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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재난문자’ 한국은 맹탕, 일본은 진국…속도마저 일본이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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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6시 41분 경보 발령 문자
행안부는 7시 3분 ‘오발령’ 정정
시 7시 25분 ‘해제’ 하며 불협화음
양측 “서로 연락 닿지 않았다” 주장

문자에 경보 이유, 대처방법 없어
소방·구청에 “전쟁 난거냐” 빗발
오 시장 “혼란 빚어 죄송” 사과


매일경제

3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 TV에 관련 뉴스속보가 나오는 가운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을 듣고 휴대전화 위급재난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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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일단 애들부터 깨워.”

31일 새벽 노원구에 거주하는 김지석(39·가명) 씨는 6시 41분께 발송된 경계경보에 놀라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둘을 깨웠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곧장 휴대폰으로 네이버에 접속했으나 먹통이었다. 서울시가 보낸 경계경보 발령문자에는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만 있을 뿐 어떤 이유로 경보가 발령됐는지에 어디로 이동하라는 정보는 없었다.

가족들을 이끌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김 씨에게 옆집 할머니가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을 들려줬다. 김 씨는 “무슨 일인지라도 알려줬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가늠이 잡혔을 텐데 다짜고짜 대피하라고 하니 정말 막막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지역에서 이날 이른 아침 발령된 경계경보 탓에 시민들이 출근 전부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북한 우주발사체 발사를 두고 서울시와 행정안전부가 조율없이 각자 44분 사이 ‘경보발령’, ‘오발령’, ‘경보해체’ 라는 재난문자를 3번 보내며 혼란을 가중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경계경보에 대한 119 신고는 3500여건 접수됐다. 서초구, 노원구, 용산구 등 자치구에도 수통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막막해진 시민들이 몰려 네이버 모바일 버전도 먹통이 됐다. 네이버 측에 따르면 이날 접속 장애는 경계경보 문자 발송 2분 뒤인 오전 6시 43분부터 48분까지 5분간 발생했다.

이날 서울시민의 새벽잠을 깨운 서울시 경계경보는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간 경보 ‘오발령’ 논란으로 이어졌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의 불협화음이 이른 아침 3번이나 60데시벨에 달하는 알림 문자를 울리게 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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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이날 오전 6시 41분 재난문자를 통해 6시 32분부터 서울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됐다고 안내했다. 22분 뒤인 7시 3분에는 행안부가 “6시 41분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는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7시 25분이 돼서야 서울시는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해 위급 안내 문자가 발송되었습니다. 서울시 전지역 경계경보해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는 ‘안전 안내 문자’를 보냈다.

새벽부터 서울시와 행안부가 엇갈린 대응을 내놓은 데에는 양측이 ‘미수신 지역’이라는 지령방송 내용을 두고 해석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행안부 중앙민방위통제소는 오전 6시 30분 각 지역 민방위통제소에 “현재시각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하라는 음성 지령방송을 발신했다. 서울시는 이 ‘미수신 지역’을 백령도를 제외한 전체 지역으로 해석해 발사체 궤적이 남측으로 발사됐던 만큼 서울시에도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반면 행안부는 “미수신 지역은 백령도 내에서 주민들에게 적극 알리라는 의미였다”는 입장이다. 행안부는 “서울시에 정정 문자를 발송하라고 요청하려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행안부 차원에서 ‘오발령’ 문자를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울시는 지령방송을 수신한 6시 30분부터 경계경보 해제 문자를 발송한 7시 25분까지 확인작업을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종합방재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센터는 지령방송 수신 이후 수도방위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발사체 발사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추가 파악을 위해 행안부 중앙민방위통제소에 연락을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밝혔다. 센터 관계자는 “더 이상 상황 파악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해 선조치 성격으로 재난문자를 발송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경계경보의 내용이 부실한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서울시가 6시 32분 최초 발송한 재난문자는 발령 이유와 대응방안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같은 날 오전 6시 30분 일본 오키나와 지역에 발령된 일본 재난문자 ‘제이얼럿’은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십시오”라며 경보 원인과 대피 방법, 대상지역 등을 적어 서울시가 발송한 문자와 대조된다.

한편 이날 서울시가 발송한 재난문자가 휴대전화 사용언어를 영어로 설정한 이용자들에게는 ‘전시경보(Wartime alert)’라는 제목으로 발송돼 외국인들에게는 공포감을 선사했다. 이날 보건복지부가 2023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위해 입국한 14개국 정상 부부를 대상으로 의료서비스 체험 행사를 기획했지만,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던 정상 부부 다수가 재난문자를 받고 놀라 불참을 통보해왔고 행사가 취소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1시 20분 직접 브리핑에 나서 “과잉대응일 수 있지만 오발령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오 시장은 “북한이 통상 동해로 발사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남쪽으로 발사한 상황에서 1000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서울시로서는 즉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경보를 발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시민 혼선을 막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경보체계 안내 문구와 대피 방법 등을 더 다듬어 정부와 협조해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이번 일로 혼선을 빚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혼선을 준 건 잘못한 것”이라며 “국무총리실이 양 기관을 상대로 경위 파악을 위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지난 몇년 간 민방위 훈련이 없었기에 이런 혼란이 왔다”며 “기술적인 문제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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