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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연합뉴스 '천병혁의 야구세상'

[천병혁의 야구세상] 23년 전 김응용 감독의 쓴소리 "대표팀은 원하는 선수만 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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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감독의 비장한 출사표가 무색해진 김광현·이용찬·정철원

선수 입장 고려하는 KBO, 이제는 대표팀 '징집' 대신 '모집' 검토해야

연합뉴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뒤 헹가래 받는 김응용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2000년 9월 시드니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응용 대표팀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예상치 못한 쓴소리를 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선발 등판한 일본을 두 번씩이나 꺾고 한국야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나 마냥 기쁘지만 않았던 것이다.

김 감독은 "동메달을 딴 것보다도 일본전에서 승리한 것이 더 기쁘다"라고 소감을 전하면서도 "다음 올림픽부터는 선수들 자유의사에 따라 올림픽에 참가하길 원하는 선수들로만 대표팀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KBO리그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18년 동안 이끌면서 9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최고의 감독이었지만 정작 국제대회에서는 선수 통솔에 곤욕을 겪으면서 힘들었던 속내를 밝힌 것이다.

야구대표팀은 시드니올림픽 기간 10여명의 선수가 카지노에서 밤새워 도박한 것으로 밝혀져 큰 파문이 일었다.

여기에 일부 선수들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결장 의사를 밝혀 코칭스태프가 라인업 구성에도 애를 먹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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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KBO리그 초창기를 지배한 '해태 왕조'를 건설했던 김응용 감독은 이후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에 올라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긴 뒤 구단 사장까지 역임했다.

프로구단에서 물러난 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을 맡아 아마야구 진흥에도 힘썼던 김 감독은 이제 팔순을 넘은 원로 야구인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런 김 감독이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린 일본 도쿄를 찾아 관전했다고 한다.

그는 WBC가 끝난 뒤 "한일전을 관중석에서 보는데 너무 속상하더라"라며 "경기를 다 보지 못했다. 중간에 나왔다"라며 아쉬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감독은 "한국야구는 변해야 한다"며 "변해야 살 수 있다. 그런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라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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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김광현
[SSG 랜더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원로 야구인이 차마 다 지켜보지 못할 정도로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던 WBC에서 주축 투수인 김광현(34·SSG 랜더스)과 이용찬(34·NC 다이노스), 정철원(24·두산 베어스)이 밤늦게 유흥업소에서 술을 마신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파문이 커지자 KBO도 이들에 대한 징계를 검토 중이다.

이전 WBC에서도 선수들의 음주 의혹은 있었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고 성적이 좋다 보니 조용하게 넘어갔다.

일각에서는 성인 야구선수가 술을 마신 것이 뭐가 문제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국제대회 기간 음주는 단순히 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원로 야구인은 물론 팬들마저 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탈 행위이자 프로야구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그 정도로 태극마크를 하찮게 여기는 선수라면 차라리 배제하는 것이 대표팀 분위기나 전력에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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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KBO는 지금도 대표팀을 선발하는 과정에 선수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는다.

KBO 관계자는 "선수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을 경우 대표팀 선발을 거부하는 선수에게는 질타가 쏟아질 수가 있다"라고 우려했다.

선수 입장이 힘들어질까 봐 대표팀 참가 여부를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WBC 사령탑을 맡은 이강철 kt wiz 감독은 일본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보기 드물게 비장한 출사표를 밝혔다.

"국가대표라는 무게, 국가대표팀이라는 명예와 자긍심, 국가대표팀 선수라는 영광,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무한한 책임을 새삼 절감한다"라고 밝힌 그는 "국민 여러분께 다짐한다. 그라운드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전사가 되겠다"라고 굳은 각오를 보였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의 출사표가 무색해질 정도로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전혀 달랐다.

이제라도 KBO는 23년 전 김응용 감독의 고언처럼 국가대표를 '징집'하는 대신 희망 선수 중에서 '모집'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shoele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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