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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뒷북경제] ‘산업계 부담 경감’···탄소중립기본계획 두고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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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NDC 감축률 14.5→11.4%

기존의 '업종별 목표치'도 사실상 없애

에너지·CCUS·국제감축에서 목표치 ↑

재계 "다행이지만 여전히 도전적 목표"

환경단체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서울경제



“불확실성을 완화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전히 도전적인 목표치라고 판단한다.”(한국경영자총협회)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윤석열 정부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다.”(환경운동연합)

정부가 지난 21일 ‘제 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탄소중립기본계획)’ 정부안을 발표하자 재계와 환경단체는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이번 탄소중립기본계획의 핵심은 ‘산업계의 탄소 감축 목표치 조정’입니다. 지난 2021년 10월 문재인 정부에서 제시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선 2030년의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14.5% 줄이겠다고 제시했는데,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선 이를 11.4%로 3.1%포인트 낮췄기 때문입니다.

대신 에너지와 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CCUS), 국제감축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 저감 목표치를 높여 우리나라의 전체 NDC 목표치인 ‘40%’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산업계 목표치를 낮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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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포스코(POSCO) 하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체 배출량의 12%를 넘습니다. 에너지와 온실가스를 다소비하는 회사의 문을 닫게 하면 사실 온실가스 감축 40% 달성이 가능합니다. 근데 이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일자리, 직장,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은 어떻게 될까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떻게든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인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상협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노력했다’는 전제가 깔리긴 했지만, 산업 부문의 사정도 현실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뜻으로 해석됐습니다. 실제로 정부에선 이번에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률 조정을 두고 고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NDC 수립 당시 석유화학 분야에서 20.2%, 시멘트에서 12%, 철강에서 2.3% 줄이는 등 각 업종별 감축 목표치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산업계에선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목표치’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지난 2021년 에너지경제연구원·산업연구원에선 ‘5%가 산업 부문의 현실적인 목표치’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석유화학 분야 감축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석유화학 부문의 핵심 NDC 이행 수단으로 꼽힌 바이오나프타 전환이 2030년까지 온전히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게 탄녹위 안팎의 설명입니다. 원유에서 추출하는 나프타 대신 바이오나프타 투입량을 늘리는 쪽으로 공정을 개편하면 석유화학 회사들의 온실가스 저감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바이오나프타 전환 기술 진척도, 주요 원료의 수급 등을 고려하면 목표치 달성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됐습니다.

천영길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장은 “NDC 목표를 이행하려면 바이오나프타 2400만 톤가량이 필요한데 지금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양은 800만 톤 수준으로 알고 있다”고 배경을 언급했습니다.

여기에 최근 에쓰오일이 9조 원을 들여 울산에 석유화학 생산 설비를 구비하는 ‘샤힌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기존 NDC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설비(스팀 크래커)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 추정치는 최소 300만 톤에서 최대 2000만 톤까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석유화학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이 4690만 톤에 다다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샤힌 프로젝트 자체만으로도 산업계 온실가스 배출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시멘트 사정도 여의치 않습니다. 2021년 NDC를 보면 정부는 연료로 주로 쓰이는 유연탄 등을 폐플라스틱 등으로 대체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12% 줄인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라스틱 재활용이 이미 활발해 폐플라스틱을 구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칫 폐플라스틱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상황까지 빚어질 판이란 얘기가 업계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를 고려해 이번 탄소중립기본계획에는 업종별 감축 목표치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온실가스를 많이 감축한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권을 더 주는 배출효율기준(BM) 할당을 확대하고 기술혁신펀드를 조성해 산업계 전반에 탄소 감축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한다는 게 탄녹위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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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목표치 조정은 ‘원전·신재생에너지’로 상쇄



정부는 산업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치를 조정하는 대신 에너지(전환) 부문 감축률을 기존의 44.4%에서 45.9%로 1.5%포인트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전발전 비중까지 늘리면 충분히 에너지 분야에서 46% 수준의 감축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탄녹위는 판단한 것입니다.

석탄 발전을 감축하되 원전 비중을 2021년 27.4%에서 2030년 32.4%로 늘리는 게 골자입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도 같은 기간 7.5%에서 21.6%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전제로 NDC를 수립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조적인 대목입니다.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완화를 ‘원전 확대’를 통해 상쇄되도록 디자인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번 NDC 달성의 변수가 ‘원전 계속운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산업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보다 온실가스 400만 톤을 추가로 감축해야 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정부는 이 400만 톤을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충당할 계획입니다. 이와 관련해 천 실장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전체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전원 믹스에 NDC 수정안을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CCUS와 국제감축 목표치가 올라간 것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탄소를 흡수·제거하는 방법인 CCUS 부문에 대해서는 국내 탄소저장소 확대를 반영해 흡수 목표를 10.3톤에서 11.2톤으로 높였습니다. 또 베트남·몽골 등 10여 개국과 함께 국제 감축을 위한 협약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외 부문의 탄소 감축량도 늘려나갈 방침입니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NDC 목표치는 40%로 유지했습니다.



◇재계 “다행이지만 여전히 도전적”, 환경단체 “기후대응 포기 선언”



산업계에선 여전히 이번 NDC를 여전히 ‘도전적’이라고 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NDC 산업부문 목표치를 산업계의 현실을 일부 반영해 하향 조정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산업부문 11.4% 감축도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고려했을 때 매우 도전적인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탄소감축을 위한 획기적인 기술개발 및 상용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국내에서의 추가적인 설비투자는 추가배출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고비용·고위험 탄소감축 기술개발 및 상용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정부는 세제혜택 등 획기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하라”고 밝혔습니다.

환경단체에선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재수립하라”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환경단체 회원들은 지난 22일 탄소중립기본계획 공청회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며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하는 기본계획을 국가가 만드는 게 맞는 말이냐”며 “부끄러운 줄 알라”고 정부 관계자들을 질타했습니다.

환경계는 우선 탄소중립기본계획의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국제감축과 CCUS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설명입니다. 탄녹위는 국제 감축 실적을 확보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고 CCUS 역시 아직 상용화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상쇄할 구체적 수단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차기 정부에 감축 부담을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 1.5’는 “정부 계획에 따르면 2023∼2027년 누적 감축량이 4890만 톤이고 2028∼2030년 누적 감축량이 1억 4840만 톤”이라며 “총 감축량의 75%를 현 정부 임기 이후로 미뤘다”고 비판했습니다.

산업계 부담은 줄이면서 불확실성이 높은 감축 수단의 목표치는 늘림으로써 사실상 2021년 NDC에 비해 후퇴한 조치라는 설명입니다. 더구나 최근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선 “2020년까지 시행된 정책들을 보면 2030년에는 (국가별) NDC에서 명시한 것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분석된다”며 “정책을 강화하지 않으면 2100년에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시기보다 3.2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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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민간위원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한 쪽에선 ‘그 자체도 모자라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40%는 우리 경제에 과하다’며 생존을 염려하는 소리가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며 “탄녹위는 균형 잡고 가야 하는 책무가 있으므로 그 고민을 안고 보다 투명하게 의사결정 과정 참여를 돕는 것이 (국민들과) 함께 가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시민사회에서 격렬한 토론이 오갈 것이라는 점을 탄녹위 안에서도 예견했던 셈입니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을 두고 공론장 조성자로서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입니다. 탄녹위는 오는 27일 시민단체와 토론회를 진행한 뒤 자체 심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 최종안을 4월 중 국회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세종=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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