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미술품·음원 등…유·무형의 다양한 자산 '토큰화'
"미래 금융시장 이끌것"…증권사 STO생태계 마련 협업
/그래픽=비즈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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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기획사 A는 5인조 걸그룹 '비즈'를 기획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연습생 관리부터 교육과 마케팅 등 데뷔 전까지 투자해야 할 자금이 만만치 않아서였다. A사는 비즈의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 '비즈 토큰(증권)'을 발행했다.
고등학생 B는 이 소식을 듣고 '비즈 토큰'에 투자했다. 적은 금액이지만 평소 응원하던 연습생들의 데뷔를 돕는 기회를 얻게 돼 뿌듯했다. B는 토큰 투자로 데뷔 전 '비즈' 멤버들과의 만남을 포함한 특별한 프로모션 혜택도 누릴 수 있었다. B는 '비즈'의 팬이자 투자자로서, 주위에 비즈를 적극 홍보했고 데뷔 후에는 토큰 가격이 상승해 적잖은 수익도 얻었다.
걸그룹, 음원, 미술품 등 '팬덤'을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투자상품이 될 수 있다.
새로운 투자의 길이 열린다. 과거에는 기업이나 일부 고액 자산가들에게만 허용됐던 투자 기회가 앞으로는 누구에게나 개방된다. 바로 '토큰증권(ST·Security Token)'을 통해서다.
토큰증권은 최근 금융투자업계 디지털 전환의 가장 큰 화두다. 금융투자업의 디지털 전환은 플랫폼의 확장, 투자 편리성과 효율성 증대, 투자자 저변 확대 등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혁신'이라고 부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존 시장의 구조와 규제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큰증권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금융투자업계에 다양한 혁신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기존 방식으로는 유동화가 어려웠던 다양한 유·무형 자산들을 토큰화해 자본시장 영역을 크게 확대할 전망이다.
투자 방법도 달라진다. 기존에는 투자자들이 기업공개(IPO)나 채권을 통해 기업에 투자하면 회사가 알아서 사업에 자금을 분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토큰증권을 통해서는 개별 프로젝트를 선택해 원하는 사업에만 투자할 수 있다.
기업으로서도 더 쉽고 빠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스타트업은 물론 다양한 프로젝트와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단체들도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 또 자산의 다양화, 금융상품의 혁신, 증권발행 방법, 일반투자자 참여가 제한됐던 자산유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기대된다.
토큰증권 시장이 확대되면 중장기적으로 자본시장이 금융업을 이끄는 금융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핑크(Larry Fink)가 지난해 말 "증권의 토큰화가 차세대 증권과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래리 핑크는 미래 금융시장을 주도할 열쇠로 '토큰화'를 지목했다.
증권의 토큰화가 차세대 증권과 시장을 이끌 것이다.
(The next generation for markets, the next generation for securities, will be tokenization of securities)
- 블랙록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Larry Fink)
토큰증권, 증권·코인과는 무엇이 다를까
토큰증권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투자자산들이 생겨나며 등장했다. 부동산, 음원, 미술품 조각투자 등이 대표적이다. 조각투자는 고가의 미술품이나 부동산 등 자산을 여러 조각으로 쪼개 다수 투자자가 공동투자하고 공동으로 이익을 배분받는 방식의 투자다.
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투자자산들은 대부분 기존 규제 내에서는 합법적 발행이 어려운 상태다. 금융당국은 이를 규제 안으로 끌어오기 위해 토큰증권 제도화에 나섰다. 토큰증권 발행(STO·Security Token Offering)을 허용하고 유통체계 정비와 관련한 법제화를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이 정의한 토큰증권은 '분산원장기술(블록체인)'을 활용해 '디지털 자산 형태'로 발행한 '자본시장법상 증권'이다. 조금 더 쉽게 풀자면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해 코인 형태로 발행한 증권을 말한다.
토큰증권 발행(STO)의 의미/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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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은 투자대상에 대한 소유권이나 권리를 증명하는 문서로 주식이나 채권, 펀드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증권들은 현재 종이증권과 전자증권 형태로 발행되고 있다. 조각투자는 증권에는 해당하지만 이제까지 발행된 적이 없는 '투자계약증권'으로 분류된다.
주식, 채권, 펀드 등 증권의 유형을 한식, 중식, 양식과 같은 요리에 빗대본다면 전자증권 등 발행형태는 이것을 담는 그릇으로 볼 수 있다. 투자계약증권은 기존에는 먹어보지 못했던 요리다. 당국은 이 새롭게 등장한 요리를 담기 위해 새로운 그릇인 '토큰증권'을 만들었다. 비트코인, 도지코인 등의 가상자산이 '증권이 아닌 디지털자산'이라면 토큰증권은 증권으로 인정받는 '증권형 디지털자산'이다.
