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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과학을읽다]뇌공학에 투입된 AI…당신의 생각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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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혈류량→언어로 번역 성공

최근 AI 활용 뇌공학 혁신 이어져

장애인 활동 보조는 '상용화' 단계

미디어 혁신, 꿈·기억 저장·재생 '가능'

인공지능(AI)이 뇌 공학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뇌를 스캔해 ‘생각’을 읽어내는 기술에 AI가 투입되면서 한층 빠르고 정교한 의미 해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현재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의 동작 보조는 ‘기본’이다. 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인터페이스기술(BCI) 등 의학적·산업적 용도가 다양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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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이미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 출처=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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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혈류량을 언어로 번역한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Nature Neuroscience)에 발표한 기능성 자기공명촬영장치(fMRI)와 AI를 이용한 비침습적 뇌파 분석 연구 결과가 대표적이다. 기존 대부분의 뇌 스캔·언어화 기술들은 침습적, 즉 대뇌 피질에 칩을 심어 전류의 변화를 측정해 말로 변환하려는 시도들이었다. 반면 연구팀은 fMRI를 통해 비침습적 방법으로 뇌의 변화를 언어로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활용한 fMRI는 뇌의 혈류량 변화를 측정하는 장치다. 인간이 말 등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이를 관장하는 뇌의 특정 부분에 혈류량이 늘어나는데, 이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연구팀은 특히 fMRI의 촬영 결과 분석에 AI를 동원해 혁신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라지 랭귀지 모델(large language models·LLMs)이라는 이름의 AI 알고리즘이다. 최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생성형 AI ‘챗GPT’의 초기 버전을 활용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 앞의 단어를 갖고 다음에 나올 단어를 예측하도록 훈련됐다.

연구팀은 3명의 자원자에게 15시간 동안 각자 포드캐스트를 듣게 한 후 fMRI를 동원해 뇌 혈류량의 변화 측정했다. LLMs에 이 시간 동안 지원자들이 특정 정보를 들었을 때 뇌의 어떤 부위의 혈류량이 늘어나는지를 학습시키기 위한 절차였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사람들의 뇌가 특정한 단어와 문장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는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이 결과 연구팀은 지원자들이 짧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동안 뇌에 입력되는 정보를 고스란히 언어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 지원자가 어떤 문장을 생각했을 때 그 요점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했다. 예컨대 머릿속으로 "나는 운전면허가 아직 없다"는 문장을 떠올렸을 때 "아직 운전을 배우지도 않았어"라는 식의 문장을 생성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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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훔치기 가능

다만 한계도 확인됐다. 지원자가 다른 생각을 하면 뇌의 활동을 언어화하기가 불가능했다. 정확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분석을 통해 도출된 단어나 문장들이 부정확한 경우가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똑같은 이야기를 듣거나 보고 있는 동안에도 개인별로 뇌의 변화는 각자 다 달라 호환이 불가능했다. 자기 생각을 읽히는 것에 대해 동의한 사람만 해석할 수 있다는 점도 한계였다. 무엇보다 병원에나 있는 거대한 장비인 fMRI를 장시간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이 같은 혁신적인 비침습적 뇌 스캔 기술의 등장에 다소 당황하고 있다. 우선 윤리적 문제가 우려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함부로 읽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는 물론 범죄에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수사 당국이나 법원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섣불리 이 같은 ‘마음 읽기’를 시도하면 엉뚱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연구팀의 실험에서도 AI는 지원자가 "나는 막 차에서 내렸어"라는 문장을 생각했음에도 "나는 그녀를 차에서 밀어내야 했다"고 기술했다. 가브리엘 라자로-무뇨즈 미 하버드 의대 바이오윤리학 교수는 "패닉 정도는 아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정교하고 비침습적인 (뇌 스캔) 기술이 경계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면서 "정책당국이나 대중들에게 큰 경종을 울리는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아디나 로스키스 미 다트머스대 과학철학 교수도 "이 기술이 사용하기 어려운데다 너무 부정확해서 아직 걱정하기엔 이르다"면서도 "(뇌 스캔 결과에 대한 부정확한 분석은) 법적 소송에서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극명하다. 사용해서는 안 될 때 이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프란시스코 페레이라 미 국립정신보건연구소 연구원은 "농담이나 은유, 빈정거림 등을 (AI가) 번역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AI가 단순히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것과 뇌가 언어 구사를 위해 단어를 조합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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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신경칩을 삽입해 뇌파를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말을 할 수 있게 된 환자. 사진출처=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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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공학 혁명…다양한 분야 혁신 가능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마음 읽기’ 기술이 발전할 경우 그 파급 효과가 매우 큰 점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미 전신마비 등 장애인의 활동 보조를 위해 뇌파를 분석해 명령어로 바꾸고 이를 통해 로봇팔·전동기구·보행보조장비 등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돌입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학적·산업적 활용이 가능하다. 예컨대 뇌파를 읽어내는 기술을 역으로 사용해 전류나 자기장 등의 수단으로 뇌에 정보를 입력할 수도 있다. 시각 장애인이 앞을 볼 수 있고, 가상현실(VR) 장비나 TV·스마트폰, 웨어러블 장비의 일대 혁신이 가능해진다.

먼 거리에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게 되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도구가 등장한다. 원거리에서 자동차·비행기·로봇을 정밀하게 원격 조종할 수도 있다. 최근 잭 갤런트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교수가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피시험자의 뇌를 fMRI로 분석해 어떤 영상을 봤는지 복원하는 기술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술들은 앞으로 꿈을 저장해 재생해보거나 기억을 다시 돌려 확인하는 등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끼칠 수도 있을 전망이다.

김형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 연구센터장은 "뇌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정확히 잡아내고 이를 해석하려면 장비 개발 등 과제가 많다"면서 "해당 연구에서 사용한 뇌센싱 기법인 fMRI는 공간 해상도는 뛰어나지만, 시간 해상도는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이어 "뇌 스캔 기술은 우리나라도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많이 해 일부 분야에선 세계적 수준을 달리고 있다"면서 "의과학 연구는 물론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만큼 연구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는 등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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