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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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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F-16, 전쟁 판도 뒤집을 게임체인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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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우크라 F-16 지원’ 동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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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F-16 전투기.  AP 연합뉴스


F-16 전투기는 장기화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을 뒤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F-16의 지원을 허용함에 따라, 이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체 판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히로시마에서 우크라이나 조종사의 F-16 교육훈련을 허용하는 등 이 전투기를 지원하는 국제 협력에 참여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조종사·정비사를 대상으로 F-16 교육훈련 지원을 서두르는 등 전투기를 제공하기 위한 수순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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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왼쪽 다섯째)가 25일 보옌스 인근의 공군기지를 방문해 F-16 전투기 앞에서 군 관계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덴마크는 우크라이나 조종사와 정비사에 대한 F-16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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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을 F-16에 태우는 교육 훈련엔 못해도 몇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가 얼마나 많은 전투기를 제공할지 논의할 예정이다. 훈련 기간이 얼마나 걸리냐에 따라 이 전투기가 실제 언제쯤 전투에 투입될지도 정해지게 된다.

■ “마법의 무기는 없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그동안 미그-29나 수호이(Su)-27 등 옛 소련제 전투기로 러시아에 대항했다. 하지만 기체가 낡은데다 수적으로도 열세여서 전투 수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난 3월 미국 의회보고서(CRS)에 따르면, 개전 시점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항공기는 132대로 러시아의 1391대보다 수적으로 10배나 적었다. 그나마 개전 1년 만에 절반에 가까운 60대를 잃었다. 부품 조달도 문제였다. 유일한 부품 제작국인 러시아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일방적으로 합병한 뒤 부품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폴란드·슬로바키아 등 옛 공산권 국가들이 자신들의 미그-29 등을 보내주며 지원했지만, 러시아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전 초기부터 미국 등에 F-16 전투기 지원을 집요하게 요구해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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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6은 미국의 군수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현 록히드마틴)가 제작한 4세대 전투기다. 1976년 이후 세계적으로 4600대가 넘게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이다. 50년 전 설계된 전투기지만 지속적인 성능 개량이 이뤄지며 레이더 탐색과 무장 능력이 향상됐다. 그 때문에 미그-29보다 훨씬 앞선 전투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F-16 지원 결정이 내려지자 “미국의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크게 반기며 “하늘에서 우리 군의 능력을 대폭 향상시킬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지나친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프랭크 켄들 미국 공군장관은 22일 국방기자단 행사에서 “F-16이 우크라이나를 돕겠지만,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 전투기는 “‘게임 체인저’가 아니다”라며 이번 전쟁에서 전투기가 할 수 있는 것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도 25일 “마법의 무기는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공중에서 러시아와 경쟁하려면 상당수의 4~5세대 전투기가 필요할 것”이라며 이런 규모를 갖춘 공군력을 구축하려면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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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넷째)이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다른 회원국 정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여섯째)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F-16의 우크라이나 지원 의사를 내비쳤다. 교도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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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제공권 확보 못한 전쟁

러시아 공군은 개전 초부터 수호이-31, 수호이-34, 수호이-35 등을 동원해 미그-29, 수호이-27 등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공군을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압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공권 장악’에는 실패했다고 입을 모은다. 우크라이나의 방공 시스템이 적절한 진지 전환을 통해 살아남으며 지속적으로 러시아 전투기들을 격추하는 등 예상을 뛰어넘는 공중거부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러시아 공군은 레이더 전파의 발신지를 역추적해 날아가는 ‘대레이더 미사일’과 전파 교란 등으로 이에 맞섰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은 이후 서방에서 패트리엇(PAC)과 나삼스(NASAMS) 등이 지원되면서 더 강력해졌다.

결국 러시아 전투기들은 우크라이나 곳곳에 깔린 방공시스템 때문에 자유로운 비행을 할 수 없어 공중 작전에서 한계를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터에서는 병력이나 탱크·대포 등 군사 장비의 이동이 수시로 이뤄져, 실시간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 제공권을 장악하면 전투기가 적진 깊숙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적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이 정보를 아군에 넘겨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는 방공망에 걸려 격추되지 않기 위해 사정권 밖 멀리서 장거리 미사일을 쏘거나, 사정권에 들어간 뒤엔 조심스럽게 초저공비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이 주로 고정된 군 기지나 민간 시설을 타격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이유다.

이런 상황을 넘어서려면 레이더망에 잘 걸리지 않는 스텔스기가 필요하다. 러시아는 신형 스텔스기 ‘수호이-57’을 개발해 보유하고 있지만, 이 전쟁엔 투입하지 않고 있다. 충분한 생산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실전 투입이 어렵거나, 섣불리 투입했다가 격추되어 기체가 서방에 넘어가 기술이 유출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러시아 공군에 맞서 우크라이나 공군은 처음부터 전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공중 우위를 다투기보다는 방공망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에 주력했다. 우크라이나가 F-16 전투기를 지원받아 운용하게 되더라도 당장 이런 현실을 바꾸긴 어려워 보인다. 서방의 F-16 지원이 러시아와 공중 우위를 다툴 수 있을 만큼 ‘대규모’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F-16도 투입되더라도 S-300, S-400 등 러시아의 첨단 방공망 때문에 초저공비행을 해야 하는 등 작전 수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면 스텔스기가 필요하지만, 미국이 F-35 같은 첨단 스텔스기를 지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공군이 상대의 방공망에 손발이 묶여 있는 한 F-16을 포함한 전투기는 이번 전쟁의 ‘게임 체인저’가 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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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9일 전승 기념일 78돌을 맞아 붉은광장 열병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크렘린궁 배포 사진.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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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6, 우크라이나 전술운용 폭 넓혀

그렇지만 F-16 지원은 우크라이나에 몇가지 전술적인 이점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F-16은 미그-29 등에는 없는 첨단 레이더로 표적을 탐지·추적하는 등 첨단 정보획득 능력을 갖추고 있다. 또 적의 통신·전파를 교란하고 무력화하는 전자전 능력도 뛰어나다. 이런 능력은 러시아 전투기와의 경쟁에서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F-16 지원은 유도 무기의 효율성을 더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과 영국은 우크라이나 전투기에 정밀타격이 가능한 활공 유도 폭탄인 ‘통합직격탄’(JDAM)과 대레이더 미사일 ‘함’(HARM), 순항미사일 ‘스톰 섀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들 첨단 무기를 낡은 미그-29와 수호이-27에 달아 임시 운용해 왔다. 하지만 전투기의 통제 시스템에 완벽히 통합되지 않아 원거리 정밀타격 등에서 한계를 보였다. F-16이라면 이들 무기 체계와 완벽하게 통합돼 제 성능을 100% 발휘할 수 있다.

또 F-16은 그 외 다른 서방의 무기 거의 대부분을 곧바로 탑재·운용할 수 있어, 무기의 전술적 운용 폭을 획기적으로 늘려줄 수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인 유리 이흐나트 중령은 <뉴욕 타임스>에 “우리는 러시아 전투기가 방공망 밖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막고, 아군의 진격을 공중 지원하며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의 해상로를 보호하는 임무도 하길 바란다”며 “이런 임무는 옛 소련 시절 설계된 낡은 항공기로는 결코 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F-16 지원 결정은 종전 이후까지 멀리 내다본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은 옛 소련군의 교리와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이것으로는 러시아의 침략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실증됐다. 이번 전쟁이 양쪽의 평화 협상으로 마무리되더라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F-16 지원은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무기체계, 특히 공군 전력의 재구축을 위한 디딤돌 구실을 할 수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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