플러스가 된다”는 논리예요.

경제평론가인 이원재 랩2050 대표도 노동생산성을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기술이 인간 노동을 상당부분 대체한다고 본다면, 노동력 부족만 걱정할 게 아니라 분배와 복지를 새롭게 설계하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니냐는 관점입니다.

2. 아이들의 권리 관점에서

앞서 280조원의 돈은 어쩌면 큰 액수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120조원을 썼던 시점에도 비판은 계속 나왔습니다. 출생률이라는 게 그렇게 갑자기 반등할 수 있는 종류의 수치는 아니니까요.

경향신문 고정 칼럼니스트인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가 2017년에 쓴 에서 꼭 나누고 싶은 부분을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드는 자원이 누구 몫인지, 아이를 낳은 사람과 아닌 사람 중에 누가 손해를 보고 있는 건지 따지게 되는 지금 꼭 필요한 관점이에요.

“이미 출산율에 기여한 엄마로서, 가장 화나는 것은 지난 10년간 120조원을 썼지만 효과가 없더라는 말입니다. 보육 정책은 애초에 복지 정책이에요. 그걸 저출산 대책이라고 실시한 당신들이 문제였습니다.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안 되면 중단할 수 있는 선택적인 정책이 아닙니다.

수차례 강조했듯이 우리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정부의 책임하에 안전한 보육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를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120조원이 적은 돈이 아닙니다만, 우리 아이들의 보육 환경을 한번 보세요. 연재글을 통해 누누이 밝혔듯이 교사 대 아동 비율이 너무 높고, 아이들 급식비를 포함한 보육비와 운영비도 적고, 보육교사의 처우는 너무 열악합니다.”

아이들을 필요로하는 게 개인이 아닌 우리 사회라면, 당장 출생률을 높일 수 없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폭넓게 아이들의 삶을 지원해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리고 싶은 부모들이야 점점 더 많은 돈을 내고 차별화된 무언가를 찾겠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부분은 공격적으로 늘려야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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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증평군 한 마을의 빈집.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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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밀도를 낮출 방법을 찾자

2년 전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은 강원도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이 14년 후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추적한 적 있어요. 수도권 중심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본 ‘절반의 한국’ 시리즈 기획입니다.

최근 MBC PD수첩 팀이 ‘인구절벽’을 주제로 만든 다큐가 큰 호응을 얻었는데요. 경향신문 팀과 같은 방법론으로, 경남 거창의 고등학교 출신 남성과 여성들을 추적했어요.

결혼, 임신, 출산을 기준으로 보면 이들의 미래는 수도권으로 갔느냐, 지역에 머물렀느냐에 따라 확 갈렸습니다. 수도권 바깥에 사는 이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비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저출생의 해법으로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할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방에서 질 좋은 일자리와 기회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기회를 찾아 수도권에 몰리고 있지만, 비싼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혼도 출산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지난해 0.59명에 그친 서울의 충격적인 합계출산율이 이런 실태를 대변한다.”(경향신문 2월 22일자 사설)

주거 비용이 낮은 지역사회에 수도권 못지않은 일자리와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요.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복지’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하자고 말합니다. 주거와 일자리 문제를 신경 쓰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수도권으로 밀집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결국, ‘자녀 양육’이라는 좁은 틀보다 훨씬 넓은 범위로 문제를 확장해 봐야 해결법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4. 환대를 아는 사회를 위하여

인구를 늘리고 싶다면 방법은 딱 둘 뿐입니다. 아이를 더 낳든가, 이민을 장려하든가.

어느 쪽이든 이 세계에 없던 인구를 초대하는 일입니다. 낳은 사람이 다 책임지라고 떠맡기고 외면할 것인가. 선택해서 여기 온 사람이니 맘껏 고생이나 하라고 할 것인가.

결국 우리의 미래는 이들을 잘 환대해서 같이 살아갈 수 있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요. 그러려면 우선 오늘 여기 사는 우리들의 삶이 좀 나아져야 할 것 같아요. 세계에서 10위권을 다투는 부자 나라이니, 전체 부를 늘린다고 될 문제는 아닐 듯 합니다.

이번 ‘저출생 쇼크’ 앞에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요? 이달 중에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고령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한다고 하니,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끝으로 구독자 가연 님의 의견을 나누며 마칩니다.

“(저출생은) 아이를 양육하기 힘든 환경이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좀 더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보육 케어, 단순 현금성 지원이 아닌 실질적인 인프라 개선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지금은 보건 복지 개념이 노년층을 위한 정책에 쏠린 경향이 있는데, 저출산 문제도 같은 방식의 통합적 접근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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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제대로 된 부의 분배를 도모한다면, 저출생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비용은 부모와 상관 없이 아이들의 권리 관점에서 평등하게 지원한다는 관점도 중요합니다.

좋은 일자리와 미래의 기회를 찾기 위해 젊은이들은 수도권으로 몰립니다. 이 지역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이 저출생을 완화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지금보다 덜 불안하고 덜 경쟁적이게끔 돕는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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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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