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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파키스탄 시위대가 정부보다 군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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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칸 전 파키스탄 총리.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파키스탄 정국이 최근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국은 부패 혐의를 앞세워 임란 칸 전 총리 체포에 혈안이 돼 있고, 칸 전 총리 지지자들은 거세게 시위를 벌이며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파키스탄의 반정부 시위에서는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눈에 띈다.

시위대가 최우선에 놓고 겨냥한 타깃이 칸 전 총리 체포에 나선 여권이 아니라 군부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9일 칸 전 총리 체포 후 빚어진 소요 사태에서는 군 관련 시설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

라호르에서는 칸 전 총리 지지자 약 4천명이 지역 군사령관의 관저를 습격했고, 군사도시 라왈핀디에서는 육군본부가 공격받았다.

시위대는 자신들을 막아선 경찰과 일차적으로 충돌했지만, 집중적으로 몰려간 곳은 군 관련 시설이었다.

칸 전 총리도 군부를 향해 끊임없이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지난 14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내 체포의 배후에는 군이 있다"면서 "파키스탄은 이제 육군참모총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칸 전 총리는 지난해 11월에는 유세 도중 괴한의 총격으로 다리를 다치자 현 정부와 함께 군부가 자신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군의 대응도 적극적이다.

수도 이슬라마바드, 펀자브주 등 주요 지역 당국은 군에 치안 유지 지원을 요청했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 거점에 배치했다.

군 홍보기관인 ISPR은 이번 소요 사태에 대해 파키스탄 역사에서 어두운 장(章)을 펼치게 했다며 "군·국가 시설에 추가 공격이 있을 경우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파키스탄 정부도 군 시설을 공격한 이들을 군 법정에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흔들리는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울 집단은 군밖에 없다는 듯한 공감대가 집권 세력 사이에 형성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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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11일 경계 활동 중인 군인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파키스탄 군부가 이처럼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국가 권력이 사실상 군부에 의해 상당 부분 장악됐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파키스탄에서는 오는 10월 총선이 열리기 때문에 군부가 이에 앞서 잠재적 경쟁 세력을 분쇄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칸 전 총리 측도 이 같은 역학 구도를 잘 알고 있기에 주 공격대상을 군부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군부는 1947년 파키스탄이 영국에서 독립한 뒤 여러 차례 쿠데타를 일으켜 직접 정치에 참여했다.

군부는 현재는 정계의 최전선에 나서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치·사회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실세 집단으로 꼽힌다.

특히 육군참모총장은 육군 최고 지도자를 넘어 군부의 실세이자 정계의 막후 최고 실력자로 여겨진다.

지난해 4월 의회 불신임으로 총리직에서 쫓겨난 칸도 2018년에는 육군참모총장 등 군부의 비호 아래 총리로 당선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칸 전 총리는 취임 후 현 육군참모총장이자 당시 정보국(ISI) 수장이었던 아심 무니르를 경질하는 등 군부와 갈등을 빚었다.

이후 군부는 칸 전 총리 퇴출과 현 셰바즈 샤리프 정부 출범에 깊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칸 전 총리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군과 ISI는 법 위에 있다. 이들은 사람을 체포하고 억류하고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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