토큰증권 보유자는 소유권을 인정받고 수익 일부를 배당받거나 분배금, 이자 등을 받을 수 있다. 사업에 따라 배당 대신 각종 서비스 혜택도 받는다. 물론 규제도 따른다. 토큰증권은 증권이기에 자본시장법에 따라 발행과 유통을 해야 한다. 다만 기존 증권과는 다르게 발행과 유통을 분리해야 하는 점은 다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영화제작 프로젝트를 토큰화 하면 토큰 투자자를 대상으로 별도의 시사회를 제공하는 등의 서비스가 가능하다"면서 "잠재적으로 팬덤을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유·무형자산의 토큰증권화가 가능한 만큼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투자상품들이 시장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시장이 안착하면 유동성이 떨어지는 벤처캐피털(VC)펀드 등 기존의 전통 증권들도 토큰증권으로 발행돼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TO 생태계 구축 나선 증권사들
당국이 STO를 허용하면서 증권사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블록체인 기업, 조각투자사업자, 인터넷은행 등과 연합군을 조직해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가장 먼저 전담 조직을 꾸리고 HJ중공업, 한국토지신탁과 STO 사업 활성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SK텔레콤과는 '넥스트파이낸스 이니셔티브(NFI)'란 협의체를 만들어 인프라 구축, 기초자산 발굴, 연계서비스 창출 등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함께 'ST 프렌즈' 협의체를 구성했다. 발행 플랫폼 인프라 구축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KB증권은 토큰증권 발행·유통 시스템을 내부에 구축해 테스트를 진행중이다. SK C&C, 블록체인 기술기업 EQBR와 함께 한우, 미술품, 웹툰, 영화 콘텐츠 배급사 등과 'ST 오너스'라는 협의체를 구성했다.
신한투자증권은 다수의 핀테크, 블록체인 기술기업과 MOU를 체결하고 'STO 얼라이언스'라는 이름의 협의체도 구성했다. 올 하반기에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플랫폼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NH투자증권 역시 STO 인프라 구축을 위한 'STO 비전그룹'을 구성했다.
각 증권사는 협의체에 속한 조각투자업체, 블록체인 기업들과 협업을 논의하고 토큰증권 플랫폼 개발도 진행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 증권사들은 조각투자업체 투자금 모집에 나서거나 디지털 자산 수탁 협업에 나서고 있다.
발행, 유통시장 진출에 있어선 대형 증권사와 중소 증권사들의 전략이 다르다.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발행과 유통시장 진출을 모두 계획하고 있으며 중소 증권사들은 유통보다는 발행시장에 집중해 신규 비즈니스 모델 발굴 등에 착수했다.
직접 조각투자업체를 인수하거나 지분 투자를 통해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신증권이다. 최근 부동산 조각투자사업자 '카사'를 인수해 직접 운영에 나섰다. 키움증권은 음원저작권 조각투자사업자인 '뮤직카우'의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투자했다.
토큰증권 시행, 해결해야 할 과제는
토큰증권 시장의 개막을 위해선 법제화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제도적 정비는 이르면 2024년 하반기에서 2025년 상반기 중 마무리될 전망이다. 당국은 정식 제도화 이전에도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토큰증권의 발행과 유통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줄 방침이다.
토큰증권 발행은 일정 수준 이상 요건만 갖추면 조각투자사업자도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발행과 유통을 분리해야 하고 발행만 하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해 계좌관리기관인 증권사와의 제휴는 필수적이다.
새롭고 다양한 자산의 토큰증권 발행이 가능해지는 만큼 증권성 여부 판단도 중요하다. 특히 투자계약증권은 다른 증권 유형에 비해 적용범위가 넓어 판단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 성립 조건은 △공동사업 △금전 등 투자 △주로 타인이 수행 △공동사업의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 받는 계약상 권리 △이익 획득 목적 등이다.
또 가상자산 일부도 증권성이 판단될 경우 해당 규제를 따라야 한다. 가상자산 중 증권에 해당하는 STO의 경우 증권 규제를 모두 준수하면서 발행과 유통을 취급해야 하는 것이다.
금투업계에선 토큰증권 활성화를 위해 유동성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토큰증권은 하나의 유통사 내에서만 거래할 수 있고 장외매매·상대매매 방식인만큼 거래 시 충분한 유동성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면서 "거래 활성화가 안되면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장기적으로 유동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새롭게 생겨나는 증권형 디지털 자산들은 금투업계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초기에는 제도적으로 너무 옥죄기보다 시장 형성과 활성화가 가능하도록 기본 토대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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