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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이태원 참사’ 김광호 기소 안하나 못하나…고심 길어지는 검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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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이태원 참사’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검찰의 장고(長考)가 계속되고 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1월 18일), 박희영 전 용산구청장(1월 20일) 등 부실 대응 의혹을 받아온 책임자 대부분은 일찍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김 청장에 대해선 압수수색 두 달이 지나도록 검찰은 “수사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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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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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검(검사장 한석리)은 여전히 김 청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눈에 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윗선일수록 혐의 입증은 고난도”라며 “쟁점이 하도 많아 조사할 게 많다”고 말했다. 무엇이 검사들이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요인일까.

우선 업무상 과실이 있었다는 것부터 입증의 문턱이 높다. 과실이 인정되려면 김 청장이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구체적으로 사고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예견가능성), 참사의 결과를 막을 수 있었다(회피가능성)고 볼 수 있어야 한다.

검찰은 김 청장의 참사 전후 행적을 좇는 데 공을 들여왔다. 먼저 청장실에 오간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1월 18일과 26일 두 번에 걸쳐 서울 종로구의 청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김 청장 주재로 열린 지난해 10월 17일과 24일 핼러윈데이 사전대책 화상회의도 정밀하게 재구성했다. 두 회의에서 김 청장은 각각 “올해는 3년 만의 거리두기 해제니 이태원, 홍대, 강남 관할서는 촘촘한 사전 대책을 마련하라” “마포·용산·강남 등 3개 경찰서는 특별히 핼러윈 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이 김 청장이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해 볼만한 대목이다.

다만 공방은 있을 수 있다. 이임재 전 용산서장 등의 공소장에는, 김 청장이 이 전 서장으로부터 참사 전날 ‘신속 대응’, 참사 당일 오전 ‘신고처리 공백 없음’ 취지의 보고를 받았다고 적혀있다. 현장 지휘관이 사고 직전 ‘특이사항 없음’을 두 차례 보고한 셈이다. 예견가능성 면에서 김 청장에게 유리한 정황이다.



감독권 공백 입증해야…“추상적 지시는 의무불이행”



사고 후 용산서 등 일선 경찰에 대한 감독권 공백이 있었는지도 쟁점이다. 검찰은 2020년 7월 부산 초량제1지하차도 침몰 사고에 대한 부산지법 1심 판결도 들여다봤다. 부산 동구 부구청장 이모씨 등 관련 공무원 11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모두 유죄를 받은 사건이다.

재판부는 지난해 9월 판결문에서 이 부구청장에 금고 1년 2개월을 선고하며 “재난상황에서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고 막연히 철저히 점검하라거나 비상근무를 철저히 하라는 추상적인 지시를 한 것은 재난안전대책본부장 직무대행으로서 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적시했다. 사고 당시 김 청장의 지시가 명확하지 않았다면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주장해 볼 수 있는 판결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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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3일 부산광역시에 내린 기록적 폭우로 부산 동구 초량동 초량제1지하차도가 침수되어 차량 7대가 물에 잠기고 3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 관련 공무원 11명은 모두 유죄를 받았다. 사진은 당시 119 구조대원이 구조작업 중인 모습. 사진 부산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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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또 복수의 경찰관들로부터 “경찰 5명만 현장에 즉시 투입됐어도 참사 규모가 줄었을 것”이란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 김 청장이 사고 회피·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논고를 뒷받침할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밖에도 서부지검은 1월 31일 대검찰청으로부터 안전사고·재난·재해 분야 2급 공인 전문검사(블루벨트)인 최정민 검찰연구관(부부장급)을 파견받는 등 전문 수사력도 보강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김광호 청장에게 입장을 물었으나, 김 청장은 “제가 말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과실범의 공동정범 檢 “적용 가능” 警 “소방 없인 불가”



김 청장에게 책임의 연쇄를 이어갈 핵심 법리인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대해서도 검찰은 유효할 것이라고 본다. 과실범의 공동정범은 여러 사람의 과실이 모여 피해를 키웠다면 모두를 정범이라고 볼 수 있다는 논리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세월호·이태원 참사 등 대형 참사 책임 규명 때마다 등장하는 판례 법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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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시 적절한 초동 대응을 하지 않아 승객들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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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법리가 쓰인 지난달 7일 세월호 2심에서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해경 지휘부에 서울고법이 업무상과실치사상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태원 참사도 적용이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사실관계는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하며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의 불법 증축·과적 등이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었지만, 이태원은 인파 밀집으로 인한 사망을 막을 책임이 처음부터 경찰과 구청에 있었다. 112신고도 오후 6시 34분부터 수 차례 들어온 만큼 경찰이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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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용산소방서 소방관들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최 서장을 이태원 참사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 중인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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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경찰에서는 “구조책임기관인 소방을 기소하지 않고선 재판이 망가질 것(총경)”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 청장과 함께 불구속 송치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기소 여부도 미정인 점을 지적한 것이다. 구조 활동에 있어 소방은 책임기관, 경찰은 지원기관이지만, 검찰은 서울경찰청을 3번 압수수색하는 동안 용산소방서는 한 차례도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했던 한 경찰관은 “사고 예방 책임은 경찰·구청이 지더라도, 현장 사망자가 과다했던 건 골든타임에 지휘 공백이 있었던 소방 책임”이라고 말했다. 더 직접적인 행위 의무가 있는 소방을 건너뛰고 김 청장에게까지 책임의 갈고리를 던진다면 판사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는 “소방도 수사 중”이라며 “다른 기소 건들은 사건이 덜 복잡하거나 구속자가 껴 있어 구속가능 기한 20일을 넘기기 전에 기소 여부를 정해야 해서 빨리 처리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철야하며 최선…정치적 외압 금시초문”



서부지검은 “김 청장의 기소 여부를 빨리 결정하기 위해 (수사관들이) 야근도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수사 난이도가 높아 (위계별) 연결고리 조사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치적 외압 때문에 기소가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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