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화순 오일장
‘곰보배추’로 불리는 뱀차즈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소금물에 담가 살짝 숨을 죽인 뒤 김치양념에 버무리면 청량한 쓴맛을 내는 별미 김치로 즐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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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한창인 화순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다른 전라도의 오일장을 가도 부러 뒤로 미뤘다. 화순 남면의 어느 골짜기에서 맛본, 강렬하게 질긴 토종닭의 식감이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화순 오일장 취재를 미루고 미뤘던 까닭은 따로 있다. 17년 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밀 새우깡을 같이 기획한 후배가 암 투병하던 곳이 화순의 전(남)대(학교) 병원이었다. 어느 날 그쪽 회사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한 번 얼굴 보러 오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미루지 않고 바로 내려가 마지막 얼굴을 보고 이야기까지 나눴다. 얼굴 보고 온 다음주 후배는 세상을 떠났다. 화순 근처에 가면 그 생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화순을 향하는 내 마음은 평소 출장길과 달리 무거웠다.
마음은 마음, 취재는 취재. 화순 오일장은 3, 8일장이다. 매달 시내 중심에 있는 고인돌 시장에 장이 선다. 읍내에서 고개만 넘으면 바로 광주인지라 장이 제법 크다. 화순은 바다가 없지만 인근 보성이나 장흥에서 온 수산물이 제법이다. 봄나물이 한창이지만 나물만 바라보던 시야를 잠시 돌리면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다. 시장 초입에서 바지락을 까던 아주머니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화순이니 봄나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두릅이 나오기 직전의 바지락은 일 년 중 최고의 맛을 낸다. 몇개만 넣고 라면 끓이면 바로 해장 라면이 된다. 육수나 MSG 따위를 넣지 않고도 최고의 조개탕을 끓일 수 있는 시기가 지금으로 초벌부추까지 넣는다면 금상첨화다. 시장 초입이라 나중에 사야지 하다가 이제야 안 사고 왔음을 깨닫고 있다. 크기나 맛이 평소보다 몇배나 좋은 때다. 낙지며, 노랑가오리의 유혹이 제법이다. 노랑가오리는 조금만 더 컸으면 바로 샀을 것이다. 홍어 애와 비교할 수 없는 노랑가오리의 맛이 있다. 살도 쫀득함이 제법이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을 품은 재래시장 두부. |
상설시장 점포는 식당가 외에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 그 앞과 주변을 오일장 상인이 꽉 채우고 있다. 상설시장 점포 중에서 유독 긴 줄을 세우는 곳이 있다. 두부 가게다. 콩물을 내고 간수를 섞고는 바로 두부를 만든다. 로컬푸드 매장이나 재래시장에 빠짐없이 나오는 것은 두부다. 콩과 물로만 만드는 두부는 컴퓨터 제어로 수율을 높인다. 콩에서 최대한 두부를 만들어 내는 기술력으로 만든 두부는 맛이 심심하다. 심심한 포장 두부만 먹다가 재래시장 등에서 사는 두부를 맛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대기업 두부가 기술로 생산성을 높인다면 상대적으로 그런 기술이 떨어진 오일장 두부는 덜 나온 수량만큼 맛이 진하다. 오일장에서 꼭 사야 하는 것이 막 만들어 낸 두부다. 빵도 갓 만들어 낸 게 맛있듯이 두부도 그렇다. 가공품이라도 시간에 따라 맛이 조금씩 사라진다. 게다가 포장한 후 가열 살균을 하면서 맛과 향이 사라진 게 슈퍼마켓 포장 두부다.
지금, 양배추가 가장 맛있는 때
여름 것에 비하면 몇 배나 달아
살짝 데쳐 봄나물과 함께 한 입
이름도 잊고 있었던 ‘곰보배추’
숨 살짝 죽이고 양념 버무리면
처음 보는 청량한 쓴맛 인상적
바다는 없지만 수산물도 제법
이 시절 바지락, 시원함이 그만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의 두부도
초벌부추며, 쑥, 미나리, 머위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지난 김해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봄나물만 바라볼 때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제맛 나는 채소다. 늘 살 수 있기에 제철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기 쉽다. 특히 배추나 무가 그렇다. 배추는 김치로 늘 먹는다. 양배추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사지 않는다. 양배추가 가장 맛있는 때가 사실은 지금이다. 겨우내 생산한 것을 지금 내는 것이다. 단맛이 여름 양배추와 비교하면 몇 배나 달고 달다. 봄나물에 눈길이 쏠려 있을 때 양배추는 단맛을 품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양배추는 튀김 요리에 곁들인 채소나 볶음 음식 등에 넣기도 하지만 가장 간단하게 즐길 방법은 찜이다. 양배추 잘 벗기고는 찌거나 데치면 그만이다. 봄나물의 쌉싸름함과 다른 맛이 지금의 양배추 맛이다. 미세먼지가 잔뜩 낀 봄철, 살짝 데친 양배추에 봄나물을 더한 쌈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3, 8일에 서는 화순 오일장. 바다 없는 고장이지만 인근 보성이나 장흥에서 온 수산물이 제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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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나와 있는 나물은 거의 비슷했다. 