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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그 ‘대치동 아파트’ 경비원 화장실 없다…0.5평 탕비실서 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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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호소 뒤 극단선택한 경비원

수직적 위계구조 최하단의 실상

발 나오는 160㎝ 침대서 새우잠


한겨레

지난 19일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의 탕비실. 경비원들이 씻을 때 보통 사용하는 공간이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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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장은 사과하고 물러나라.”

20일 아침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 74명이 아파트 앞에서 관리소장의 갑질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다. 지난 14일 이곳에서 경비원 박아무개(74)씨가 관리소장의 갑질을 폭로하는 호소문을 남기고 숨지자, 동료 경비원들이 한 데 모여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이아무개 경비대장은 “착실히 근무해 온 경비반장을 죽음으로 내몰고 경비원의 고용불안을 야기한 소장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말 계약이 만료되면 아파트를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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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의 '갑질'을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일했던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앞에서 20일 동료 경비원들이 관리자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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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원, 수직적 위계구조의 최하단



경비원은 수직적 위계 구조 제일 아래 위치하면서, 동시에 파견자 신분이다. 이런 구조는 경비원을 갑질에 취약하게 만든다. 대치동 아파트의 경우 관리소장이 파견자 신분인 경비원에게 인사권을 부당하게 행사한 사례다.

<한겨레>가 확보한 이 아파트 관리소장과 경비대장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관리소장은 “내가 저번 12월부터 경비반장 교체하라고 했지, 근데 왜 아직도 교체하지 않았어”라며 경비대장에게 반말로 지시했다. 경비대장이 소장에게 “소장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했지만, 소장은 되레 “그게 왜 위반이냐”고 맞받았다.

이후 녹취록에서 ‘교체하라’고 거론된 경비반장 서아무개씨는 소장의 지시대로 지난 1월20일 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 처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했다. 숨진 박씨도 지난 1월부터 관리소장이 교체를 지시했던 대상이었다. 박씨는 지난 3월8일 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됐고 6일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률상으로 관리소가 경비업체에 용역을 준 뒤에 경비원을 고용한 구조라, 고용노동부 장관 허가 없이는 관리소장이 경비원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없다. 사용자의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인사권 등을 행사하면 파견법 위반이 된다. 심준형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계약한 당사자에게만 해당하기에 이 사례는 사용자성이 없는 원청이 인사권을 행사한 ‘불법파견’ 문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자주 바뀌는 입주자대표회의



부당한 지시를 거절하기 힘들게 만드는 또다른 구조는 ‘3개월 초단기 쪼개기 계약’이다. 최근 아파트 관리소들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관리비 절감 차원에서 1~2년 계약보다는 3개월 쪼개기 계약을 늘리고 있다.

이오표 성북구 노동권익센터장은 “아파트 구조 변화로 경비원 일자리가 줄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쪼개기 계약은 경비원의 고용불안을 가중시킨다”며 “짧은 계약기간으로 인해 늘 고용불안을 느끼며 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파트의 특성상 고용 구조의 최상단인 입주자대표회의가 자주 바뀐다는 점도 고용불안 요소다.

다른 곳에 취업할 가능성이 낮은 은퇴자, 고령자 중심이라는 점도 이들의 입지를 좁힌다. 직장갑질119가 발간한 2023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를 보면, 경비원들 대부분이 은퇴한 고령(60살 이상이 79.6%)이었다. 2021년 경비원 갑질 방지법으로 불리는 법안(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경비원들의 업무만 일부 구분했을 뿐 고용 구조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경비원들의 휴게실 환경은 이들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19일 찾은 지하에 마련된 대치동 아파트 경비원 휴게실은 석면벽에 창문이 없는 구조였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별도의 화장실도 없어 0.5평 남짓한 탕비실에서 소변을 해결하기도 했다. 야간 대기 중에는 초소마다 마련된 160㎝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대부분 발이 넘쳐 새우잠을 잔다고 한다. 경비원 ㄱ씨는 “폭도 1m도 채 되지 않아 뒤척이면 떨어지거나 주변 난로에 몸이 닿는다”고 했다. 이렇게 쪽잠으로 대기한 시간은 근무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경비원 사망과 관련해선 서울 수서경찰서가 현재 수사 중이다. ‘직장 내 괴롭힘’ 여부에 대해선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이 관리소를 상대로 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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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지하실의 한 경비원 휴게소. 이곳은 이 아파트 지하실 중 세면대가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경비원들 사이에선 ‘호텔’로 불린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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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의 탕비실. 경비원들이 씻을 때 보통 사용하는 공간이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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