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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위기에 ‘스트롱맨’ 손 들어준 튀르키예…에르도안이 ‘구원자’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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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재선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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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튀르키예의 승리다.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승리했다.”

대지진과 경제난 등으로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던 ‘스트롱맨’이 악재를 딛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재선으로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이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69)은 말 그대로 ‘21세기 술탄’이 됐다. ‘힘있고 안정된 국가’를 염원한 튀르키예 국민들은 강한 지도자를 찾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각종 악재 극복한 ‘선거의 제왕’


2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대선 결선 투표 결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야당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를 52.14% 대 47.86%로 이겼다. 선거관리위원회(YSK)가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하자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지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신은 위대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승리를 축하했다. 이로써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첫 집권 이후 2033년까지 최장 30년에 달하는 사실상의 종신집권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선거 전만해도 이번에야말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20년 집권에 마침표를 찍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왔다.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치솟는 등 경제는 연일 수렁에 빠졌다. 지난 2월 대지진으로 5만명 이상이 숨진 후 정권의 토건 비리 의혹까지 터져나오면서 민심은 돌아섰다. 에르도안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목표 하나로 뭉친 야권은 단일 후보로 결집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적’을 끊임없이 소환하며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우선 쿠르드계가 제물이 됐다. 그는 쿠르드족이 분리독립을 시도하고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웠다. 아울러 친쿠르드 정당이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야당이 승리하면 튀르키예가 테러로 시달릴 것”이라고 공격했다. 에르도안 진영은 야당과 테러를 연결짓는 노래와 구호를 유세에 활용하며 반복적으로 위기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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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 결선 투표가 열린 28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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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역시 도마에 올랐다. 튀르키예는 지난 10여년 간 시리아 난민 300만명 이상을 수용했는데, 경제난과 대지진 등으로 이들에 대한 여론이 더 악화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난민을 돌려보내겠다고 공약했으며, 승리 연설에서도 “지금까지 60만명 가까이 시리아로 돌려보냈으며 향후 몇년 간 100만명을 더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국제 관계와 안보 측면에서도 ‘튀르키예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행보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중재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소속된 미국의 동맹임에도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선거 운동 기간엔 군사시설과 무기 시찰을 늘리며 안보에 강한 면모를 부각했다.

무사 아슬란타스(28)는 “우리나라는 에르도안 덕분에 강력해졌다. 그는 외국 지도자들에게 맞설 수 있다. 에르도안은 우리로 하여금 안전과 힘을 느끼게 한다. (외세는)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우리를 갖고 놀 수 없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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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 결선 투표가 열린 2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아이들이 모여 케이크를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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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자초한 위기에 자신만이 ‘해결사’가 될 수 있다고 선전함으로써 민심을 돌렸다. 사상 최악의 대지진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해 야당에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고 연설했으며 피해 복구에 재원 투입을 약속했다. 결국 지난 14일 대선 1차 투표와 함께 치른 총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속한 정의개발당(AKP) 연합은 지진 피해 11개 지역 중 10곳에서 승리하며 기세를 더했다.

진앙지였던 카라만마라슈의 주민 멜리하는 “지진 이후 책임자들은 자신의 일을 하지 않았지만 지도자(에르도안)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 메멧 알리 쿨랏은 “지진 피해자들은 결국 누가 집과 직장을 재건할 것인지 답이 필요했다.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에르도안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보수적 무슬림 유권자를 포섭한 것 또한 유효하게 먹혀들었다. 튀르키예는 한때 스카프나 히잡을 쓴 여성에게 학업·취업에서 불이익을 줬을 정도로 세속주의 이슬람을 표방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시기에는 다시 보수적 이슬람 성향이 강해졌다. 대표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성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으로, 이어 다시 모스크로 개조했으며 종교 교육을 확대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세하트(33)는 “무슬림과 이슬람세계는 기뻐해야 한다. 전세계가 무슬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

더 강력해진 ‘1인 통치’가 온다


이처럼 튀르키예 유권자들은 산적한 난관을 뚫고 나갈 ‘위기의 구원자’로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그러나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 상당수는 그 자신이 초래한 문제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이스탄불 빌기대학의 엠레 에르도안 교수는 “이 시대는 정치적·시민적 자유의 후퇴와 양극화, 두 정치 집단 사이의 문화적 싸움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무엇보다도 권위주의가 강화되고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으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재선으로 2033년까지 사실상 종신집권이 가능해지면서 한층 더 강력해진 ‘1인 통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AKP 연합이 의회에서 600석 중 323석으로 과반을 차지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의회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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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 결선 투표가 열린 28일(현지시간)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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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야권 측 정치컨설턴트는 “선거 승리로 에르도안은 궁극의 자신감을 가지게 돼 이제부터 자기 자신을 무적으로 볼 것이다. 야당에 더 가혹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NYT에 밝혔다.

선거 결과가 나오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국가의 모든 수단이 한 사람의 발 앞에 놓이게 됐다. 내 진정한 슬픔은 이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더 큰 문제들”이라고 밝혔다.

야권이 끝까지 치열하게 따라붙은 만큼 이번 대선은 큰 분열을 남길 전망이다. 아이든타스바쉬 연구원은 “변화를 원했던 이들에게 이건 압도적 패배가 아니다. 우리는 또 한번 갈라진 국가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략분석가 니하트 알리 외즈칸 박사는 “에르도안으로선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은 승리다. 집권을 연장했을 수는 있지만 새 임기는 경제부터 외교 정책까지 도전 과제들로 가득찰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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