선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종류는 거기서 거기였다. 이르지 않나 싶은 고사리가 반가웠다. 구경을 얼추 끝냈을 때 아까는 못 봤던 나물이 눈에 띄었다. 어디선가 봤어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나물이란 게 이름과 모습이 잘 외워지지 않는다. 이듬해 봄철 장터에서 다시 만나면 이름이 가물가물한 것이 많다. 정 생각이 나지 않으면 판매하는 할머니한테 여쭈기도 한다. 작년 봄철 장터에서도 구경도 못 했기에 더욱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나물이었다. 몇 걸음 걷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맞다! 곰보배추! 정식 명칭이 있다는 것만 생각날 뿐, 별칭이라도 생각난 게 어딘가 싶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뱀차즈기가 본래 이름이다. 2년 전 사천 오일장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웃한 보성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는 직접 담근 된장 파느라 정신이 없다. 잠시 그렇게 파는 거 지켜보다가 가격을 물었다. 한 바구니 1만원, 조금 많다 싶어서 돌아섰다. 장터 구경을 얼추 끝내고 돌아설까 하다가 다시 그 자리로 갔다. “주세요!” 사면 어찌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어찌 이걸 아슈? 먹는 법은 아요?” “김치 담글까 생각 중입니다.” “워메 이걸 아는 아자씨도 다 있구만. 기분이네 2000원 빼줄게.” 만원짜리가 없어 5만원권을 내밀었다. 불행(?)하게도 아주머니가 가진 1000원짜리가 한 장밖에 없어 9000원에 샀다. 저번 오일장에서는 미나리와 초벌부추로 전을 부쳤다면 이번에는 곰보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소금물에 담가 숨을 살짝 죽였다. 고춧가루, 다진 마늘, 멸치액젓, 새우젓, 간장 등 양념을 만들고 절인 곰보배추 넣고 버무렸다. 하루 정도 밖에 두었다가 맛을 봤다. 씀바귀와 다른 쓴맛이 입안에 몰아쳤다. 이어서 청량한 무엇인가가 달래듯 입안을 채웠다. 색다른 맛이다. 처음 맛보는 청량한 쓴맛이다. 곰보배추는 김치, 겉절이, 무침 등 채소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가 가능하다. 장터에서 곰보배추를 만난다면 주저 없이 사면 좋다. 꽤 매력적인 쓴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배추가 연중 제일 맛있는 시기다. 여름 양배추와 비교하면 몇 배나 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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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옆이 바로 로컬푸드 매장이다. 싱싱한 채소로 좋지만 전남도의 로컬매장이 다른 곳과 다른 이유는 생고기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생고기는 식당에서 먹자면 한 접시 몇 만원이다. 매장에서 사면 한 접시 사 먹을 돈으로 몇 접시 분량을 살 수가 있다. 생고기는 당일 도축한 것만 구입 가능하다. 도축장이 쉬는 휴일이나 공휴일은 살 수가 없다. 덩어리로 된 팩을 고르면 먹기 좋게 잘라 준다. 어떤 것을 살까 고민하는데 “아저씨 손 옆에 거 집어요” 지나가던 판매 사원이 권한다. 고기 자르는 모습을 보니 쉬워 보였다. 덩어리 하나 더 사서 집에서 손질했다. 따듯한 밥과 함께하니 이보다 더 좋은 반찬은 없을 듯싶다. 술안주로는 말할 것도 없다.
바닷가가 없는 동네는 먹을 것이 거의 대동소이하다. 고기나 국밥, 비빔밥, 청국장, 중식 등 비슷하다. 다만 양념 쓰는 법이나 내용물이 달라 조금씩 차이가 날 뿐이다. 화순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국밥집이 눈에 띄었다. 국밥보다는 국밥집에서 파는 족발과 머릿고기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족발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살집 좋은 것이 아니라 제주에서 아강발이라 부르는 미니족이다. 순대, 내장, 머릿고기 국밥이 있다. 이를 섞어 주는지는 모르겠다.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머릿고기. 머릿고기 국밥을 주문하면서 족발도 주문했다. 비닐장갑과 함께 등장한 족발, 초장에 찍어 먹는다. 차게 식혀 콜라겐의 특성이 제대로 살아 있어 쫄깃함이 좋았다. 국밥의 국물 맛은 차분했다. 다진 고추를 넣었다. 그리고 새우젓까지 넣었다. 일반 순댓국밥 먹을 때 새우젓에 국물이 흥건하면 넣지 않는다. 새우젓에 물과 소금, MSG를 넣고 양을 늘린 조미료 덩어리일 뿐이다. 어차피 국이나 김치에도 이미 조미료가 들어 있기에 굳이 새우젓을 더하지 않는다. 양이 많지 않은 필자, 두 가지를 어찌 다 먹을까 고민이었지만 기우였다. 작년 진안에서 먹은 순댓국밥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맛이었다. 삼거리식당 (061)372-1376
후식으로는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커피도 좋지만 어디서든 맛보기 어려운 팥빙수를 추천한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사시사철 팥빙수를 판다. 국내산 팥을 직접 고르고 골라 팥을 쑨다. 달기만 한 일반 빙수와 달리 단맛은 보조 역할만 한다. 팥의 구수함이 살아 있다. 여럿이 간다면 팥떡을 추천한다. 흰떡 위에 팥소를 발랐다. 커피나 직접 담근 차도 있다. 빙수가 아니더라도 맛볼 것이 많다. 엄지빈 (061)374-9193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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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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