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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김광우의 현장에서] 금융당국의 책임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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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고금리를 틈타 역대급 실적을 달성한 은행들은 현재 ‘공공의 적’으로 등극했다. 여론은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까지 나서 연신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다. 흔히 특정 대상을 향한 비판의 수위가 가중될수록 정확한 원인을 파헤치기는 더 어려워진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자장사’의 실마리를 제공한 정부는 그 책임에 한 발 물러서,‘속 빈 강정’과 같은 정책만 논의하고 있다. 그사이 은행을 향한 원색적 비난만 가중될 뿐이다.




올 초 은행권이 역대급 실적을 통해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돈잔치’ 논란이 불거지자 은행권을 향한 여론의 비판은 거세졌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5대 은행 과점 체제’를 이자장사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개혁방안을 추진하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약 일주일 만에 관련 제도개선TF를 꾸리고, 신규 플레이어 진입 등을 골자로 한 경쟁 촉진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논의 중인 경쟁 촉진방안이 ‘이자장사’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5대 시중은행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메기’가 나타나기 어려운 환경 탓이다. 실제 지난 2017년 인터넷은행 출범 이후에도 5대 은행의 과점 체제는 여전했다. 물론 5대 은행 정도의 덩치를 갖춘 경쟁자가 나타날 경우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경쟁자가 될 정도의 자본력을 갖춘 곳은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진입이 불가능한 산업자본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사이의 중론이다. 실상 금융당국에서 강조하고 있는 ‘과점 체제’ 문제의식 자체가 근본적 원인과 어긋났다는 이유다.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 파악이 우선이다. 그런데 ‘과점 체제’에 따른 은행권의 담합이 이자장사의 원인이 됐다는 실증은 부족하다. 되레 해외에 비해 국내 은행의 수익률이 적다는 반대 근거만 제시되고 있다. 심지어 금융위원회 또한 산하 자문기구를 통해 국내 은행업의 시장 집중도가 경제협력기구(OECD) 중하위권에 속한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핵심은 고금리 시기에 은행권의 수익이 증가하는 반면 소비자 후생은 점차 감소하는 구조다. 실제 은행권의 ‘이자장사’는 이번 금리 인상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지난 금리 인상기에도 은행권의 이자이익과 순이익이 증가하는 추세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은행권의 채용 규모는 줄고, 점포 폐쇄는 가속화되는 등 소비자 편의는 감소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돈잔치’ 논란이 일고, 최근에서야 부랴부랴 ‘뒷북’ 대응에 나섰다. 심지어 검증도 부족한 ‘과점 체제’를 원인으로 내세우며 그 책임에서 한 발 물러설 뿐이었다.

무작정 정부와 여론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금융당국은 의미가 없다. 자신들의 책임을 뒤로한 채 엉뚱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분명한 것은 은행들이 고금리 시기에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고, 사회가 요구한 공공의 역할을 소홀히 한 채 ‘제 식구 배불리기’에 힘썼다는 점이다. 하루빨리 정확한 원인과 해결책을 마주하고 잃어버린 소비자 후생을 회복시키는 게 지금 금융당국이 마주한 가장 큰 책무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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