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한산하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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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은행권의 대출금리가 내려가고 있지만 정작 내려간 금리만큼 대출 문턱은 오히려 더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주요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고객의 평균 신용점수는 지난해 말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여, 공시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상태다. 심지어 중저신용자 대출 의무가 있는 인터넷은행에서도 고신용자의 대출 비중을 늘리는 현상이 포착되면서 대출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리 인하도 ‘고신용자’만?…은행권 대출 차주 신용점수 ‘급상승’
21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난달 취급한 가계신용대출의 총평균금리(서민금융 제외)는 5.75%로, 지난해 11월(6.68%)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은행권을 향한 금융당국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진 영향이다. 실제 같은 기간 기준금리는 0.25~0.5%포인트 상승했지만 은행들은 가산금리 인하 등을 통해 대출금리 조정에 나서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거리에서 빈 상가들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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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고신용자 비중 확대와 함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인하된 대출금리를 적용받기가 까다로워졌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달 5대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18.8점(KCB)으로, 지난해 11월(899.4점)과 비교했을 때 19점가량 상승했다. 이는 관련 공시가 시작된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심지어 국민은행의 올 1월 신용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941점)는 전월(901점) 대비 40점가량 대폭 상향됐다.
중저신용 대출 의무가 있는 인터넷은행에서도 같은 추세가 나타났다. 인터넷은행 3사(케이뱅크·카카오뱅크·토스뱅크)가 지난달 취급한 신용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02.6점으로, 공시 이래 최초로 900점대에 진입했다. 이는 지난해 11월(855.6점), 12월(840.6점)과 비교했을 때 약 50~60점가량 높은 수치다. 특히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말 중저신용 비율을 맞추고자 차주들의 평균 신용점수를 770점까지 내렸지만 올 2월에는 주요 시중은행과 유사한 평균 914점의 신용점수를 유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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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건전성 관리 차원…일정 부분 희생 불가피해”
이 같은 은행권의 변화는 건전성 관리를 위해 부실 위험이 덜한 고신용자 대출 비중을 늘리고, 중저신용자 비중을 줄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 금리 인상기를 거치며 은행들이 보유한 대출 자산에 대한 부실 우려는 커지고 있다. 가시화되는 경기 둔화 우려에 따라 늘어난 대출의 상환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서울 한 거리에 주요 시중은행들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놓여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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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지난 1월 말 기준 원화대출 연체율은 0.31%로, 전월(0.25%)과 비교해 0.06%포인트 상승했다. 이로써 국내 은행 연체율은 약 20개월 만에 0.3%대에 진입했다.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늘려온 인터넷은행들의 경우 작년 한 해 동안 연체율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하는 등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건전성 관리와 함께 대출금리 인하에 대한 요구도 지속하고 있는데 두 가지 요구를 모두 맞추기 위해서는 결국 일정 부분에 대한 희생은 피할 수 없다”며 “특히 신용대출의 경우 신용점수와 연관된 부실 민감도가 높은 상품이기 때문에 가장 빠르게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낮추려면 어쩔 수 없다지만…대출 ‘빈익빈 부익부’ 현상 가중돼
다만 지금과 같이 은행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질 경우 대출금리 인하의 효과도 일부 고신용자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는 최근 수익성 관리를 위해 대출금리를 인상하는 추세다. 실제 지난달 말 저축은행 가계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연 15.89%로, 지난해 말(15.77%)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여기에 리스크 관리를 목적으로 한 저신용자 대출 중단 비중도 늘고 있다. 일부 고신용자를 제외한 차주들은 되레 더 많은 금리를 주고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한 주민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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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대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기업대출에도 나타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이 건전성 관리 차원으로 기업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우량 기업을 위주로 대출 잔액을 늘린 탓이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대기업대출 잔액은 약 111조원으로 지난해 말(105조원)에 비해 5% 이상 증가했지만, 중소기업대출 잔액(599조원)은 같은 기간 0.27% 상승에 그쳤다. 여기에 비우량 회사채의 발행 비중도 점차 줄어들며, 은행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중소기업 차주들의 자금 조달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에서 밀려난 대출 차주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대출금리 규제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내놓은 ‘소액생계비대출’ 등 정책상품을 확대해 소외 차주들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과거 법정 최고금리를 최고 20%까지 낮춘 이후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난 차주들의 선례를 고려해 일부 차주가 아닌 소비자 전반에 혜택을 줄 수 있는 대출금리 인하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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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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