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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美 '임신중지권 폐지' 파장

‘로 대 웨이드’ 폐기의 나비효과…아프리카서 ‘임신중지 반대’ 목소리 커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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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한 인도에 임신중지약 광고가 붙어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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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이후 지난 1년간 아프리카에서도 임신중지 반대론이 대두하고 있다고 AP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반 단체들이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임신중지 반대 캠페인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임신중지 허용 법안이 통과하지 않도록 아프리카 각국 의원들에게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우간다·말라위·에티오피아 등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일례로 기독교계 비영리 단체 패밀리워치인터내셔널은 지난 4월 우간다 대통령실에서 국회의원 등을 만나 보수적인 “가족적 가치”를 옹호했다.

이 단체는 에티오피아에서 성폭행·근친상간 등일 경우 임신중지를 허용한 법안까지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 기반 기독교 단체 휴먼라이프인터내셔널 역시 “여러분 덕분에 말라위가 합법적 임신중지로부터 안전하다”며 임신중지의 제한적 허용을 반대하는 로비를 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등 동부 아프리카에서도 성폭행·근친상간 혹은 건강상의 위험이 있을 경우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법 조항을 문제 삼아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1년 전 미 연방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50년만에 뒤집히면서 힘을 얻었다고 AP는 전했다. 지난해 6월 미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미국 각 주에서 임신중지가 법적으로 제한·금지될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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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 1주년을 맞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열린 여성행진에서 시위대가 임신중지권 옹호 문구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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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아프리카의 각 국가들은 임신중지권을 조금씩 확장해 가는 추세였다. 최근 시에라리온은 ‘여성의 성적·재생산적 건강권이 뒤집히거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의 임신중지는 비범죄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냉은 2021년 임신이 ‘여성 혹은 태아의 이익과 양립할 수 없는 물질적·교육적·직업적 또는 도덕적 고통을 악화시키거나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임신중지를 허용했다. 예를 들면 학생이 임신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둘 위험이 있는 경우에도 임신중지가 가능해지면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폭넓게 임신중지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미국의 상황 변화가 아프리카의 진전에 역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국제적으로 보면 미국이 재생산 보건 분야의 가장 큰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프리카 여성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리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우간다의 한 인권 감시 단체는 임신중지에 대한 분위기가 역행하면서 “임신중지를 지지하는 이들이 차별에 직면하고 있다.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으며, 일부 여성들은 자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우간다 관계자도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전했다. 에티오피아의 한 활동가는 외부인들이 임신중지 반대를 부추기고 있다며 “미 대법원 판결이 그들의 연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신 건강·재생산권 연구기관 구트마허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아프리카 여성의 약 93%는 임신중지가 제한적인 국가에 살고 있다. 성폭행·근친상간 등 조건에 따라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국가에서도 문화적·종교적 낙인과 처벌, 행정적인 문턱과 서비스 부족 때문에 결과적으로 임신중지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이뤄지는 실정이다.

특히 사하라 이남에서 임신중지의 약 66%, 건수로 보면 연간 600만건 이상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시행된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지역에서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가 산모 사망 원인의 16%를 차지한다고 추정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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