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선릉역은 어떻게 노인들의 ‘핫플’이 되었나 [미드나잇 이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돈 버는 게 제일 재밌죠?”

“네.”

“돈이 많이 벌리고 안정적인 수익이 나한테 돌아온다고 하면 그게 제일 재밌겠죠?”

“네.”

“그런 얘기 해드릴게요. 여러분이 듣고 싶은 얘기가 그거잖아. 그쵸?”

“네.”

세계일보

1일 선릉역 인근에서 받은 홍보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의 한 빌딩. A업체 설명회가 시작됐다. 전형적인 다단계 사업 소개가 이어졌다. 100여 자리가 마련돼 있었지만 2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꽤 넓은 강당이 꽉 찼다. 자리에 앉지 못한 이들은 강당 뒤에 선 채로 설명을 들었다.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년층이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A업체는 직급이 나뉘어 있었고, 본인 아래 다른 사람을 꼬리처럼 달아야 직급이 오르는 구조였다. A업체 네이버 밴드 등에 따르면 A업체는 원금도 보장된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이날 강의를 진행한 B씨는 사업 시작 3개월여 만에 A업체가 급속도로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단정한 복장으로 성공한 사회인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B씨는 “함께 했더니 굉장히 폭발적으로 성공을 했다”며 “여러분 모두가 행복할 그런 기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14억5000만원으로 30억5000만원을 만들었어요. 우리 처음 오신 사장님들 안 놀라우세요? 14억 가지고 14일 만에 30억 벌었다니까요?” B씨의 말에 참석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A업체는 다단계 영업을 하고 있지만 다단계업 등록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단계 영업을 하는 회사는 반드시 지방자치단체나 공정거래위원회에 다단계업 등록을 해야 한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릉역엔 A업체 같은 회사가 수두룩하다. 이날 오후 2시에 찾은 선릉역 인근 또 다른 빌딩에서도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한다는 업체 사업 설명이 있었다.

언제부터 선릉역이 다단계 메카가 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이 같은 회사가 늘었다고 한다. 2017년은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자산 붐이 처음 일었던 때다. 이때 이후 기존 다단계에 코인을 접목한 여러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다단계 사업 확장 대상으로 삼는 1차 목표는 그럴듯한 말로 현혹하기 쉬운 노인들이다.

이 때문에 선릉역엔 노인들이 많다. 선릉역 주변을 걷다 보면 삼삼오오 모여 설명회를 들으러 가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최근 서울열린데이터광장에 공개된 ‘서울교통공사 역별 권종별 우대권 승차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선릉역에서 경로우대권(만 65세 이상)으로 승차한 횟수는 203만8522번이나 됐다. 종로3가와 제기동, 청량리, 종로5가, 연신내에 이어 6번째였다. 한강 이남에선 65세 이상 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하철역인 셈이다. 2017년만 해도 선릉역은 경로우대권 승차 횟수 순위에서 11번째(199만8056번)에 불과했다. 5년 만에 순위가 확 올랐다.

A업체 설명회를 듣고 나오는 길에 한 노인이 주는 홍보지를 받았다.

‘아무리 다녀봐라. 여기보다 돈 버는 데 있나~~^^ 빨리 가입 선착순’

20억명 이상의 회원을 모집하는 게 목표라고 적혀 있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