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해수부 이석민 주무관 모친 정성미 씨(3대가 함께 부산으로 이전), 박은혜 해수부 주무관, 이희숙 원조콩나물비빔밥 사장(제39회 부산 시민상 대상), 이대규 SK해운 선장, 박형준 부산시장, 김성범 해수부 차관, 이재명 대통령, 김민석 총리, 구본민 한국해양대학교 학생, 박혜라 씨드(SEA.D) 대표, 윤경희 에이치라인해운 2등 항해사, 윤병철 해수부 주무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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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세계 1위 해운사인 스위스의 엠에스시(MSC)는 2019년 “북유럽과 아시아 사이 새로운 지름길인 북극항로를 활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기후변화로) 북극 얼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해운산업은 새로운 항로 개척이 아니라, 기존 항로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해양 환경을 보호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위인 덴마크의 머스크, 3위인 프랑스의 시엠에이 시지엠(CMA CGM)도 비슷한 시기에 북극항로 포기를 밝혔다. 이들은 북극해에서 사고가 나면 인명 구조가 어렵고, 오염 확산도 속수무책이라고 우려했다. 변덕스러운 기상, 특수선박 비용, 높은 보험료 등으로 수익성 확보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북극의 얼음 지대는 아마존의 열대우림 등과 함께 기후위기의 티핑포인트(임계점)가 될 수 있는 곳이다. 티핑포인트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넘어가는 지점을 말한다. 북극해를 뒤덮은 하얀 얼음은 햇빛을 반사해 지구의 온도 상승을 막는다. 반대로 얼음이 녹으면 검은색 바다가 햇빛을 흡수해 지구 온도를 높인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중유에서 나오는 검댕(블랙카본)이 얼음을 더 빨리 녹인다며 북극 항해 선박의 중유 사용을 금지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북극 얼음은 예상보다 빠르게 녹고 있는데, 북극항로에 더 많은 배가 오가면 티핑포인트도 앞당겨질 것이다. 그러면 북극이 지탱하던 기상 질서가 무너지면서 혹한·홍수 등 대형 재난이 일상화하고, 기후난민과 갈등·분쟁도 급증할 것이다. 기후단체들은 ‘얼음이 녹았다고 북극항로로 몰려갈 것이 아니라, 얼음이 더 녹지 않게 힘을 모을 때’라고 말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난 23일 부산으로 이전한 해양수산부 건물에 ‘북극항로를 선도하고 해양 수도를 완성하겠다’는 대형 펼침막이 걸렸다. 정부가 앞장서서 북극항로 개척을 이끄는 중이다. 올해 예산에도 약 5500억원이 배정돼, 얼음 깨는 쇄빙선 건조와 컨테이너선 시범 운항 등을 지원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허브(중심지)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해수부와 관련 전문가들은 북극항로의 전도사가 됐다.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남방항로보다 거리가 3분의 2로 짧아, 시간·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운항 거리가 짧아지니 탄소배출도 준다’ ‘부산이 북극항로 기항지가 되면 엄청난 산업 연관 효과와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2018년 북극항로를 시범 운항했던 머스크를 분석한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북극항로는 여름 몇달만 열리고, 바닷길 지도가 불완전하며, 날씨 변덕이 심해 안정적인 수송로가 되기 어렵다. 얼음을 깨며 전진해야 하므로, 러시아 쇄빙선을 임차하거나 쇄빙·내빙 기능이 있는 선박을 건조해야 한다. 남방항로보다 짧지만, 시간과 비용이 기대만큼 줄어드는 건 아니란 얘기다. 지정학적 문제도 있다. 한국이 관심 두는 북동쪽 항로는 대부분 러시아 영해인데, 러시아 쇄빙선 이용 등의 거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 대상이다. 그래서 이 항로에서 늘어나는 물동량은 대부분 국제 제재를 피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가는 화석연료 등이라고 한다. 권효재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 연구원은 유튜브 채널 ‘머니인사이드’에서 “한국이 러시아와 밀착하는 북극항로를 미국이 용인할 리 없고, 러시아도 파병으로 북한과 혈맹이 된 상황에서 한국에 혜택을 줄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긴 것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잘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기후 관점’이 안 보이는 것은 몹시 걱정스럽다. 기상학자인 김해동 계명대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북극항로가 본격화할 만큼 얼음이 더 녹으면) 부산을 포함한 한반도 남쪽 항구는 쓸모가 없어진다”며 “부산은 콘크리트 구조물도 파괴하는 슈퍼태풍의 길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를 막으면서도 부산의 도약을 추구할 정책 교집합은 없을까? 태양광·풍력을 보조에너지로 쓰는 친환경 선박의 공급지, 조선 기술력을 활용한 해상풍력 기지 등 후보는 많다. 북극항로를 활용하되 기후위기를 가속하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연구는 필요하다. 다만 ‘대왕고래’처럼 요란하게 시작했다 나랏돈만 낭비하지 않도록, 이 정책의 현실성은 냉정하게 재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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