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0시30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근로기준법 제정 70주년 계약을 말하다’ 발표회가 열렸다. 직장갑질119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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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은 상사의 부당하지 않은 지시나, 명령에 잘 따르기로 한다. 이를 어길시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하기로 한다.”
이아무개(49)씨는 2015년부터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아동발달센터에서 언어치료사로 일했다. 입사 당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가, 2년이 지나서야 처음 계약서를 썼다. ‘인적용역계약서’라는 이름이었다. 계약서에는 ‘상사의 지시를 어기면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등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있음은 물론이고, 원장실과 화장실 및 센터 청소, 기타 잡무 등도 이씨 업무의 일부였다. 이씨는 주임 직책까지 맡아 일하다 7년만에 센터를 그만뒀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이씨는 본인이 정규직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 사원’이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프리랜서로 일해왔기 때문에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언어치료사 이아무개(49)씨는 노동청에 퇴직금 미지급으로 센터를 신고했지만, ‘인적용역계약서’ 작성 등을 이유로 사건은 행정종결됐다. 이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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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제정 70년을 이틀 앞둔 8일 직장갑질119가 국회에서 연 ‘계약 갑질’ 발표회에서 이씨는 실질적 노동 내용은 정규직과 같은데도 ‘용역·프리랜서·도급’ 등의 이름으로 계약하는 ‘위장 프리랜서’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또다른 발언자로 나선 20년차 학원강사 곽아무개(49)씨는 “학원에서 철저하게 종속적으로 업무 지시를 받고 노동을 제공한 근로자였다”며 “강사의 재량이나 자율권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학원 쪽은) ‘수강생 비율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는 내용의 위탁 계약서가 존재한다’며 근로자성을 부인했다”고 증언했다.
학원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노동청의 태도에 곽씨는 한번더 절망해야 했다. 곽씨는 진정을 제기했지만, 노동청으로부터 “국어국문학과 전공자이자 국어강사 20년 경력이 있는 진정인이 ‘위탁계약서’가 ‘근로계약서’의 다른 이름(같은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하는 것을 사회통념상 인정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김유경 노무사(직장갑질119 운영위원)는 “프리랜서, 위탁 사업자, 용역 사업자라고 적힌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계약서 체결 배경이나 이후 취급 과정은 철저히 사용자의 편”이라며 “노동청이나 노동부 역시 형식적 지표에 근거해서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아무개(49)씨가 노동청으로 받은 행정종결 통보문. 곽씨가 ‘국어국문학과 전공자이면서 국어강사 20년 경력이 있다’는 내용이 진정인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됐다. 곽씨는 노동청에 재진정을 제기한 상황이다. 직장갑질119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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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가 지난 2020년 3월부터 3년간 이메일로 접수된 계약갑질 637건을 분석해 이날 내놓은 자료를 보면, 근로계약서 미작성·미교부가 281건(44.1%)으로 가장 많았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신고했다가 편의점 점장에게 협박받은 사례를 비롯해 근로계약서 서명이 대필됐거나, 채용공고 당시 근무지가 전주였는데 채용 뒤 여수로 변경되는 등 기막힌 사례들이 많았다. 김기홍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으로 정한 계약은 무효로 규정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내용조차 모르고 서명하는 경우가 많다”며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관리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는 등 법적 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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